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안 선사는 한국판 주리반타가로 불린다.
해남 대흥사의 중흥조로 불리는 범해(梵海) 각안 스님(1820-1896)도 일자 무식이었다.
스님의 속성은 최(崔)씨다. 전남 완도군 군외면 범진에서 태어났다. 집안이 가난해 학문을 익히지 못하고 어릴적 부터 사찰 등으로 한지를 팔러 다녔다고 한다.
어느해 대흥사 진불암에는 당시 70여 명의 스님이 수행 중이었다. 마침 조실 스님이 동안거 결제법어를 하고 있었다. 이 때 한지를 파는 최 씨가 절에 왔다.
법당 뒤편에 앉아서 조실 스님의 법문을 들었으나 무슨 뜻인지 하나도 알 수 없었다. 무식이니 당연했다. 하지만 경건함과 조용한 절 분위기가 너무 마음에 들었다.
그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나도 스님이 될 수 있을까. 제발 그랬으면 좋으련만...”
몇 번이나 망설이던 그는 용기를 내 조실 스님 방을 찾았다.
“스님, 저도 출가를 할 수 있습니까.”
조실 스님은 말없이 그를 쳐다보았다. 조실스님은 그가 찾아 올 줄 알고 있었다. 스님은 어제밤에 부처님이 큰 발우 하나를 조실스님한테 건내 주는 꿈을 꾸었던 것이다.
조실 스님은 그 발우가 바로 최 씨라는 것을 알았다.
“출가하고 싶은 가”
“예”
“그대는 전생에 불법과 인연이 깊네. 열심히 공부해서 도를 이루도록 하게”
조실 스님은 그 자리에서 최 씨의 머리를 깎아 주었다. 이렇게 해서 그는 대흥사에서 출가를 했다.
하지만 이건 또 무슨 조화인가. 그날부터 행자로 열심히 염불공부를 했으나 한자도 외우지 못했다. 출가한 지 반 년이 지났으나 천수경 조차 외우지 못했다.
사람들은 그를 보고 ‘바보」라며 놀려댔다. 그는 견딜 수 없어 하산을 결심하고 조실 스님께 하직 인사를 하러갔다.
그러자 조실 스님이 ‘주리반타가’ 이야기를 들려주며 더욱 정진하라고 격려했다.
이에 용기를 얻은 최 행자는 일념으로 천수경을 읽고 또 읽었다.
어느 날 조실 스님이 잘자리에 들려는데 최 행자 방에서 불난 것처럼 훤하게 빛이 났다.
불이 난 줄알고 급히 내려가보니 최행자는 곤히 잘들어 있었고 그가 외우던 ‘천수경’에서 방광을 하고 있었다. 이 일이 있고 난 이튼날부터 최 행자한테서 이변이 속출했다.
문맹으로 글 한줄 못외던 최행자는 어떤 경이던 한 번만 들으면 잊어버리지 않는 불망염지(不忘念智)를 얻은 것이다. 이후 그는 한번 보고 들은 것은 모두 기억했다.
이에 최 행자는 계를 받고 각안이란 법명을 받았다. 그가 바로 대흥사 13대 주지를 지내면서 가람수호와 중생교화 등에 크게 기여한 범해 스님이다.
스님은 27세에 스승인 호의 시호( 始悟)선사의 법을 이어받고 진불암에서 개당해 선과 교를 가르쳤다. 22년 동안 경전을 강의하다가 1896(고종 33)년 12월 26일에 세수 77세, 법랍 65세로 입적하였다.
스님의 저서로는 ‘동사열전’과 ‘범해선사유고(梵海禪師遺稿’‘경훈기(警訓記’ 등이 있다.
대흥사 설경(사진-대흥사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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