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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지침의 추억"기자가 만만한가"

미디어. 게시판

by 문성 2010. 1. 14.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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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무총리실이 세종시 수정안을 발표한 이후 ‘보도지침’ 논란에 휩싸였다.

세종시 수정안이 발표된 11일 저녁 대전지역 TV 방송 3사 공동기획한 '세종시 발전방안 대토론회'를 앞두고 총리실이 진행자 멘트까지 담긴 토론회 시나리오를 방송국에 전달한 적이 있다. 이를 두고 언론단체들은 "군사독재정권 시절 '보도지침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며 총리의 사과를 요구했다. 총리실이 가볍게 처신해 화를 부른 것이다.

 
14일에는 정부가 세종시 현안 홍보전략을 마련한 것을 한겨레가 보도했다. 한겨레가 입수해 보도한 문건을 보면 세종시 수정과 관련해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반응이 성패를 가를 핵심 변수가 될 것으로 보고, 이에 대한 대응책을 검토한 것이다. 그 핵심은  박전대표가 11일 정부 발표 뒤 어떤 태도를 취하느냐에 따라 결정될 가능성이 크다고 예측했다.  이 문건은 또 “우호적 논조의 청와대 출입기자 등을 활용해 ‘특정 정치지도자의 발표 직후 여론개입’이 바람직하지 않음을 지적하는 기자칼럼을 게재”하는 사전 홍보 전략을 정부에 제시했다. 박 전대표 입장 발표에 대해 기자들이 칼럼을 통해 지적하라는 것이다.

 민주당은 대변이 성명을 통해“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기자와 방송을 정권홍보의 도구로 쓰겠다는 기획을 이 정권의 위정자들이 할 수 있다는 말인가. 이 나라의 기자들이 정권홍보수단으로 전락했다는 말인가”라고 지적했다. 


 보도지침은 제5공화국 시절 정부가 언론통제를 위해 각 언론사에 시달했던 것이다. 특히 5공 때 땡전 뉴스나 언론 통제용 보도지침은 부끄러운 한국 언론의 자화상이다. 절대 권력이 언론을 장악해 정권의 나팔수로 이용했던 그야말로 기억하지 조차 싫은 일이다.


  정부가 세종시 수정안에 대한 향후 국민여론을 분석하고 대응책을 준비하는 것이야 탓할 게 아니다. 국민을 상대로 정책을 홍보하는 것도 당연하다. 하지만 권력 감시와 정권 비판을 위해 청와대를 출입하는 기자들에게 우호적 논조로 칼럼을 게재토록 하는 홍보 전략은 잘못된 것이다. 권력과 언론이 유착했을 때 어떤 일이 발생하는지 우리는 이미 경험한 바 있다. 사실의 기록자에게 언론을 왜곡하라는 것은 있어서는 안될 일이다. 

  
세종시 수정을 둘러싼 찬성과 반대측은 나름의 논리가 있다. 이 대통령은 세종시 수정안을 내놓고 여론전에 나섰고, 박근혜 전대표는 수정안에 반대하고 있다. 이 대통령의 실용주의와 백년대계론, 박 전대표의 원칙과 국민 신뢰 정치는 두 사람의 정치적 소신다. 어느 한쪽만 무조건 나쁘다고 할 수 없다.  


정부가 언론을 이용하려 할 때 기자들이 중심을 바로 잡아야 한다. 원칙에 충실하고 언론의 기본 소명을 잃지 않아야 한다.  기자는 사실의 기록자며 역사의 증인이다. 기자는 국민의 알권리 제공과 공익과 공정성에 투철해야 한다. 예나 지금이나 권력은 언론을 이용하고 싶어 한다. 그것이 권력의 속성이다. 호, 불호를 판단하고 적절히 이용하려 할 것이다. 정권의 편에 서서 정권의 일방적 홍보를 해 나팔수라자는 오명을 얻은 이도 있다. 그것은 언론인으로서는  부끄러운 일이다.


이번 일은 기자들이 세종시 수정안과 관련해 칼럼을 쓰는 데도 부담이 될 수 있다.  이미 홍보전략이 알려진 만큼 세종시에 대한 기명칼럼을 소신에 따라 쓴다 해도 정부의 청탁을 받은 것으로 오해할 수 있다. 특히 박 전대표의 행보를 비판적 시각으로 칼럼으로 지적할 경우 그럴 가능성이 높다. 정부의 생뚱맞은 홍보전략으로 멀쩡한 기자들이 색안경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세상에 비밀이란 없다. 
 


기자들은 글로 자신을 나타낸다. 그가 쓴 글은 기록으로 남는다.  기자는 날마다 기사로 독자의 평가를 받는다. 독자의 눈은 날카롭고 냉정하며 매섭다. 기자들은 어떤 경우에도 바른 길을 가야 한다. 만약 그게 어렵다면 기자직을 그만 두는 게 바람직하다.


지금은 방송과 통신이 융합하는 다매체시대다. 과거처럼 기자가 정부의 구미에 맞게 칼럼을 쓴다고 해서 통하는 시대가 아니다. 오히려 금새 들통이 나는 시대다. 지금은 양방향 소통 시대다. 독자들은 기자가 어떤 의도를 가지고 쓴 글은 금방 그 배경까지 파악한다. 세상이 변했다. 이런 세상에 기자들이 장수하는 방법은 진실의 벗, 불의에 맞서고, 오만한 권력의 감시자가 되는 것이다.

정부가 어떻게 생각하건 기자들은 사실에 근거해 올바른 칼럼을 써야 한다. 그게 기자가 사는 길이다. 5공 시절의 보도지침의 상처는 아직도 아물지 않았다. 기자들은 그리 만만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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