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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수일 교수 인연 ‘정보통신기술 기적’

여행. 맛집. 일상

by 문성 2018. 12. 29.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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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가 저문다. 저무는 길목에 어김없이 송년회가 있다.

지난 18일 저녁 7시 한국IT리더스포럼(회장 윤동윤)이 서울시내 한 호텔에서 송년의 밤 행사(사진)를 가졌다. 한 해를 되둘아 보며 소중한 인연을 매듭짓는 자리였다.

이날 윤동윤 회장(전 체신부장관) 인사말에 이어 양승택 전 정통부장관과 곽수일 서울대 명예교수가 건배를 했다. 양 전 장관은 정보통신(정들면 보고 싶고 통하면 신난다), 곽 교수는 원더불(원하는 것보다 더 잘 풀리자)을 건배사로 했다. 이어 만찬과 공연순으로 한 해를 회고했다.

이날 송년모임 하이라이트는 곽수일 서울대 명예교수의 마지막 5분 스피치다.

곽 교수는 정보통신기술의 기적이라는 주제로 자신이 경험한 일을 말했다. 언듯 1번가의 기적과 흡사했고 황순원 선생의 단편소설 소나기를 연상했다. 잘 알다시피 소나기는 10대 소년과 소년의 풋풋한 첫 사람을 시적이고 서정적으로 그림 작품이다. 하지만 그런 첫사랑 이야기는 아니었다.

지금부터 68년 전. 서울 후암동에서 살던 당시 초등학교 4학년인 수일 어린이는 6.25가 터지나 부모님을 따라 남쪽으로 피난을 떠났다. 4일 째 날 경기도 안성에 도착했다. 장대같은 장마비가 퍼부었다. 도리없이 어느 집에 들어가 하룻밤 자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마음이 넉넉한 주인은 외양간 옆 방을 내줬다. 바닥에는 풀이 깔려 있었다. 그곳에서 하루밤을 자고 이튼날 같이 피난길에 오른 이웃이 주인께 사정해 그곳에서 7개월을 살았다. 9.28수복이 되자 서울로 돌아왔다.

곽 교수는 이후 전국 수재들이 다 모인다는 경기고등학교와 서울대를 졸업하고 미국 유학길에 올라 칼럼비아대학교 경영대학원 경영학 석사, 위싱턴대학교 경영대학원 경영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6726살에 서울대학교 교수로 부임해 406개월 동안 학생들을 가르쳐 최연소그리고 최장기교수라는 기록을 세웠다. 그는 경영학 교과서를 다수 집필했고 한국에서 내로다하는 많은 CEO를 배출했다. ‘한국 경영학의 아버지대한민국 CEO들의 영원한 스승으로 불린다. 1976년 국내에 처음 최고경영자과정을 서울대에 도입했고 이후 해마다 100여명씩, 2006년 퇴임할 때까지 30년간 CEO들을 가르쳤다. 이런 공적을 인정받아 신형 에쿠스 1호의 주인공이 되기도 했다. 세 번의 암 수술과 심각한 위출혈을 극복해내 불사조 교수란 별칭을 얻기도 했다. 한국생산관리학회 회장, 한국경영정보학회 회장, 서울대학교 경영대학 학장, 정보통신부 정보통신심의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다. 종신직인 대한민국학술원 인문사회 제6분과 회원이다. 현재는 서울대학교 명예교수다.

그는 강의나 외부 특강이 없으면 경기도 여주에 있는 일규 농장을 가꾸며 지낸다. 나무농장이다. 일규농장은 곽수일과 부인 최청규 여사의 이름 끝자를 한자씩 따서 작명했다.

최근 어느 날. 농장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부인한테서 전화가 왔다. 곽 교수 이야기를 토대로 당시 상황을 재구성해 본다.

무슨 일이요

손님이 찾아왔는데 빨리 내려오세요

일손을 멈추고 농장 안에 있는 농가로 내려갔더니 노년의 부부가 찾아왔다.

곽수일 교수님인가요

예 제가 곽수일인데요

혹시 6.25 피란을 안성으로 오지 않았나요

그렇습니다. 안성으로 피난갔지요

저를 모르겠습니까

글쎄요. 누구신지요?.”

곽교수는 기억이 나지 않았다. 어리둥절한 표정인 그에게 그 부인이 물었다.

제가 당시 집주인 딸입니다
, 그러면 그때 그 여학생인가요

당시 집 주인집에 여자 4학년 초등학생이 한 명 있었다. 그곳에 살 때 같이 물고기도 잡으러 다녔다. 주위 사람들은 곽 교수 부친을 수일 아버지로 불렀다. 서울로 돌아온 후 사업을 하던 곽 교수 부친은 간혹 지프차를 타고 신세진 안성 피난집에 들렸다고 한다.

어릴 적 소녀는 집안이 가난해 상급학교에 진학할 수 없었다. 하지만 머리가 비상해 당시 초등학교 6학년 담임 선생님 도움으로 진학했다. 소녀 이름은 춘자였다. 소녀는 73년 결혼 후 미국 시애틀로 이민을 갔다. 당시 담임 선생님은 교장으로 퇴직했다. 소녀와 담임 선생님은 그동안 연락을 하고 지냈다고 한다. 그 담임 선생님이 중병이 들자 춘자를 죽기전에 꼭 한번 보고 싶다고 말했다. 선생님 아들이 미국에 있는  춘자 여사에게 연락했고 선생님을 만나기 위해 한국에 온 것이다. 한국에 와서 68년 전 피난왔던 초등학생인 곽 교수를 수소문해 농장으로 찾아온 것이다.

그 부인 기억력은 대단했다. 대화 중에 68년 전 피난시절 같이 살던 한 살위 소녀 안부를 물었고 한다.

00는 어떻게 살아요

곽 교수는 기절초풍 할 뻔했다. 그 소녀 이름을 아는 집은 함께 피난살이 했던 세 집 가족뿐이었다. 그런데 68년 전 그 소녀 이름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니.

대학교수로 지내다 은퇴했습니다.”

곽 교수는 68년 만에 소녀와 해후가 가능한 것은 정보통신기술 덕분이라고 했다. 그 부인은 곽 교수를 찾기 위해 인터넷에 들어가 곽수일을 검색해 여주에 있는 일교농장으로 찾아온 것이다.

만약 한국이 정보통신기술 강국이 아니었다면 어떻게 68년 만에 사람을 찾아올 수있겠습니까. 이게 바로 정보통기술기술의 기적이 아닐까요

곽 교수의 말이 끝나자 우뢰같은 박수가 터져나왔다. 잊었던 추억을 되살리는 훈훈한 아야기였다. 68년만의 해후. 얼마나 가슴 벅하고 반가운 일인가. 감동실화의 키를 정보통신기술이 쥐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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