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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 뉴스2012/05/18 21:44

 

“지옥이 따로 없다. 이제 MB정권 바꾸는 것보다 나를 변화시기는 것이 더 시급하다”

 

 

 MB정권과 현 조계종 총무원장 자승스님과 늘 대립각을 세웠던 서울 봉은사 전 주지 명진스님(사진. 단지불회 홈페이지)이 17일 서울신문과 가진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그는 최근 ‘승려 도박 동영상’ 사건이 터지면서  명진 스님과 총무원장 자승 스님 등 승려 4명의 2001년 룸살롱 출입 사건이 부각돼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당시 룸살롱 출입의 당사자인 명진 스님은  당시 사건으로 종회 부의장을 사퇴했고, 법회나 언론 등을 통해 여러 차례 사실임을 밝히고 반성했지만, 그를 따르는 신도 중 30~40%는 이번에 사건을 알게 돼 충격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서울신문에 따르면 명진 스님은 “페이스북의 19살 친구가 스님을 존경했는데, 기대가 무너졌다고 써놓은 글을 보고, 기대와 희망을 무너뜨린 것은 죄”라며 “신도들이 느낄 상처와 절마을 생각하면 지옥이 따로 없다”고 말했다.

 

스님은 승려 도박을 검찰에 고발한 성호 스님과 ‘한편’이라는 시각에 대해 “일면식이 없다.”면서 “성호 스님이 지난 3월 룸살롱 문제와 관련해 참회록을 보내와 다 끝난 줄 알았다.”고 했다.

 

스님들의 도박·음주·성매매와 같은 파계에 대해 명진 스님은 “일부 스님들의 문제일 뿐”이라면서도 “한국 불교가 선종으로 가면서 일반적으로 계율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었고, 한국사회가 자본주의화되면서 스님들도 자본에 물들었다.”고 지적했다. 부처님 시대의 계율에 따르면 음악을 들어서도 안 되고, 여자와 단독으로 만나서도 안 되고, 돈을 수중에 지녀서도 안 된다고 했다.

 

9세기경 중국 화엄종의 청량 국사가 계율을 지키려고 늙은 어머니가 찾아와도 병풍을 치고 만난 사례를 들었다. 이런 형식적 계율의 엄수는 당대에 계율을 잘 지키지 않는 풍토를 개선하려는 것이었다고 한다. 명진 스님은 “다만, 복잡해진 현대사회에 맞는 새로운 계율이 필요하지 않은지 불교계가 고민할 시점에도 왔다.”고 제안했다.

 

자승 총무원장을 둘러싼 권력투쟁의 양상처럼 보이는 현 사태에 대해 명진 스님은 “나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총무원장에 집중된 권력을 분산해, 현재의 ‘총무원-종회 권력분립형’ 체제는 1994년 한국 불교계의 진보·개혁적 사람들이 승려대회를 통해 종헌·종법을 고쳐서 나온 것이다.

 

 

당시 명진 스님은 “개혁에 실패하면, 내가 중노릇을 그만하겠다.”라고 선언한 뒤 밀어붙여 당시 ‘서의현 총무원장 3선 저지’에 성공했다. 차기 총무원장은 명진 스님의 은사인 탄성 스님이었다. 그러나 그 개혁으로 “서의현 총무원장은 사라졌지만, 계파 보스를 중심으로 한 ‘150명의 작은 서의현’들이 등장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고 지적했다.

 

과거에는 총무원장과 몇몇 비리스님을 쫓아내면 됐지만, 이제는 종무행정에 발을 딛는 스님들이 대부분 비리와 부패에 모두 엮이게 돼 문제의 해결이 더 어려워졌다. 다시 종헌·종법의 개정을 통한 개혁이 필요하다고 했다.

 

명진 스님은 “28일 초파일을 월악산 보광사에서 쇤 뒤 문경 봉암사에서 하안거를 하며 잘난 척하고 깝죽대고 오만했던 나를 다스리겠다.”면서 “이제 MB 정권 바꾸는 것보다 나를 변화시키는 것이 더 시급하고, 변하지 않으면 돌아오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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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문성
이현덕의 책마당2012/05/17 12:16

신간이 아니다.    

 

2007년 4월에 나온 나온 책. 이를테면 구간이다.  

연합뉴스 이희열 기자의 '말랑말랑 여의도 보고서(사진)'.

 

서점에 없다. 부천시립도서관에서 빌려 읽었다. 

 

 

등장 인물들이 지금도 한국 정치판의 중심 세력이다. 그들의 뒷 이야기다. 
기사로는 쓸 수 없었던 사연들이 책 속에 있다.

 

 

 이 책은  저자가  연합뉴스 홈페이지에 취재 뒷이야  기를 담아 블로그에 올린 글을 엮은 것이다.

 

 제목처럼 말랑말랑한 내용인데다 재미있다. 찟어진 우산을 쓴 박근혜 대표, 해외 출장에서 비행기를 놓친 이명박 의원, 전여옥 의원의 주량 등 기자만이 볼 수 있는 그들의 뒷모습을 책에 담았다. 시제는 과거임을 인식해야 한다.

 

 책을 읽다고 피식 웃음이 나오는 내용이 있었다.

 두 가지를 소개한다.

 

 

교수와 기자.

 

둘 다 사회적으로 대우받는 직업군이다.

교수는 죄짓지 않거나 잘못한 일이 없으면 남한테 고개 숙일 일이 거의 없다. 혹시 권력세계로 전입을 희망하지 않고 학문의 세계에서 고고하게 살고 싶다면 자신의 원칙이나 신념을 통채로 버리고 굽신거릴 이유가 없다. 하긴 요즘은 교수하기도 예전만 못하다. 사고치지 않고 학문에 집중한다면 정년 보장되겠다 이후 연금 나오겠다, 퇴직해도 명예교수로 활동할 수 있으니 부러운 직업이다.

 

기자는 듣기 좋은 말로  제4부니 무관의 제왕이니 사회의 목탁이니 하지만 그 정도는 아니다.

예전과 달리 월급쟁이중의 하나다. 하지만 기자는 세상을 독자를 대신해 보여주는 거울이다. 그 거울에 문제가 있는 일도 없지는 않다. 정론 대신 곡필이나 왜곡을 하는 글쟁이들이다. 하지만 여전히 다수 기자들은 오늘도 발바닥에 땀이 나도록 현장을 누빈다.

 

 

  -교수와 기자의 차이(토가 달렸다. 이 애기는 15년 전 것이라고)

 

교수- 시간이 많다. 약속 장소에 자기가 못나오면 젊은 조교라도 보낸다. 애기를 하면 배울점이 많다. 어쩌다 저쩌다 해서 ‘아이’라도 생기면 머리가 좋다.

 

기자- 시간이 없다. 바빠서 2진을 내보내지만 이들은 더 바쁘다. 애기해 봤자 욕만 배운다. 어쩌다 저쩌디 헤사 ‘아이’라도 생기면 성질 고약한 놈이 나온다.

 

-직업관

 

의사는 아내가 제일 좋단다. 판검사는 부모가 좋다. 기자는 자기가 좋은 직업이란다. 그럴 듯 하다. 왜 한 번 생각해 보시라.

 

무한. 357쪽. 값 97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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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문성
풍경 소리2012/05/16 14:25

 

‘말 한마디가 천 냥 빚을 갚는다’.

 

자주 들었던 말이다. 예민한 사안일 수록 한마디 말이 사태를 해결하기도 하고 그 반대로 사태를 악화시키기도 한다.

 

16일 오전 조계종 호법부장 정념스님이 MBC 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과 가진 전화 인터뷰는 사태를 더 악화시켰다. 이상한 논리여서 국민 반감만 산  인터뷰 였다. 14일 성호스님이 인터뷰에서 계율에 어긋나는 종단 고위층의 행태를 폭로하자 호법부장 정념스님이 반박 인터류를 자청한 것이다.

 

인터뷰 시작은 “국민에게 참회하고 사죄한다”며 말문을 열었지만 그 다음부터 문제였다.

 

첫 째, 공개된 ‘스님 도박 동영상’에 대해 “놀이문화라는 게 여러 가지 형태가 있다”고 한 점이다.

정념스님은 “사회에서 말하는 도박이 있고 내기문화가 있고 또 어른들이 나이 드시면 치매에 걸리지 않도록 그걸 하면 좋다고 한다. 화투 이런 것을. 이런 문화를 한두 사람이 얘기하는 것을 함부로 전체를 매도하는 건 적절치 않다고 생각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사회에서 놀이문화중 하나로 화투놀이를 즐겨 하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일반인도 판돈이 많거나 상습적이면 처벌대상이다. 화투가 놀이문화가 문제가 될 수 없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는 발언이다. 수행 스님이 심심해서 도박을 했단 말인가. 도박이나 음주는 아예 해서는 안 될 일이다.

 

둘 째, 그는 “도박 스님들의 진술서 받았는데 조서를 보니까요. 전체 판돈이 400, 500인데요. 마지막에 나눠주더라고요. 이렇게. 그래서 내기 문화 겸 또 어떤 심심 조로 이런 것 한 것은 있지만 사실은 잘못됐지만”이라고 말했다.

 

이어 손석희 교수가 “내기 문화에 400~500씩 거는 사람이 있느냐”고 묻자 그는 “판이 400, 500되는 게 아니시고요. 가진 돈이 그랬고요. 제가 표현이 적절치 않았는지 모르지만, 사실확인서를 제가 보니까 그렇다는 얘기죠”라고 말했다.

 

결국 정념스님은 “그건 잘못됐고요. 저희가 어쨌든 놀이문화라도 해선 안 될 것을 한 것은 다시 한번 국민들 앞에 사과드립니다”라고 말했다. 요즘처럼 서민들의 살림살이가 어려운 판에 시줏돈 400-500만원을 대수롭지 않은 듯히 말한 것도 잘못이다. 그 돈이 단돈 10원이라도 시줏돈으로 수행자가 할 일이 아니다.

 

셋 째, 스님도박을 언론에 사실이 아닌 내용을 여과없이 보도한 것에 불만을 표시했다.

그는 “저희 원로 큰스님들이라든가 사실에 있지 않은 얘기를 여과 없이 막 방송을 했어요. 이런 것은 사실 확인을 안 한 것은 또 성호 스님 자체가 정말 국민들의 지탄을 받고 있고 또 종단으로부터 이미 승려의 제적을 받았습니다. 이런 부분에 대해서 공영방송에서 좀 사실 확인 없이 이렇게 한다는 것은 안타깝다”고 주장했다.

 

언론은 출처가 확실하면 보도하는 게 일이다. 동영상에 돈이 오가고 술마시고 담배를 피웠는데 그런 사실을 언론이 보도한 게 잘못인가. 아니면 도박과 음주를 한 스님들이 잘못인가. 언론에 책임을 돌리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조계종은 아직 사태의 심각성을 간과하고 있다. 이번 사건은 국민 정서에 반하는 일이다. 더욱이 처절한 참회없이 불신을 해소할 수 없다.  토를 달고 자신들이 억울하다는 식으로 말하는 것은 유치한 변명이다.

 

조계종은 국민이 용서할 때까지 참회하며 기다려야 한다. 듣는 사람 복장 터지게 하는 “도박이 놀이문화”라거나 “판돈이 400-500”이라는 말은 하지 않아야 한다. 자신들의 잣대로 해명할 수록 의혹만 더 커 진다.

정말 왜 들 이러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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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문성

“누가 신규통신사업권을 따낼 것인가”

 

1997년 신규통신사업자 선정은 마이너리그에 속했다. 한 해 전인 1996년도 통신사업자 선정은 메이저리그였다. 재벌들의 혈투였다. 마이너리그라도 승자에게는 도약의 기회였다. 패자에게는 위기였다.

 

규모는 작지만 미래사업인 97신규통신사업자 허가를 놓고 국내 기업들은 승자와 패자라는 필연의 갈림길 앞에 서야 했다.

 

 

새해 업무를 시작하는 첫날인 1월 3일 오전 정보통신부 21층 대회의실(사진은 국회 기자회견모습) 

 

강봉균 정통부장관(지경부장관 역임. 민주통합당 국회의원)은 시무식에서 신년사를 통해 “올해는 정보화시대의 새 길을 연는 한 해가 될 것이란 꿈과 믿음을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자 한다”면서 “정보화 시대 세계의 주역이 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 나가자”고 말했다.

 

강 장관은 “역점으로 추진해야 할 사업이 많지만 올해는 통신사업 경쟁체제를 정착시켜 더욱 값싸고 품질 좋은 통신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면서 “ 올해 시내전화와 시외전화 부문에 각각 1개의 사업자를 추가로 허가해 국내 경쟁체제를 마무리 하겠다”고 밝혔다.

 

강 장관의 이날 신년사는 한국통신(현 KT)의 시내전화사업의 독점체제 붕괴를 의미했다. 신규 통신사업자 선정은 정보통신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선(先) 국내경쟁 후(後) 국제경쟁’ 이란 정책에 따른 조치였다. 이런 원칙에 따라 정통부는 내부 토론과 전문가 그룹의 연구결과를 토대로 97신규통신사업자를 허가키로 확정했다.

 

97신규통신사업자 허가에서 가장 큰 관심사는 시내. 시외전화사업자 선정이었다. 이는 통신서비스 경쟁시대를 알리는 서막이었다. 나머지는 지역 부문 통신사업자 허가여서 비중이 크지 않았다.

 

그해 1월20일.

정통부는 새해 주요업무계획을 발표했다. 정통부는 신규 통신사업자 허가방침과 통신요금정책 방향을 구체적으로 밝혔다.

 

정통부는 시내와 시외 전화, 주파수 공용통신(TRS), 위성 해저광게이블 임대사업 및 무선호출 부문 사업자를 신규허가하겠다고 밝혔다. 정통부는 이를 위해 역무별 허가심사기준, 허가신청 요령을 사전에 고시하기로 했다.

 

정통부는 통신요금에 관해 자율성을 확대해 신고제로 전환하고 지배적 사업자의 요금만 인가하기로 했다. 정통부는 이용자 요구에 부응하는 다양한 요금제도 도입하고 역무별 경쟁상황과 시장의 영향을 고려해 가격상한제의 단계적 도입도 검토하기로 했다.

 

한국통신의 경영효율화와 민영화를 위해 한국통신을 정부출자 기관으로 전환해 내부 경영 혁신과 책임경졍 체제를 구축하기로 했다. 한국통신의 정부 지분은 71%에서 49%로 줄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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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문성
풍경 소리2012/05/15 23:58

 

"성매수, 결혼한 스님, 수백억 해외도박 "   

 

차마 입에 담기 조차 민망한 말이다. 청정지계의 조계종을 한순간 끝모를 나락으로 밀어넣은 일부 조계종 스님들의 역주행.

 

저럴 수가. 저들이 근엄한 표정으로 법상에 올라 삼배를 받고 부처님 법을 설했던 스님들이란 말인가. 사기 당한 기분이다. 배신감이 물밀처럼 밀려 든다. 어이가 없다.

 

속세의 모든 것을 먼지처럼 훌훌 털고 진리를 찾아 출가했던 스님들이 술 마시고 담배 피우며 방바닥에 수북히 쌓인 돈을 두 손으로 끌어 당기는 영상은 전형적인 도박꾼의 추한 모습,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뭐라고 말하건 이미 출가자의 본분은 헌신짝처럼 팽개친 뒤였다. 누구보다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사회의 표상이 돼야 할 스님들이다.

 

나에게 부처님 말씀은 삶의 지혜요, 험한 세상을 살아 가는 데 등불이었다. 내 마음을 깨우치는 불교, 그래서 앞으로 불교가 세상을 밝히는 등불이 될 것이고 믿었다.

 

나는 부처님 법을 실천하며 치열하게 산중에서 살던 스님을 만난 적이 있다. 십 수년전 일이다.  그 스님의 삶은 나에게 대종의 울림이었다.  평생 그 인연을 보물처럼 마음 깊숙히 고인 간직하며 살고 있다.  말 대신 묵묵히 실천하는 스님의 생활이 삶의 큰 교훈이었다.

 

이번 사건이 터진뒤 조계종 대책을 보면 아직 정신을 못차렸다. 총무원 부장들과 총무원장의 100일 108배 참회만으로 이번 사태가 해결된다고 본다면 오산이다. 죽어야 사는데 죽을 생각은 하지 않고 살 생각만 한다. 구차한 변명은 하지 않아야 한다. 상대에 대한 비난도 불필요하다.  이판 사판의 폭로전. 이래서야 해결될리가 없다. 닭 벼슷보다 못한 중 벼슬이라는데  그걸 내려놓기가 그리 어려운가. 

 

검찰이 이 사건 수사에 착수했다. 고발장을 낸 성호스님은 15일 검찰 조사에 앞서 "추가 폭로할 것이 많다. 내용에는 총무원장도 포함돼 있다"며 "이를 뒷받침 할 만한 사진이나 영상 등을 공개하는 것은 총무원장이 직접 답변하는 것을 듣고 나서 결정하겠다"고 강조했다. 그가 한 인터뷰 내용도 충격이다. 

 

조계종은 이날 MBC 라디오 '손석희 시선집중'에 출연해 "조계종 총무원장 자승 스님이 성매수를 했다"고 발언한 성호 스님을 명예훼손 혐의로 검찰에 고소했다고 밝혔다.

 

이제 종단 내부의 치부를 서로 까발리기가 시작됐다. 이전투구로 변했다. 이건 수행자의 참모습이 아니다. 하지만 내부에서 자정능력을 상실했으니 속세 법이 회초리 역할을 대신할 수 밖에 없다. 불행한 일이다. 자체 정화능력을 상실한 조게종.

 

조계종 총무원장의 위상은 땅바닥에 추락했다. 오는 28일 석가탄신일을 앞둔 마당이다. 무슨 면목으로 스님들이 석가탄신일 신도들 앞에 나설 것인가. 생각만 해도 등골이 서늘하다. 따가운 국민의 시선을 어떻게 마주할 것인가. 부처님법을 등불로 삼고 사는 참스님조차 도매금으로 탈선스님이 되는 것은 아닌가. 

 

계를 받을 때 부처님에게 맹세한 계율을 헌신발처럼 내던진 스님들이 무슨 할말이 있을까. 유구무언이며 모든 직책을 내려놓고 참회 수행에 정진해야 한다. 국민의 눈높이 보다 더 엄중한 성찰과 반성을 해야 한다.

 

일미칠근(一米七斤)이라고 했다. 시줏물 쌀 한톨에 업(業)이 일곱 근이라는 말이다. 시주자의 노고를 생각한다면 쌀 한톨인들 가볍게 여길 수 없다. 술과 담배값, 도박판돈은 누구 돈인가. 시줏돈이라면 그 업이 얼마나 될까.

 

 

스님들이 해야 할 일은 계행을 청정히 하는 일이다. 부지런히 염불하고 참선하고, 그래서 견성 성불하는 일이다. 계율을 사다리로 삼아 수행에 정진해야 한다. 

 

 

비우지 않으면 채울 수 없다. 모든 스님들은 산문을 닫고  참회하라. 속세에 모습을 드러내자 말아야 한다. 종단을 청정하게 개혁해야 한다. 스님들이 변해야 조계종이 산다. 스님들은 청정종단을 살리기 위해 이제부터 고난의 수행길을 걸어 가야 한다.  입산. 그 일만이 진흙탕에 빠진 조계종을 구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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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문성
붓다 뉴스2012/05/14 13:20

스님 도박과 음주 파문의 당사자들이 14일 참회문을 발표했다.

 

그러나 뒤늦은 후회요 참회다. 

참회문은 직접 낭독하지 않고 중앙종회 사무처 담당자가 기자들에게 이메일로 전달했다.

 

이런 참회문 발표는 생각하기에 따라 진정성에 의문을 가질 수 있다.  잘못한 사람이 말이나 글로 구구절절 참회하고 반성한다고 밝히는 것은 당연하다.  문제는 진정성이다. 당장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소나기를 피하는 심정으로 입에 발린 참회문을 발표 했다면 위중한 지금의 사태를 오판하는 것이다. 참회문으로 해결될 사건이 아니다.  이제부터 조계종은 출가당시 초심으로 돌아가 구태를 청산하고 새롭게 태어나야 한다. 

 

 지금 조계종단은 위기다. 도덕성에 치명타를 입었다. 무엇으로 청정계율의 조계종단을 거듭 나게 할 것인가. 인기연예인이 도박을 해도 퇴출대상이다. 하물며 부처님 제자로 먹물 옷을 입고 계율로 사는 스님들이 일반인 보다 못한 도박에다 음주, 담배피웠다면 연예인에 비할 바가 아니다. 이에 더해 조계종 고위층의 다른 비리 동영상이 있다는 나돌고 있다. 몇몇 엉덩이에 뿔난 스님들이 조계종단을 망치고 있다.   

 

참회문을 발표한 당사자들이 어떻게 참회할 것인지 알 수 없다. 그저 말로만 참회하니 용서해 달라고 한들 그것이 용납될리 없다. 평생 토굴에서 정진하며 참회할 것인지 아니면 봉사를 하며 참회할 것인지를 구체적으로 밝혀야 한다. 그리고 모든 걸 훌훌 털고 떠나야 한다.  

 

더욱이 무엇이 두려워  참회문에 토진 외 관련자 일동이라고만 명시했는가.  조계종단을 이렇게 만들어 놓고 자신들의 이름 석자를 밝히기 두려운가. 이들의 참회문을 보면서 갖는 의문이다. 과연 진정성 있는 참회문인가.  

 

다음은 발표문 전문.

 

귀의 삼보하오며,

금번 소위 사건의 당사자들로서 전 국민과 불자님들께 공분을 일으키는 행동을 한데 대하여 깊고 깊이 참회하고 또 참회합니다.

 

어떠한 변명으로도 용납될 수 없는 더 이상 씻지 못할 죄를 지었습니다. 그 어떤 지탄과 엄중한 처벌도 달게 받겠습니다.

 

이제야 참회문을 내는 것은 그동안 염치가 없어서 차마 언급조차 못했을 뿐이며 잘못을 덮으려는 것이 절대 아니었습니다.

 

이미 호법부 조사에 사실대로 충실이 임했으며, 검찰의 조사에도 한 점 가감 없이 성실히 응할 것입니다.

저희들로 하여금 정진과 포교에 힘쓰시는 모든 스님과 불자님께 큰 상처를 입혀 드린대 대해 다시 한 번 깊이 참회 드립니다.

 

앞으로 숨조차 쉴 수 없는 삶이 되겠지만 그 또한 참회의 나날로 삼아 영원히 반성과 참회의 시간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다만, 한 방울의 먹물이 전체의 맑은 물을 흐리듯, 저희들로 하여금 모두의 수행자들이 매도되는 일이 없도록 굽어 살펴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저희들의 잘못된 행동이 정치적으로 이용되는 일이 없기를 바라며, 사부대중께서 잘 가늠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무릎 꿇어 돈수합장하고 통렬히 참회하며 용서를 빕니다.

 

토진 외 관련자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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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문성

 

양승택  총장은 학사운영에 새로운 모델을 제시했다. 

 

먼저 1년 3학기 전일제 수업으로 교과이수기간을 단축시켰다. 또 실무능력을 배양하기 위해 인턴과정으로 연구기관이나 산업체 등지에시 현장근무를 하도록 했다. 특히 경영을 아는 기술인력, 기술을 아는 경영인 양성을 위해 공학부는 경영과목을 , 산업경영학부는 공하과물을 필수과목으로 수강토록 했다. 양 총장은 대학교 근무 규정도 엄격히 적용했다. 심지어 교수들도 9시 이전에 출근하도록 했다. 예외를 두지 않았다.

 

양 총장의 말.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일단 정한 규정은 누구나 예외없이 지켜야 합니다. 원칙대로 했을 뿐입니다. 교수 복무규정을 별도로 정하지 않은 이상 직원들과 같은 규정을 지키는 것이 당연합니다. 직원이 지각이나 결근을 하면 규정대로 처리하고 교수는 지각이나 출근하지 않아도 그냥 넘어가는 것은 용납할 수 없습니다.

더욱이 IT 특성화 대학으로 학생들이 교수지도를 기다리고 있는데 교수가 강의만 하고 할 일 다했고 생각하는 것 역시 용납할 수 없었습니다. 그대신 교수의 급여는 국내 최고수준으로 책정했습니다.”

 

양 총장의 알려지지 않은 재주 한가지.

양 총장은 대학교의 교가(校歌)도 작사 작곡했다. 그는 한국전자통신연구원장 재임시절 원가(院歌)도 작사작곡한 경력이 있다. 처음에는 교가를 공모했다. 하지만 당선작이 없었다. 그가 직접 나서 교가를 작사작곡했다. 그는 학창시절 바이올린 악기를 다뤘다. 양 총장의 노래실력은 별로라고 한다. 작사작곡 잘한다고 노래까지 잘하라는 법은 없다.

 

학생 모집까지 끝낸 대학측은 첫 입학식을 3월2일 갖기로 했다. 대학측은 각계인사들에게 초청장을 보냈다.

그해 3월2일.  충남 대덕연구단지내 한국정보통신대학원대학교 교정으로 희망에 부푼 신입생들이 몰려 들었다. 누런 교정 잔디밭에는 연한 녹색 물이 스며들어 봄 기운이 완연했다. 봄바람의 훈기가 사람들의 귀를 간지럽게 했다.

 

 

이날 오후 3시 30분.

한국정보통신대학원대학교(사진)는 강당에서 개교 첫 입학식을 열고 21세기 정보통신분야 리더양성을 위한 신입생들을 맞았다.

 

김대중 대통령은 이날 개교를 맞아 축하메시지를 보냈다. 취임 후 첫 메시지였다.

김 대통령은 이 메시지에서 “21세기 지식정보화시대를 앞두고 한국정보통신대학원대학교가 개교하는 것을 국민과 같이 축하한다”면서 “지식정보화시대의 준비는 ‘국민의 정부’가 추진하는 과제 가운데 하나라는 점에서 대학교의 개교는 더욱 뜻깊은 일”이라고 강조했다.

 

김 대통령은 “정보통신산업은 새 세기의 미래정보사회를 실현하는 기반으로서 우리의 경제사회 발전을 위해 꾸준히 육성해 나가야 할 필수적인 산업분야”라며 “정보통신기술과 산업 발전을 위해 관련 전문인력 양상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 대통령은 “대학교는 앞으로 정보통신산업체가 요구하는 연구과제 수행능력을 갖춘 우수한 전문인력을 많이 배출하고 정보통신분야의 벤처기업을 창업하는 요람이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입학식에는 박성득 정통부 차관과 홍선기 대전시장, 윤덕용 KAIST원장(현 포스텍부이사장) 등과 학부 및 대학원 신입생들과 학부모 등 내·외빈이 참석했다.

 

입학식은 학교설립 경과보고, 총장 식사, 정통부차관 축사, 신입생 선서 등으로 진행했다.

 

양승택 총장은 식사에서 " 정보통신대학원대학교는 기존 대학과 차별화, 특성화를 통해 21세기 한국 정보통신 기술혁신을 주도할 고급 전문 인력을 배출하는 세계 초일류 연구중심 대학으로 도약할 것“이라며 ”신입생들은 자신의 목표를 설정하고 그에 필요한 역량을 갖춰 개인과 국가 목표를 함께 성취해 달라"고 당부했다.

 

축사를 맡은 박성득 정통부 차관은 “정보화와 정보통신산업 발전의 성패는 기술개발과 이를 뒷받침할 전문이력의 양성에 달렸다”면서 “ 그동안 우리는 고도정보통신산업분야 경쟁력의 원천인 석.박사급 고급인력이 부족했고 앞으로 인력난을 더욱 심해 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 차관은 이어 “정부는 2005년까지 정보통신산업을 세계5위권 국가로 발전시킨다는 목표이며 2010년까지는 세계 최고수준의 국가사회 정보화를 실천할 계획”이라며 “여러분들이 대학교에서 연구와 학문에 정진해 우리나라의 정보화촉진과 첨단 기술발전을 선도해 달라”고 강조했다.

 

이날 입학식에 재단 이사장인 정통부 장관이 불참했다. 대신 정통부차관이 참석해 축사를 했다.

그 이유는 이렇다.

1997년 12월18일. 제 15대 대통령 선거가 실시됐다. 선거결과 국민회의 김대중 후보(작고)가 15대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이듬해인 1998년 2월25일 오전10시. 김대중 대통령은 서울여의도 국회의사당 광장에서 취임식을 작고 임기 5년의 제 15대 대통령에 취임했다. ‘국민의 정부’ 출범이다.

김영삼 정부의 각료들은 새정부가 출범함에 따라 2월24일 모두 사퇴했다. 강봉균 장관도 2월24일 이임식을 갖고 떠난 후 였다. 그런데 김대중 정부의 새 내각 발표가 지연됐다. 정통부 장관은 공석이었다.

 

김대중 대통령은 3월 3일 개각을 발표했다. 정통부 장관에는 배순훈 대우프랑스지역본사사장(대우전자 회장. 국립현대미술관장역임)이 발탁됐다. 배순훈 정통부 장관은 그해 3월5일 급거 귀국해 취임식을 가졌다.

이런 사정으로 박성득 차관이 장관을 대신해 입학식에 참석해 축사를 한 것이다.

 

한국정보통신대학교의 개교는 ICT강국 코리아의 새 미래를 여는 일이었다. 정보통신 인재양성의 출발점이기도 했다.(한국정보통대학교 통합 이야기는 추후 다루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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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 뉴스2012/05/13 21:46

 

“불교계 고위층 음주,음행 동영상 있다”

 

검찰에 도박한 스님들의 고발장을 접수한 성호스님이 서울신문과 13일 가진 단독 인터뷰에서 이같이 밝혔다. 검찰이나 조계종의 처리결과에 따라 제2의 핵폭탄을 터트릴 수 있음을 암시한 발언이어서 앞으로 후폭풍을 예고했다.

 

서울신문에 따르면 성호 스님은  “이(도박동영상)보다 더 큰 핵폭탄이 있다.”면서 “도박한 승려에 대한 검찰 수사와 종단의 대처 방안을 보고 터뜨릴지를 결정하겠다.”면서 “ 도박, 음주, 음행, 축재를 일삼는 부도덕한 승려들을 단호히 퇴출시켜야 한다” 고 강조했다.

 

 

그는 “승려들의 도박, 음주, 음행, 횡령, 은처(隱妻·부인을 숨겨 두는 행위)가 고위층에도 존재하며 그에 관한 자료, 사진, 동영상을 갖고 있다.”면서 “그것을 제가 폭로하지 않도록 그 전에 승단이 정화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는 고발장을 접수한 후 "신변 위험을 느껴 거처를 옮겨 다녔다"면서 “동영상은 대웅전에 기도하러 가는데 부처님 앞에 휴대용 저장장치(USB)가 놓여 있었다. 그게 지난 7일이었다. 시간은 말씀드리기 어렵다. 컴퓨터에 넣어 보니까 도박하는 영상이었다. 부처님께서 나한테 심부름 시킨 일이란 생각이 탁 다가왔다”고 설명했다.

 

 

그는 “운명적으로 내가 (고발)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한국 불교를 위해 희생이 되는 한이 있더라도 종단이 잘되기 위해선 아픔과 희생이 있어야겠다고 생각”해 고발장을 접수했다고 말했다.

 

 

그는 총무원 내 계파 간 갈등이 얽혀 있다는 시각에 대해 “백양사 내분은 모른다. 도박한 스님이 백양사 문중이라고 하는데 난 모르겠다”면서 “도박한 스님중 세 명은 안면이 있지만 그들은 승려가 아니라 술 마시고 담배 피우면서 스님처럼 위장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성호 스님은 “중벼슬은 닭벼슬이라고 했는데 스님들이 권력놀음에 심취해 있다. 국회의원을 국민이 걱정하듯 국민들이 종교인을 걱정한다. 자정능력을 상실했다. 파사현정(破邪顯正)을 했으면 이런 사태가 안 났을 것이다. 해외에서 몇백억원을 잃었다는 스님들도 있다”고 전했다.

 

그는 자승 총무원장이 대국민사과에 대해 “그건 쇼다. 그 사람이 나가야 한다”면서 “중이 고기 맛을 알면 절간에 빈대가 남아나지 않는다고 하지 않는가. 스님은 정진수행하고 돈 관리는 신도들이 해야 한다. 제가 고발한 것은 고발장에 적시한 피고발자에 한정한 것이 아니라 계율을 어긴 스님을 다 청소해 달라는 것이다. 사회악 척결차원에서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번 처리결과를 봐서 종단이 정신 못 차린 것 같으면, 검찰 수사가 미진하면 한다. 정치적인 중들, 종단을 사당화한 세력들, 처자식 숨겨 놓은 스님들은 종단에서 특별기구를 만들어 다 뿌리 뽑아야 한다.”면서 “추가로 폭로할 자료가 있다. 어마어마한 것이다. 서류, 동영상, 사진도 있다.”고 말했다.

 

고발장을 낸 성호스님은 1976년 금산사에서 출가했다. 동국대에서 선학과 박사를 마친 뒤 충남 대조사, 경북 운남사, 전북 금당사 주지를 했다. 송월주 스님의 총무원장(1994~98년) 시절 호법부 상임감찰, 사업국장, 사서실(비서실) 차장을 지냈다. 2009년 총무원장 선거 때 현 자승 총무원장과 관련된 괴문서를 배포했다는 이유로 멸빈(승적 박탈)의 징계를 받았으나 법원에서 제적 징계의 효력 정지 판결을 받은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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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 뉴스2012/05/11 14:09

TV뉴스를 보다가 내 눈을 의심했다.

 

화면에 "유명 사찰 승려들 '억대 도박"라는 자막이 나왔다. 저게 무슨 소린가.

 

기자의 보도 내용을 듣는 순간, 억장이 무너졌다. 삼보 중 승보가 하나가 무너지는 소리였다. 

 

TV화면 속의 저들은 누구인가.

현금이 수북이 쌓인 담요 주위에 몰려 패를 살피고,  드러눕고, 담배를 깊숙이 빨아들이며 카드를 만지작 거리고, 속옷 차림으로 칫솔질을 하며 도박판을 지켜보는 이들이 이들이 정녕 청정지계를 실천해야 할 조계종 소속 스님이란 말인가.

 

불.법.승 삼보로 신도들한테 삼배를 받은 스님들이 호텔에서 고작 한다는 일이 도박과 술판, 담배질이란 말인가.  이런 스님들이 경배의 대상인가.

 

조계사 전 주지이자 조계종의 국회의원 격인 중앙종회의원까지 이 도박판에 앉아 있었다. 일행은 8명. 지난 4월 23일 저녁부터 다음 날 아침까지 이 호텔방에서 밤샘 포커도박판을 벌였다는 것이다. 충격이다.

 

조계종 종정 종정 스님은 5월 9일 불기2556년 부처님오신날 봉축 기자회견에서 "이들은 삭발염의하고 시줏밥 먹을 자격이 없다. 먹물옷 입을 자격도 없다."고 경책한후 "출가자로서 우를 범하고, 못난 짓을 해서는 안 된다"고 승가의 지계청정을 당부했다.

 

총무원장 자승 스님은 지난 5일 사건을 보고받고 "즉각 전원 소환해 종헌 종법에 따라 엄벌하라"고 지시했다. 9일 검찰에 고발장이 접수돼 수사는 불가피하다. 10일에는 총무부장·기획실장·재무부장·사회부장·문화부장·호법부장 등 집행부 6명이 총사퇴했다. 반성의 모습이다.

 

자승 스님은 11일 오후 참회문을 발표했다. 그런다고 이같은 사건이 근절될까. 그럴 것 같지 않아 걱정이다.

 

부처님이 열반을 앞두고 말씀하셨다. 사후 1000년은 정법시대라고 하셨다. 불법에 충실하고 모두가 도를 증득하는 시기라고 했다. 그 다음 1000년은 상법시대라고 하셨다. 설법을 많이 듣고 실천하며 탑을 쌓고 사찰을 장엄하게 꾸미는 시기라는 것이다.

 

문제는 그 이후인 말법시대다. 말법시대는 진리는 퇴색하고 교파간 다투고 투쟁을 일삼는다는 것이다. 올해로 불기2556년이니 이미 말법시대에 접어들었다.

 

검찰은 고발장(사진. 뉴시스)이 접수된 만큼 11일부터 수사에 착수했다. 법대로 엄정 수사해야 한다.

 

내가 시절인연을 맺었던 해인사 길상암 명진 스님은 시줏돈이 무섭다며 어디 갈 때 스스로 김밥을 말아 가셨다. 내가 길상암에 머물 때 배춧잎 하나 그냥 버리지 않았다.  그의 은사인 영암 스님(총무원장 역임)은 종단일로 출장후 동전 한 잎이라도 남으면 꼭 반납했다. 옷도 주머니가 두 개여서 개인돈과 공금을 나눠 넣었다고 한다.  

 

 

이번 사건에 대해 조계종단은 책임을 져야 한다.  참회발표만으로 넘어갈 일이 아니다. 이미 일부 스님의 탈선은 드러나지 않았지만 내부에서 말이 많았다. 그런데도 조계종 집행부는 탈선을 바로 잡지 못했다.

 

이번 조계종 집행부 사퇴는 수순이 잘못됐다. 자승 총무원장이 먼저 물러나야 할 일이다. 수장은 그대로 있고 그가 임명한 집행부가 물러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총무원 직할사찰인 조계사 주지가 도박판을 벌였다면 총무원장 책임이다. 그런 스님을 조계사 주지로 임명했기 때문이다.  

 

조계종의 위상은 땅에 떨어졌다. 그동안 총무원은 뭘했나. 감찰부나 호법부는 뭘했나. 해야 할 일은 제대로 못한 책임을 져야 한다. 이들의 승적도 박탈해야한다. 법적인 책임도 물어야 한다.

 

 

이제 불교신도들이 깨어 있어야 한다. 사미계 10계를 어기는 스님들이 더 이상 조계종에 발붙일 수 없게 해야 한다. 눈밝고 청정한 신도들이 있는한 타락한 스님들이 부처님 이름아래 탈선할 수 할 수 없다. 진흙탕 속에서 피는 연꽃처럼 아무리 말법시대라도 해도 이 세상을 밝힌 진정한 도인은 세상에 있는 법이다.

 

 그래도 억장이 무너지고 울화기 치미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럴바엔 왜 부처님 제자가 됐는가. 이들은 무소유를 알기나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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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처기업 팬택.

한국정보통신대학원 대학교 외부 장학금1호다.

 

1997년 9월 29일 정보통신부 장관실.

 

벤처기업인 팬택의 박병엽 사장(현 팬택부회장)이 강봉균장관(지경부 장관역임. 현 민주통합당 국회의원)과 박성득 차관(현 한국해킹보안협회 회장), 정홍식 실장(정통부차관 역임. 현 한국정보기술협회 이사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양승택 정보통신대학원대학 총장(정통부장관. 동명대 총장 역임. 현 인터넷스페이스타임 컨소시엄대표)에게 장학금 1억원을 전달했다. 외부 장학금 1호인 ‘팬택장학금’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양 총장은 장학금을 전달받고 앞으로 사용 방침을 밝혔다.

“감사합니다. 팬택이 기부한 장학금을 ‘팬택장학금’으로 별도 계정을 만들어 매년 이익금으로 중소기업체 소속 재학생중 성적이 우수한 학생에게 장학금을 지급하겠습니다.”

 

그해 12월6일.

교육부가 한국정보통신대학원대학교 설립을 허가했다. 정원은 210명이었다. 정통부와 정보통신인들의 10여년 간구(干求)가 실현된 것이다.

 

대학교측은 그해 12월부터 신입생 모집 원서를 교부했다. 모집학부는 공학계열로 정보공학부와 통신공학부, 기조전자공학부를, 인문사회계열로 산업경영학부 등이었다. 이 중 석사과정이 160명이고 박사과정은 50명이었다.

지원자격은 석사과정의 경우 4년제 대학 졸업자 또는 졸업예정자이며 박사과정은 석사학위 소지로 구분했다. 이들은 일반전형과 특별전형으로 구분해 선발다.

 

특별전형은 해당분야에서 2년이상 실무경력이 있는 사람으로 소속기관장의 추천을 받은 자로 한정했다.

대학교측은 그해 12월 18일 서류심사결과를 발표하고 19일부터 24일까지 면접시험을 치렀다. 그리고 12월 29일 최종 합격자를 발표했다.

양 총장은 학생선발시 기본요건만 정하고 나머지는 교수들에게 선발권을 넘겼다.

 

양 총장의 회고.

 

“대학에서는 학생 모집의 기본 요건만 정하고 나머지는 교수들이 면접 전형에 따라 선발하도록 했다. 대신 학생들의 학비는 전액 부담하게 했다. 학생은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에 인턴으로 보내든지 아니면 교수가 연구비를 외부에서 유치해 보조연구원(RA)으로 책임지게 했다. 그것은 학비를 전액 부담해 받은 혜택은 쉽게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고 나중에 사회에 나가서 그 혜택을 환원할 생각보다는 더 큰 혜택을 바라게 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항공사에서는 그 항공사 파일럿 학교 출신들이 특권을 요구하고 경찰에서는 경찰대 출신들이 더 많은 특권을 요구하는 것이다".

신입생 모집에 공무원도 7명 응시했다. 소속 장관의 추천을 받아서 왔다. 이들은 장관의 추천을 받은 만큼 다 입학시켜 줘야 하는 것 아니냐는 식으로 말했다. 하지만 이들을 면접한 교수들은 대학원생 자격에 미달한다고 말했다. 교수들과 여러차례 회의를 해 자격 미달인 사람을 입학시켜 학위를 주면 IT 특성화 대학의 질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7명 중 서기관 한 사람만 합격시키기로 했다. 그 서기관도 학교에 몇 번 나오다가 자퇴했다. 잘 한 결정이라고 생각했다.

공무원사회에서 대학교를 비난할지 모르겠지만 국민 세금으로 월급 받고 학교에서 적당히 지내다가 학위나 받아가겠다는 생각이 아니고서는 달리 설명할 수가 없었다. (자서전 ‘끝없는 일신’에서)”

 

당시 통신공학부 박성욱 교수(현 KAIST 전기전자공학과 교수)의 증언.

 

“학생 선발권은 교수들이 행사했어요. 학교에서 만든 기본요건 외에 나머지는 제가 판단해 학생을 뽑았어요. 모두 5명을 선발했는데 학생들의 학비를 전액 부담했습니다. 이들은 인턴이나 혹은 보조연구원으로 활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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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통신위원회2012/05/09 13:41

 

조직의 수장은 개인의 이익 대신 공동체 발전에 전력 투구해야 한다.

그게 아니면 그 조직이나 개인은 몰락한다.

 

2008년 4월7일 광화문 인근 한정식 집.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사진)이 전직 체신부 및 정보통신부장관들을 초청, 간담회를 가졌다. 전직 장관들은 이명박 대통령의 멘토이자 정권 출범의 공신이 최 위원장에게 거는 기대가 컸다.

 

모 전직 장관은 약속시간보다 30분 전에 약속장소에 나왔다. 최 위원장에게 꼭 해줄 말이 있어서였다.

조금 있자 최위원장이 도착했다. 그는 최 위원장에게 15분간만 면담하자고 요청해 두 사람은 마주 않았다.

모 전직 장관은 최위원장에게 두가지 정책 조언을 했다. 그 중 하나가 합의제 기구의 문제점과 이를 타개하려면 독임제 부처로 후속 조치를 취하라고 말했다. 최 위원장은 그 장관의 말에 “충고 고맙다. 실제 와서 일을 해보니 제대로 하기 어려운 구조였다. 잘 알겠다”고 시원시원하게 대답했다. 

 

2010년 3월18일.

최시중 위원장이 기자들과 만나 “정통부 해체는 잘못됐다”고 발언했다. ICT업계는 귀를 의심했다. 그동안 정통부 폐지로 인해 ICT컨트롤타워 신설이 필요하다는 여론이 높았다. 그런 판에 이명박 정권 실세인 최 위원장이 그런 말을 했다 . 당연히 ICT업계는 '이제 제대로 정보통신정책이 추진될 것'이며 기대를 걸었다.

 

 

2010년 4월13일.  

입법부 수장인 김형오 국회의장이 나섰다. 그는 "정보통신과 콘텐츠, 원천기술 등을 총괄한 통합 부처를 만들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는 이명박 정부인수위 부위원장으로 정통부 폐지에 책임이 있었다. 

 

 

이 정도라면 정부는 서둘러 개선책을 내놔야 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나 방통위는 후속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오히려 최 위원장의 언행이 모호해졌다. 그를 비롯한 청와대 고위관계자들은 이구동성으로 "방통위의 기능 문제는 이명박 정부 출범 직후부터 문제가 돼왔던 부분인 만큼 계속 문제 삼을 것이 아니라 한 번 더 개편해야 하고, 개편은 다음 정권의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서 하면 좋을 것 같다"는 식으로 말했다. 이 정부에서는 조직개편을 하지 않겠다는 의미였다. 청와대 비서관들도 이 문제에 관해 "사정을 잘 알지만 이 정부에서 조직개편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권한도 실익도 없는 청와대에 IT특별보좌관을 신설했다. 

 

 

최 위원장은 2011년 3월17일 국회에서 열린 연임 인사청문회에서 홍사덕의원이 "과학기술부, 정보통신부가 없어지고 그 기능 중 일부를 과학기술위원회에 맡기는 희안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며 "방통위의 기능은 미국 FCC에 준하게 하고, 과기부는 되살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 위원장은 이 말에 "구구절절 공감한다"면서도 “차기 정권에서 하면 좋겠다”고 답변했다.

 

그는 독임제 형태의 정부조직 개편은 뒤편으로 밀어놓고 KBS수신료 인상과. 통신요금 인하, 종편 허가 등에 매달렸다. 제4이동통신도 추진했으나 불발에 그쳤다.

 

 

그러는 사이 한국은 허울좋은 ICT강국이 됐다. 방통위에 통신은 없다는 비아냥이 나돌았다. 더 심각한 점은 방통위 조직의 무기력증이었다. 공무원의 꽃이라는 1급 자리에 오르면 1년을 넘기지 못했다. 1급 실장의 지시를 실무과장이 안듣는다는 말이 나돌 정도였다. 1년만 있으면 나갈 실장의 지시를 누가 받겠는가.

 

 

각종 측근 비리설이 꼬리를 물자 최 위원장은 2012년 1월27일 오후 4시 긴급기자회견을 열고 사임했다.

그는 퇴임사에서 "방송통신위원장으로서의 직무 수행에 대해서는 한 점 후회가 없다"고 자신있게 말했다.

그는 “재임 내내 방송통신산업을 앞으로 후손들이 20~30년 후 먹거리가 될 것이라는 믿음으로 초석을 다진다는 믿음으로 임했다”며 “극도의 반대가 있었지만 방송산업 개편 시도는 미디어혁명의 걸음이란 생각으로 노력했다”고 밝혔다. 그는 "방송발전을 위해 정열을 바친 선배로 기억해 달라"며 말했다.

 

 

그의 간절한 바람과는 달리 그는 처량한 모습으로 4월30일 알선수재혐의로 구치소로 갔다. 그는 지금 구치소에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그가 구속되기 전에 한 말처럼 “뭔가 대단히 잘못됐다”고 생각하고 있을까.

그의 최대 치적이라는 종편은 최악의 경영상태다. 현실에 맞지 않는 종편 4개 채널을 허가해 이미 M&A설이 나돈다. 방송정책은. 국민이나 산업발전보다는 정치적 이해에 치중했다는 지적이 많다.

 

그는 흔히 말하는 어쩌다 공무원이된 ‘어공’이다. 하지만 일단 공직자가 국가와 국민을 위해 제 역할을 하지 않았다면 그는 국민을 배신한 셈이다. 더욱이 최 전 방송통신위원장은 해야 할 일은 하지 않고 해서는 안될 이에 관여했다. 그결과는 참담했다. 그가 만약 해야 할 일만 했다면 지금 구치소에서 회한의 날을 보내고 있지 않을 것이다.

 

그의 과오는 두 가지다. 해야 할 일은 하지 않은 점과 해서는 안될 일은 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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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6월16일.

 

양승택 총장은 일간신문에 한국정보통신대학원대학교 교수초빙 광고를 냈다.

 

학부는 정보공학부와 통신공학부,기초공학부, 산업경영학부 등 4개 학부로 산업체나 현장 경력자는 우대하기로 했다. 응모자격은 해당분야 박사학위 소지자로 지원서와 자기소개서, 성적증명서 석.박사 학위증명서, 추천서 경력증명서 등이었다. 그해 7월12일까지 대학설립추진단에서 접수를 마감했다.

 

이들에 대한 심사는 7월 하순경 한국전자통신연구원 서울사무소에서 진행했다. 양승택 총장이 심사위원장을 맡았다. 서울대 이병기교수(방송통신위원회 상임위원 역임. 현 서울대 교수)와 KAIST 김길창교수 등이 분야별 책임자로 심사를 했다.

 

정보공학부와 통신공학부 심사를 담당했던 이병기 교수의 회고.

“설립추진단에서 사전에 만든 기준에 따라 심사를 했습니다. 저는 정보공학부와 통신공학부 책임자였고 심사위원이 7-8명 됐습니다. 꼬박 이틀간 심사를 했는데 유능한 인재들이 많았습니다.”

 

설립추진단은 심사결과 모두 27명을 교수롤 채용했다. 이중 13명이 한국전자통신연구원 출신이고 나머지는 다른 기관 출신이었다.

양승택 총장은 교수들에 대한 대우는 국내 최고수준으로 책정했다. 양총장은 정보통신대학원대학을 세계 일류 학교로 발전시키려면 우수 교수를 확보해야 하고 그러자면 국내 대학 수준보다는 높게 대우해야 한다며 이를 관철시켰다.

 

양승택 총장의 회고록 증언.

“대학을 처음부터 시작하다보니 모두가 신입 교원이었다. 그 중에 교수 경력이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은 5명에 불과했다. 교수법 교육을 일주일간 합숙으로 실시키로 했다. 한양대학교 교육공학과 허운나 교수(16대 국회의원. ICU총장 역임. 현 채드웍 송도국제학교 고문)에게 4천만원에 용역을 맡겼다. 충남 천안에 있는 상록회관에서 일주일간 합숙 교육을 실시했다. (회고록 ‘끝없는 일신’에서).

 

허운나 교수는 서울대를 나와 미국 플로리다주립대학에서 교육공학 박사학위를 받고 귀국해 한양대에 교육공학과를 국내 처음 개설했다. 16대국회 의원시절 세계IT국회의원연맹을 구성해 초대 회장을 역임했다.

 

허운나 전 총장의 말.

“교육공학 박사 학위를 받은 제자와 팀을 구성해 교수활동을 효과적을 수행하기 위한 방법을 연구했습니다. 교수방법과 문제해결 방법을 비롯해 교육목표, 방향, 교육과정 설계 등 교육 전반에 관한 방안을 제시했습니다. 창의적인 교수법과 자기주도의 학습 방법, 토론 방법 등을 설계했습니다.”

허운나 전 총장은 천안 상록회관에서 새 교수진과 합숙을 하며 이들에게 교수법을 강의하고 밤에는 토론을 했다.

 

허운나 전 총장의 회고.

“제가 2004년 4월 3대 총장으로 부임했더니 당시 합숙했던 교수들이 과거 일을 이야기하더군요. ”

그해 7월16일 교육부는 학교법인 한국정보통신학원 설립을 허가했다.

설립추진단은 그해 7월31일 학교인가서류를 교육부에 제출했다. 시설 및 교원 및 재산확보명세서를 비롯해 대학헌장, 학칙 등을 첨부했다.

 

강봉균 장관을 비롯한 정통부 간부들이 총 동원돼 교육부에 대학설립허가를 독촉했다.

 

강봉균 장관의 증언.

“경제기획원에 있을 때 KDI정책대학원 설립을 관철시킨 경험이 있습니다. 안병영 교육부 장관(교육부총리 역임. 현 연세대명예교수)에 이어 이명현 장관(교육선진화운동본부 이사장 역임) 등에기 과거 사례를 들어 빨리 허가해 달라고 부탁했지요. ”

 

박성득 정통부 차관의 회고.

“당시 교육부 장관은 차관을 거쳐 결재가 올라오면 곧장 처리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차관은 장관이 오케이하면 결재하겠다는 식으로 서로 미루며 허가를 해주지 않았습니다. 당시 교육부 이용원 차관(진주교대 총장 역임)과 계속 협의를 했습니다.”

 

정통부 김창곤 당시 심의관(정통부차관 역임. 현 한국디지털케이블연구원장)의 말.

“실무자들은 원칙에 어긋난다며 위에서 방침을 정해 주기 전에는 자신들은 결재를 올릴 수 없다고 했어요. 실무자들은 원칙론을 내세우기 마련이지만 아무튼 애를 먹었습니다.”

 

정통부 김인식 당시 기술기획과장(한국정보인증 사장 역임)의 말.

“실무선에서는 처리할 수 없다고 버티는 것입니다. 그동안 정통부에서 열린 대학설립추진위원회에 교육부에서 위원으로 참석해 놓고도 딴소리를 하는데 너무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담당 과장은 고시 1년선배인데 얼마나 완고한지 정말 고생 많이했어요.”

 

이 과정에서 당초 대학설립계획서에서 두 가지가 변경됐다. 첫째는 당초 특별법으로 추진했던 대학설립이 사립학교법으로 바뀌었다. 또 대학 명칭이 한국정보통신대학원대학교로 변경됐다.

 

그해 8월.

교육부 대학설립심사위원회에서 대학원대학 실사를 나왔다. 양승택 총장은 현금 100억원을 은행에 예치해 놓고 실사를 받았다.

실사 반원중 한사람이 학교 경계선에 벽돌담을 설치해 놓지 않았다며 문제를 제기했다. 양승택 총장이 상황을 설명해도 막무가내였다.

 

실사반장은 서울대 기계과 노승탁교수(서울대 명예교수)였다.

그는 양총장의 후배였다. 양총장은 그를 만나 사정을 설명했다.

 

노 교수가 시원스럽게 말했다.

“선배님 걱정마십시오. 제가 알아서 처리하겠습니다” 그의 말대로 실사는 잘 끝났다. 일단 한 고비를 넘기자 마음이 불이 커진 듯 미래가 밝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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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덕 칼럼/정치2012/05/07 12:32

 

 "국회에만 머물러 있지 않으려구요.
 마을에서, 일터에서, 여러분들의 삶 속에서 함께 울고 웃고 싶어요.
 진실한 마음, 소박한 모습으로 힘을 다해 살겠습니다.

 작은 사랑방 한 칸, 여기 마련했어요."

 

이정희 통합진보당 공동대표(사진)가  홈페이에  올린 인사말의 일부다.

실제 그는 진보의 아이콘이었다. 국민도 그를 주목했다.

 

그는 공직후보자 인사청문회장에서 단연  스타였다.  안경속 눈초리는 냉철했고 말소리는 차분했다. 하지만 질의 내용은 상대 심장을 찌르는 송곳이며 바늘이었다. 위장 전입이나 세금탈루, 병역 비리 의혹, 투기, 논문 중복 등이 그의 추궁을 벗어나지 못했다. 겉과 속이 다른 공직후보자의 진면목을 국민 앞에 드러나게 만들었다.

 

어물쩍 적당히 답변하는 공직 후보자들을 향해 그는 논리로 호보자의 가면을 벗겨 냈다.

그렇다고 구태 정치인처럼 책상을 치며 큰소리를 내지 않았다. 조곤 조곤 따지고 또 따졌다.  국무총리와 대법원장, 장관 들이 그의 질의에 진땀을 흘렸다. 국민은 서민 편에 선 그에게 박수를 보냈다.

 

 

그런 그를 본 사람들은 차기 혹은 차차기 대권에 도전할 인물이라고 평했다. 그는 학력고사 인문계 여자 전국수석을 차지했고 서울대 총여학생회장을 지냈다. 민주노동당 국회의원으로 국회에 입성해 대표를 지냈다.

 

그를 향한 각계의 찬사는 넘쳐났다. 여당 인사도 그를 높이 평가했다. 그의 블로그에 올라 와 있는 내용이다.

 

-보좌관이 뽑은 함께 일하고 싶은 국회의원 1위

=차세대 여성 파워리더 1위

-동료 국회의원이 뽑은 후원하고 싶은 국회의원 2위

-정치인 트위터 영향력 1위

-매년 선정되는 우수 국정감사의원

-당에 관계 없이 열정과 진심을 느낄수 있는 사람, 제일 존경하는 의원_ 새누리당 이준석 비대의원

-꽉 찬 사람, 차기에 진보진영을 이끌 차세대 의원_ 홍사덕

-이정희가 우파였다면 당장 영입했을 것_ 이한구

-이정희 처럼 가슴으로 정치하는 사람이 소중하다_ 전 총리 이해찬

 

그 스스로도 블로그에서 일잘하는 이정희, 실력있는 이정희이기에 가능한 결과였다고 했다. 

 

 

그랬던 그가 요즘 변했다. 지난3월 야권후보단일화 과정에서 벌어진 보좌관의 여론조작 파문으로 사퇴하면서 이미지에 흠집을 냈다.  물러나는 과정에서 분명한 처신을 못해 “매사에 딱 부러지는 이정희가 왜 저래”라며 점수를 까 먹었다. 기대가 컸던 만큼 그의 처신에 실망감도 컸다. 하지만 그가 위기를 잘 넘기면 전화위복이 될 것이고 생각했다.

 

그는 다시 닥친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경선 부정선거와 관련해 국민의 눈을 외면하고 있다. 반성한다면서 책임을 지지 않고 버티기로 일관하는 모양새다. 내부 갈등도 극심하다.

 

"유치 찬란하구먼"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진상조사위원장인 조준호 공동대표가 7일 한 말이다.  "왜 숫자만 발표하고 어디라고 발표를 안 하느냐.  근거없는 진상조사" 라고 이정희대표의 항의하자 한 말이다. 국민이 볼 때도 유치찬란하다.

 

 

조 대표의 말처럼 통합민주당 비례대표 경선 부정선거와 관련된 사태해결을 놓고 당권파와 비당권파가 벌이는 파워게임은 진흙탕 싸움이다. 자신의 추한 모습한 드러낼 뿐이다. 진보진영 내에서 조차 “이게 아닌데”라는 시선이 나온다. 당장 어떤 일에 시시비비를 분명하게 가리던 이정희에 대한 실망감이 적지 않다. 지나치게 한쪽 입장에 매몰된 아니냐는 비난도 있다. 

 

이미 통합진보당은 당권파와 비당권파의 입장이 갈려 있다. 어떤 선택을 하건 그것은 통합진보당의 몫이다.

분명한 점은 국'민 시각에서 결론을 내려야 한다는 사실이다.  국민 지지없는 통합진보당은 존재할 수 없다. 도덕성은 진보의 최우선 가치다. 조사위 문건에 드러난 부정선거 유형 10여 개는 너무나도 명백하다. 기성 정치인조차 혀를 찬다. 잘못했다면 사과를 하고 책임을 지는 게 해결의 수순인데 당권파는  성찰은 커녕 부정선거 진상을 조사한 조대표를 부실조사라며 몰아 부치고 있다.

 

만약 새누리당에서 이런 선거부정이 있었다면 이정희 대표는 뭐라고 했을까. 책임지고 지도부는 석고대죄하는 심정으로 사퇴하라고 질타했을 것이다. 그리고 검찰에도 부정비리를 수사하라고 다구쳤을 것이다. 그가 하고자 했던 말이 이번 사태의 해법이다. 

 

모 칼럼니스트는 “이정희의 언어에는 여의도의 칙칙함과 정치계산대신 인간적 깊이가 있다”고 칭찬했다. 지금 이정희의 가슴에는 정치계산대신 인간적 깊이가 있는가.

 

그를 향했던 각종 찬사와 기대가 이제는 실망으로 바뀌고 있다. 정녕 국회는 청정인물을 오명시키는 곳인가. 아니면 이정희를 우리가 잘못 본 것인가. 

 

그가 말하는 "진실한 마음 소박한 모습"은 어디로 갔나.  추락하는 이정희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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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가권자와 피허가권자는 갑(甲)과 을(乙)의 관계다.

한국정보통신대학원대학의 인가권을 가진 교육부 문턱은 높았다. 교육부는 갑이었다.

 

정보통신부는 정보통신대학원대학 설립을 위해 1997년 3월 교육부에 대학설립계획서와 대학헌장을 제출했다. 대학설립 운영규정 시행규칙에 따른 조치였다.

 

갑을 관계인 정통부와 교육부간 줄다리기가 이때부터 시작됐다. 정통부는 대학설립추진위원회 위원으로 교육부 장오현 고등교육정책실장(현 동국대 며예교수)를 위촉해 대학 설립기본계획을 심의하고 확정했다.

위원회는 교육부에 대학원대학 설립이 범정부 합의사항이고 법적 근거도 확보한 만큼 1998년 3월 개교에 차질이 없도록 협조해 줄 것을 사전에 요청했다.

 

그러나 막상 정통부가 대학원대학 설립을 추진하자 교육부 태도는 완고했다. 실무선에서 사사건건 브레이크를 걸었다.

 

대학원대학 설립을 추진했던 양승택 초대 총장(정통부장관. 동명대총장. 현 인터넷스페이스타임 컨소시엄대표)의 회고.

“교육부와 접촉을 해보니 교육부 담당자가 설립추진 직원에게 ‘교육부는 시골에서 돈 좀 벌었다고 콧대를 세워서 들어오는 사람을 납작 엎드려서 들어오게 만드는 곳’이라면서 연구원 부설로는 허가해 줄 수 없다고 했답니다. 우리 직원이 ‘ KDI는 부설로 할 수 있게 하면서 우리는 안된다고 하느냐’고 항의를 하니 ‘그건 장관들 사이에 서로 합의된 사항이어서 그렇다’고 대답했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정통부에 알아보니 아직 장관간 합의를 못했다고 하더군요.”

 

양승택 총장의 계속된 증언.

“ 그 배경을 알아보니 관할권 다툼이었어요. 교육부는 사립학교로 허가해 자기 관할에 두기를 원하고 정통부는 정보통신기금과 통신업계의 출연금으로 대학을 설립하니 당연히 관할에 두고자 했습니다. 사립학교로 허가를 받으면 교육부가 관할할 수 있고 사립학교의 재단 이사장은 정통부 장관이 맡으면 정통부의 소관이니까 그렇게 하는 것으로 양해를 얻고 사립학교로 설립신청서를 준비하기로 했습니다. .”

 

1997년 5월28일. 서울 서초구 한국전자통신연구원 서울사무소 회의실.

이날 학교법인 한국정보통신학원 창립총회가 열렸다. 총회에서는 한국정보통신학원 이사장에 강봉균 정통부장관(재경부장관역임. 현 민주통합당 국회의원)을 선임했다.

 

당연직 이사로는 정통부 정홍식 정보통신정책실장(정통부차관 역임. 현 한국정보기술협회 이사장)과 교육부 장오현 고등육실장, 한국정보통신대학원대학 양승택 총장을 뽑았다.

선출직 이사로는 한국통신사업자연합회 이계철 회장( 한국통신 사장 역임. 현 방송통신위원장) 핵심텔레콤 정창훈 사장(정보통신중소기업협의회장 역임), 대우통신 박성규 회장(한국통신산업협회장 역임), 현대전자 김영환사장(한국전파진흥협회장 역임), 정보통신정책연구원 이천표 원장(현 서울대명예교수), 항공대학교 이진교수(한국통신학회장 역임), KAIST 윤덕용 원장(현 포스텍 부이사장), 포항공대 박찬모 총장(대통령과기특보역임. 현 평양과학기술대학 명예총장), 한국전자통신연구원 조백제 고문(현 서울디지털대학교총장 )등이 선임됐다. 감사는 정통부 권영수 감사관(작고. 한국우취연합회장 역임)과 한국전자통신연구원 임병선 감사가 공동 선임됐다.

 

이사장 선임과 관련한 뒷이야기.

처음에는 강봉균 장관(사진)이 이사장직에 소극적이었다. 박성득 당시 정통부차관(현 한국해킹보안협회 회장)이 이 문제에 대해 교통정리를 했다.

 

박성득 차관의 회고.

“실무진에게 만약 장관께서 이사장직을 맡지 않으면 차관이 이사장직을 맡겠다고 장관께 보고하라고 지시했습니다. 이에 강봉균 장관이 이사장을 맡는 것으로 정리를 했습니다.”

 

이사회는 대학원대학에 위해 한국전자통신연구원의 6연구동과 행정 지원동을 포함하는 일대를 할애해 주기로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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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통신부는 정보통신대학원 총장선임을 위해 박성득 정통부차관(현 한국해킹보안협회 회장)을 위원장으로 총장후보선임위원회를 구성했다.

 

위원은 정통부 정홍식정보통신정책실장(정통부차관 역임. 현 한국정보통신기술협회 이사장)과 양승택 한국전자통신연구원장 등 정보통신분야의 학계와 산업계,연구계 인사 등 10인이내로 구성했다.

 

 

초대 총장 공모는 예상외로 난항을 겪었다. 1차 응모기간이 끝난 후 서류를 취합해 보니 3명만 응모한 것이다. 이들 중에서도 정통부가 기대하는 수준의 총장 후보자는 없었다. 더욱이 기대했던 외국석학은 한 사람도 지원하지 않았다.

 

정통부는 난감했다. 고심끝에 공모기간을 3월말까지로 연장했다. 정통부는 관련 학회와 대학 등에 후보자를 추천해 달라는 협조문을 보냈다.

2차 공모결과도 기대 이하였다. 모두 8명이 지원했다.

 

그해 4월15일. 정통부 차관실옆 회의실.

박성득 위원장 주재로 총장후보선임위원회가 열렸다. 회의가 시작되자 양승택 원장이 발언권을 얻어 의견을 개진했다.

“우선 심사에 들어가지전에 총장 자격을 정하자는 좋겠습니다. IT분야의 전문가라는 기준을 정해 놓고 그 기준에 맞춰 총장을 선임해야 합니다. 세계최고의 IT특성화 대학을 이끌 총장이 이 분야에 문외한이어서는 안될 일입니다.”

 

위원들이 양 원장의 주장에 동의했다. 그래서 이런 기준에 맞는 총장을 선임하기 위한 심사를 시작했다. 하지만 이 기준에 맞는 후보자가 한 사람도 없었다.

 

회의를 시작한지 얼마 안돼 박성득 위원장이 양승택 원장을 쳐다보며 말했다.

“양 원장께서는 잠시 제 방에 가서 기다려 주세요.”

“왜 그러십니까.”

“이유는 묻지 말고 잠시만 나가서 기다려 주세요.”

양 원장은 영문도 모른채 회의장을 나와 차관실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양승택 원장의 회고.

“회의도중 느닷없이 제게 ‘차관방에 가서 기다려 달라‘고 하니까 당황스럽잖아요. 이유를 물어도 대답은 안하고 무조건 자리를 잠시 비워달라고만 했습니다. 별도리가 없어서 차관실로 가서 우두커니 기다리고 있었지요.”

 

잠시 후 다시 회의실로 오라는 연락이 왔다. 회의실에 들어서자 위원들이 모두 박수를 치며 활짝 웃음을 터뜨렸다.

“왜들 이러십니까.”

박성득 위원장이 악수를 청하며 말했다.

“초대 총장으로 양 원장을 만장일치로 선임키로 했습니다. 축하합니다.”

 

박성득 전 차관의 증언.

“ 양 원장은 대학원 설립을 위해 헌신적으로 뛰어다닌 분입니다. 그런 분이 총장을 맡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양 원장을 총장으로 추천했고 다른 위원들도 다 동의해 그를 총장으로 선임한 것입니다. ”

 

초대 정보통신대학원 총장으로 선임된 양승택 원장(사진)의 회고.

“나는 회의실로 오라고 해 들어가 보니 여럿이 박수를 쳤어요. 왜 그러느냐고 물었더니 총장으로 선출된 걸 축하한다는 겁니다. 어쩔수 없이 한국전자통신연구원장과 총장직을 겸하게 됐어요.”

양승택 초대 총장.

 

그는 서울공대 졸업를 졸업했으며 해군 장교(중위)로 근무했다. 이어 미국 브루클린 종합기술연구소에서 전기공학 박사 학위를 받은 후 미국 벨연구소 연구원을 거쳐 지난 81년부터 86년까지 한국전자통신연구소(현 ETRI)I에서 TDX(全전자 교환기) 개발단장을 맡아 TDX 개발을 담당했다. 이후 한국전자통신연구원 원장으로 6년간 근무하며 이동전화 국내 표준인 CDMA 기술을 세계 최초로 상용화하는 데 크게 공헌했다. 그는 한국통신학회장도 역임했다.

 

그가 초대 총장으로 선출되자 그동안 신현욱국장이 맡고 있던 추진단장은 양 총장이 맡게됐다.

신현욱 단장의 말.

“저는 당시 정보통신관리단(현 정보통신정책연구원)수석전문위원을 겸하고 있었습니다. 제 업무는 한시적이었습니다. 양승택 원장이 초대총장으로 선출되면서 저는 그 업무에서 물러났습니다.”

 

대학원대학 설립추진단은 이에앞서 그해 3월 교육부에 정보통신대학원대학설립계획서와 대학헌장을 제출했다. 이 작업은 추진단에서 실무작업을 했다.

설립계획서에는 대학원 설립목적과 교육목표, 그리고 특성화 방안, 교육과정, 개설학부의 발전방안, 학사관리, 대학운영, 재정, 후생복지, 중소기업협동연구센터, 대학장단기 발전계획 등이 모두 포함됐다.

 

신현욱 단장의 증언.

“추진단에서 마련한 설립계획서는 자문위원회와 설립추진위원회 심의를 거쳐 확정했습니다. 이 계획서 작업을 하면서 외국과 국내 대학의 사례를 참고했습니다. 특히 KAIST를 많이 참고 했어요. 직원들이 밤샘을 밥먹듯이 하면서 계획서를 만들었습니다.”

 

정통부에서 이 업무를 담당했던 김인식 기술기획과장(한국정보인증 대표역임)의 기억.

“설립계획서는 실무자가 직접 교육부 대학지원총괄과에 가서 접수했습니다. 한시가 급한 사안이었습니다.”

 

이 작업은 설립추진반 기획팀에서 담당했다. 기획팀에는 김기복(ICU행정처장 역임). 양병우(ICU행정처장 역임. 현 KAIST글로벌e러닝센터장), 송민철(ICU행정처장 역임. 현KAIST무선자동차통신사업개발실장),김태권(ICU행정처장역임. 현 KAIST인공위성센터팀장) 등이 참여해 학교설립계획과 학칙 내규 등 법제작업을 진행했다. 이들중 김태곤 씨는 가장 늦게 기획팀에 합류했다.

 

기획팀에서 이 작업을 했던 송민철씨의 기억.

“당시 국내에서는 광주과학기술원과 KDI국제정책대학원의 사례를 참고했습니다. 광주과학기술원에는 출장을 가서 자세히 내용을 파악했습니다. 당시 대학원대학 개교시기를 1998년 3월로 잡고 있었습니다. 시일이 촉박해 날마다 야근을 했고 밤샘도 수시로 했습니다. 이렇게 어렵게 설립한 ICU가 10년만에 정치논리에 휘말려 통합하게 될 줄을 그 당시는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초대 총장으로 양승택 원장이 선임되자 대학원대학 설립은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그는 특유의 추진력과 친화력을 발휘해 난제들을 하나 씩 해결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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