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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 거목이자 한국 전자 산업 개척자인 '상남(上南)'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사진. LG. 왼쪽이 구 명예회장. 오른 쪽은 구본무 전 회장)이 14일 오전 10시경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4세. 장례는 4일장이며 가족장이다. 발인은 17일 오전이다.
구 명예회장은 창의와 모험정신으로 기업을 경영한 한국 전자산업의 개척자다. 구 명예회장은 기업은 곧 사람이란 원칙으로 기업을 경영했다.
국내 굴지의 대기업들이 경영승계를 놓고 갈등을 겪은 것 과는 달리 LG는 그런 잡음이 없었다. 사돈간으로 57년간 동업을 했던 구씨 집안의 LG그룹, 그리고 허씨 집안의 GS그룹으로 갈라설 때도 아무 잡음이 나오지 않았다. 지금도 두 가문은 잘 지내고 있다.
기업 경영권도 구 명예회장은 큰 아들 고 구본문 회장에게 넘겼다. 가문의 장남 승계원칙에 따른 것이다. 구 명예회장은 합리와 인화, 원칙을 중시했다. 그런 탓에 LG는 다른 기업에 비해 사람 냄새나는 기업이라는 평을 듣는다.
구 명예회장은 당초 교사의 길을 걷고자 했다.
LG그룹 창업주인 고 구인회 명예회장의 6남 4녀 중 장남으로 1925년에 태어났다. 1945년 진주사범학교 졸업 후 5년간 초등학교 교사로 활동하다 1950년 LG그룹의 모태인 '락희화학공업사(현 LG화학)’ 이사로 취임하면서 그룹 경영에 참여했다.
1969년 말 부친이 타계하면서 이듬해 그룹 2대 회장에 올랐다. 경영수업 20년만이었다. 이후 25년간 LG그룹을 이끌면서 전자와 화학을 중심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했다.
구 명예회장이 그룹을 이끈 25년 동안 LG그룹 매출은 연평균 50% 이상 성장했다.구 명예회장은 꾸준한 연구개발에 투자해 핵심 기술을 확보했고, 해외 진출을 통해 LG가 글로벌 기업으로 발돋움 할 수 있는 기틀을 닦았다.
60년대 국내 최초 국산 라디어인 금성라디오(사진. 아래)는 국내 시장을 독점하면서 한국 전자산업을 이끌었다.
금성사(LG전자 전신)는 19인치 컬러TV(사진 아래), 공냉식 중앙집중 에어컨, 전자식 VCR, 프로젝션 TV, CD플레이어, 슬림형 냉장고 등 영상미디어와 생활가전 분야에서 수많은 제품을 국내 최초로 개발했다.
컬러TV 생산(사진.LG)은 1975년 구미 공단에 연산 50만 대의 대단위 TV 생산 공장이 준공하면서 본격화했다. 1976년에는 냉장고, 공조기, 세탁기, 엘리베이터, 컴프레서 등 국내 최대의 종합 전자기기 공장인 창원공장을 건립했다.
1983년부터 1986년 말까지는 미래 첨단기술시대에 대비해 컴퓨터, VCR 등을 생산하는 평택공장을 구축하며 오늘날 전자 산업 강국의 기틀을 닦았다.
덕분에 LG그룹은 전자와 화학뿐 아니라 부품소재, IT(정보기술)로 사업 영역을 넓혔다. 1995년 장남인 구본무 LG그룹 회장에게 그룹을 물려주면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구 명예회장은 생전 '강토소국(疆土小國) 기술대국(技術大國)'을 강조했다. 국토가 좁고 천연자원이 부족한 우리나라가 의존할 것은 오직 사람의 경쟁력뿐이라는 것이다.
구 명예회장은 퇴임한 후에도 남과 다른 행보를 보였다. 인재육성과 기술개발에 힘썼다.
구 명예회장은 은퇴 후 자신이 설립한 충남 천안 연암대학 인근 자택에서 여생을 보내면서 직접 버섯 농사를 지으면서 농업 교육, 전통식품 개발 등에 힘써왔다.
구 명예회장은 1974년 국내 유일의 농업계 사립전문대학인 천안 연암대학을 설립하면서 교육사업을 본격화했다. 낙후된 농촌을 발전시키려면 농업 근대화의 기수가 될 인재를 양성할 필요가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그는 수시로 학교를 찾아 정원수 등을 가꾸고 인근 농장에서 버섯 재배에 열중했다. 평소 바른 먹거리에 관심이 많아 전통식품 연구에 나서기도 했다.
2000년대 초반부터 충남 천안의 농장에서 된장, 청국장, 버섯, 만두, 국수 등 전통 음식을 상품으로 만들어 선보이기도 했다.
구 명예회장은 정주영 회장에 이어 18대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사진. 아래)을 역임했다.
구 명예회장은 슬하에 고 구본무 LG 회장을 비롯해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 구본준 LG 부회장, 구본식 희성그룹 부회장 등 6남매를 뒀다.
장남인 고 구본무 회장은 지난해 5월 20일 별세했다. 구 회장도 평소 그의 뜻에 따라 화장한 뒤 경기 광주시 곤지암 인근에서 가족들만 참석한 채 수목장으로 치렀다.
LG그룹은 빈소와 발인 등 구체적인 장례 일정은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 장례는 가족장으로 치르며 빈소도 비공개하고 한다. 고인과 유족들의 뜻이 따른 것이다.
LG 측 관계자는 "장례는 고인과 유족들의 뜻에 따라 가족장으로 최대한 조용하고 차분하게 치르기로 했다"며 "유족들이 온전히 고인을 추모할 수 있도록 별도의 조문과 조화를 정중히 사양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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