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 / 오세영
새해 첫날은
빈 노트의 안 표지 같은 것,
쓸 말은 많아도
아까워 소중히 접어 둔
여백이다.
가장 순결한 한 음절의 모국어(母國語)를 기다리며
홀로 견디는 그의 고독,
백지는 순수한 까닭에 그 자체로 이미
충만하다.
새해 첫날 새벽
창을 열고 밖을 보아라.
눈에 덮혀 하이얀 산과 들,
그리고 물상들의 눈부신
고요는
신(神)의 비어 있는 화폭 같지 않은가.
아직 채 발자국 하나 찍히지 않은
눈길에
문득 모국어로 우짖는
까치 한 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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