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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자일기-천진도인 혜월선사2

암자일기

by 문성 문성 2010. 1. 21. 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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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사나불은 삼불신인 법신(法身), 보신(報身), 응신(應身)의 하나다. 즉 보신불이다.

해의 빛이 온 세계를 비추는 것처럼 삼라만상의 실상(實像)을 가리키는 부처의 이름이다.


“‘무소유`를 지켜라. 그러면 부처가 되리라”

경허가 제자인 혜월에게 내리는 가르침이었다.  경허의 게송대로 천진도인 혜월은 평생 ‘무소유`의 삶을 철저히 지켰다.


경허의 세 제자는 각기 다른 곳에서 불법을 전파했다.
수월은 북쪽으로 가서 간도에서 살다 열반에 들었다.  혜월은 남쪽으로 내려갔다. 막내인 만공은 가운데 남아  수덕사에서 주로 지냈다.


이렇게 된 데는 연유가 있다고 한다. 
1912년께였다고 한다. 경허의 세달인 수월과 혜월, 만공이 한 곳에 모여 약속을 했다. 수월은 북쪽으로 가 달이 되고, 혜월은 남쪽으로 가 달이 될 것이며, 만공은 가운데 남아 달이 되기로 약속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수월을 상현달(上弦)이라 부르고, 혜월을 하현달(下弦), 만공을 보름달인 만월(滿月)이라고 부른다는 것이다.



혜월이 52세 되던 1913년 7월 스승인 경허선사가 갑산 도하동에서 입적했다는 소식을 수월(水月)선사로부터 듣고 덕숭산에 있던 만공(滿空)에게 연락해 함께 갑산으로 갔다. 그 곳에서 세 제자는 경허의 시신을 다비하고 그가 남긴 유품을 정리했다.


혜월은 당초 약속대로 남쪽으로 길을 떠났다. 드디어 남녘의 하늘에 하현달이 뜨게 된 것이다.

혜월은 이후 선산 도리사(桃李寺), 팔공산 파계사(把溪寺) 미타암(彌陀庵), 통도사, 양산 천성산(千聖山) 미타암과 원효암, 통도사 극락암, 범어사 등 남쪽에 머무르면서 후학을 지도하였다.

 

혜월은 가는 곳마다 수행 정진에 몰두했고, 여가가 나면  김 매고 나무하며 사찰안을 말끔히 청소했다. 밤이면 짚신 삼고, 새끼를 꼬았다.
그는 평생동안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않는다는 '일일부작(一日不作) 일일불식(一日不食)'의 생활을 준수했다.
그 뿐만 아니라  가는 곳마다 불모지를 개간하여 논밭을 일구었다. 그래서 혜월에게는 '개간(開墾) 선사'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였다.



일제 지배 시절의 남총독이 혜월스님에게 불법을 묻자 스님은 "귀신방귀에 털이 났지" 하고 답했다. 남총독은 두말없이 물러갔다. 이 이야기가 한국은 물론 일본까지 전해지자, 일본의 한 사무라이가 "스님의 콧대를 꺾어 놓겠다"며 그를 찾았다.


그는 구두를 신은채 스님이 여러 스님과 함께 계시던 방으로 들어가 칼을 꺼내 스님의 목을 겨누었다. 모두 놀라 어쩔줄을 몰라했다. 하지만 스님은 태연히 손가락으로 그 무사의 뒤를 가리켰다. 그러자 그 무사는 뒤에 자기를 해치려는 사람이 있는줄 알고 뒤를 보았다. 스님은 바람처럼 일어나 그 무사의 어깨를 치며 "내 칼 받아라"고 하셨다. 정말 칼이었다면 그 무사는 죽음을 피할 수 없었다.


일본 무사는 무릎 끊고 스님에게 삼배를 한뒤 "과연 위대한 스님"이라며 절을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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