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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자일기-행자2

암자일기

by 문성 2009. 12. 25.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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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이 지났다.

저녁 예불을 하는데 행자 복을 입은 한 중년이 법당 앞을 지나갔다.

간혹 절에 오래 머무는 사람 가운데는 편한 승복을 입는 경우가 있었다.

그래서 '길상암에 오래 머물 사람인가' 보다 하고 넘어갔다.


그날은 저녁 예불이 다른 날보다 길었다. 2시간 가량 예불에 참석하다 보니 심신이 피곤했다. 다른 날과는 달리 곧장 방으로 내려와 쉬었다.


이튼날 새벽 에불이 끝나 요사채로 내려와 방 청소를 하는데 그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안녕 하십니까. 새로 온 행자입니다.”

 “네?. 행자라고요”

 그는 40대 후반으로 보였다. 무슨 곡절이 있기에 늦깍이로 출가를 결심했을까. (사진-조선일보 홈페이지)   


그가 중년의 나이로 출가를 결심했다면 그 결정을 하기까지 숱한 번뇌의 밤을 보냈을 것이다. 그 곡절이 궁금했다. 하지만
처음 만난 그에게 속세의 일을 미주알 고주알 물어볼 수도 없었다.

그렇게 또 며칠이 지났다.
점심을 먹고 난 후 더위를 식힐 겸 요사채 앞 마루에 두 다리를 쭉 펴고 앉아 맞은 편 산을 쳐다보며 쉬고 있었다.


인기척이 나길래 돌아 보니 다름 아닌 중년 행자였다.

“어서 오세요. 힘드시죠”

나도 다소 무료하던 터였다.

그는 내 옆에 와서 앉더니 자신의 처지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가슴속에 맺힌 사연을 혼자 간직하기에는 가슴이 터질듯해 보였다. 나는 아무 말 없이 그의 이야기를 듣기만 했다.

 그의 고향은 순천이고, 중소기업 규모의 사업도 했다고 한다. 나이는 46살이며 고3인 장남과 차남 등 아들 둘이 있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듣자 ‘ 거 참 이상하네, 왠 중년들만 길상암 행자로 오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앞서 이곳에 왔다가 돌아간 행자도 중년이었다.
 나는 그의 이야기가 끝날 무렵 그에게 궁금하던 점을 물었다.

“그러면 사업이나 잘 하시지 무슨 곡절이 있어 출가를 하셨어요”

“ 세상살이가 너무 힘들어 출가를 결심했습니다” 

 
나는 그의 말을 들으며 그가 아직 완전히 속세에 대한 마음의 갈등을 정리하지 못했다고 생각했다.  만약 그가 진정한 출가를 결심했다면 구태여 속세의 일을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산다는 게 자체가 고행이다. 출가는 삶의 도피처가 아닌 것이다. 오히려 인생의 치열한 구도처가 절이다.


나는 이튼날부터 그를 말없이 살펴보기로 했다. 그는 하루 하루 번뇌속에 시달리는 모습이었다.
 하루 세 차례 예불에도 제대로 참석하지 않았다. 빠지는 경우가 있었다.  새벽에 마주치는 그의 얼굴은 잠을 자지 못해 부석부석 했다.

그가 20여 년간 인연을 맺고 산 가족과 결별하고 출가하기에는 지난 세월의 흔적이 너무 깊고 길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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