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11월13일) 자승스님이 좀 만나자고 해서 만났다. 고흥길 의원하고 나하고 세 사람이 앉아 식사를 했다. (불교 관련) 예산 문제에 대한 부탁을 받고 아침에 밥 한 그릇 했을 뿐이다. (조계종의) 템플스테이 예산, 숙원사업을 설명하고 끝났다. (압력설은) 말도 안 되는 소리다. 나는 불교 신자가 아니라 봉은사에 가본 적도 없고 명진스님을 잘 알지도 못한다. 그 사람이 좌파인지 우파인지 모른다”
(안상수 한나라당 원대대표가 21일 경항신문과 통화에서 한 말)
정말 그럴까. 그 반대다.
안 대표는 자승스님과 잘 알고 지낸 것이 설화를 자초했다. 아무리 집권당의 원내 대표라고 해도 조계종 총무원장한테 면전에서 대놓고 “현 정권에 비판적인 강남의 부자 절 주지를 그대로 두면 되겠느냐”는 식의 말을 할 수 없다.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 농담이라도 그런 말을 했다간 당장 법난이 일어날 사안이다. 전 조계종 지관 총무원장의 승용차를 한 경찰이 검문했다고 해 난리가 난 적도 있는데 이건 그보다 더 중대한 사안이다.
자승 스님도 안 원내대표와 지난 날 인연이 없었다면 먼저 연락해 불교계의 숙원사업을 설명할 수 없다. 과거부터 서로 잘 아는 사이라 터놓고 마음 속에 있는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을 것이다. 그것이 진실논쟁으로 번졌고 사회적 문제로 비화한 것이다. 문제는 그날 대화가 그것으로 끝났으면 탈이 안생겼을 것이다.
이런 발언이 처음 거론됐을 때 안 원내대표는 솔직하게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해야 했다. 정중히 사과하면서 “서로 잘 아는 사이라 허물없이 이야기를 하다보니 실언이 있었다”고 사과하면 사태가 이지경에 이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 일이 없었다고 오리발을 내미는 바람에 일이 더 커졌다. 더구나 그날 식사자리에 참석했던 처사가 그런 말들이 사실이라고 증언까지 한 상태다.
안 원내 대표는 자신은 불교신자가 아니라고 했다. 맞는 말이다. 그는 천주교신자다. 하지만 그는 봉은사에 가 본적은 없지만 지방에 있는 작은 암자에 가서 매년 묵었다.
'산사의 새벽 소리를 들으며 새로운 각오를 다집니다'라는 글에서 안 대표는 “기기암은 매년 한번 씩 찿는 암자”라며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회복하고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서 국민과 함께 힘을 모을 수 있도록 혼신의 힘을 바쳐야 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런 그가 조계종단에 압력을 행사했다는 논란과 더불어 거짓말 의혹까지 받고 있다. 그는 다시 기가암으로 내려가 새벽 소리를 들으며 초심으로 돌아가야 하지 않을까. 안 대표가 이번 사태에 대해 무대응으로 일관한다고 해서 그의 거짓말이 진실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가 사이트에 올린 글 전문이다.
저도 몸과 마음을 추스르고 지혜를 닦고 상경하여 2월 국회에서 새로운 모습을 보이도록 하겠습니다. 이 정권의 성공을 위해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할 것인지 깊이 고민하겠습니다. 그리고 어떤 일이 있어도 국민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는 정치인이 되도록 각고의 노력을 다하겠습니다.
산사의 새벽바람은 찹니다. 금년은 유난히 추운 겨울입니다. 아침에 세수를 하는 개울물도 꽁꽁 얼어붙었습니다. 주지 스님의 말씀을 들으니 작년과 비교해서 암자를 찾는 신도들의 수도 현격하게 줄었다고 합니다. 불경기가 이런 암자에 까지 불어 닥친 현실을 생각하니 마음이 더욱 무거워집니다.
저는 원래 지난주에 외국 출장을 가기로 예정되어 있었지만 이를 포기하고 경북 팔공산 기기암에 들어왔습니다. 기기암은 제가 거의 매년 한번 씩은 찾아 오는 암자입니다.
제게는 이때보다 더 즐거운 시간이 없습니다. 들뜬 마음을 가라 앉히고 복잡한 머리를 식히다 보면, 홀연히 당면한 문제를 해결할 실마리가 떠오르기도 하고 제 스스로 성숙해 가는 느낌을 갖기도 합니다. 이번에도 저는 국난에 가까운 어려운 현실을 좀 더 심도 있게 반성해 보고 정치가로서의 저의 역할을 고민하기 위해서, 시간을 내어 서둘러 이 작은 암자를 찾았습니다.
이곳에서도 저의 머리 속은 ‘우리에게 불어 닥친 경제 위기를 어떻게 극복 할 것인지, 추운 겨울처럼 얼어붙은 국민들의 마음을 어떻게 하면 따뜻하게 녹여드릴 것인지?’하는 온갖 상념으로 무겁습니다.
이명박 정부가 국민통합과 경제 살리기라는 기치를 내 걸고 출범한지도 벌써 일 년이 지났습니다. 십년간 집권한 파 정권으로부터 정권을 되찾는 일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대선압승만큼 새로운 정권에 거는 국민들의 기대도 그만큼 컸다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대선 때 한나라당 원내 대표로서 그 힘겨웠던 싸움을 앞장서 지휘했던 저로서는 이명박 정부를 성공시켜야 할 막중한 책무를 느끼고 있습니다. 그것은 국민과의 약속이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일년이 지난 우리의 현실은 너무나 국민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미국발 금융위기 때문에 국민들도 참으로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국민 통합에서도 큰 진전이 없으며, 경제살리기는 생각지도 못한 국제적 불황 때문에 내일을 예측하기 어려운 실정입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왜 이렇게 되었는지 아픈 마음으로 자문해 봅니다. 이것은 우리로서는 어쩔 수 없는 국제적인 금융위기가 중요한 원인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또 정권 초기에 발생했던 장기간의 촛불시위 때문에 정권 이양기에 생길 수 있는 혼란이 길어졌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러나 그것들에 모든 책임을 전가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우리 한나라당 정권이 어떤 청사진으로 선진 한국을 만들것인가를 좀 더 심도있게 고민하지 못한 것과 인사 및 각종 정책 수행에 있어서 국민의 눈 높이에 맞추어 좀 더 산뜻하게 국정을 이끌지 못한 것에 대해서는 책임을 통감합니다. 그렇지만 국가의 앞날 보다는 당리당략에 매달려 발목을 잡는 야당에게도 아쉬움이 남습니다.
국민을 위해 일해야 할 국회는 쇠망치와 전기톱이 등장하는 폭력장으로 변하여 국민에게 절망을 안겨주고 있습니다. 집권당인 한나라당은 민생개혁법안 조차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는 무기력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며, 정부는 애쓰는 모습을 보이기는 하지만 충분한 신뢰와 희망을 주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정권 교체에 앞장섰던 저로서, 현 집권 여당의 중진의원으로서 국민들이 정치를 혐오하고 정치권을 비웃는 우리의 현실에 대해 깊은 책임감과 자괴감을 느낍니다. 정치를 욕하는 국민의 원성을 들을 때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은 심정입니다. 참으로 국민여러분께 엎드려 용서를 빕니다.
그러나 저는 어떤 고난도 극복해 온 우리 국민의 저력과 불굴의 용기를 믿습니다. 얼마나 험난한 역사의 길을 헤쳐 왔습니까? 우리는 다시 일어설 것을 확신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우리 정치권부터 각오를 새롭게 해야 합니다. 정부는 능력있는 인재를 활용하여 국민에게 새로운 희망을 주는 비전을 제시해야 하고, 국민과의 소통을 통하여 국민의 아품을 국민과 함께 느끼고 이를 즉시 정책에 반영해야 합니다. 우리 한나라당도 그 동안의 무기력한 모습에서 벗어나 2월 임시국회에서 개혁의 깃발을 다시 들고 민생을 위한 개혁법안 통과에 힘을 모아야 합니다.
무엇보다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 당은 법치주의를 반드시 정착시켜야 합니다. 폭력이 난무하는 국회, 폭력으로 얼룩진 우리 사회가 모두 법을 지키는데 앞장 설 수 있도록 의식과 제도를 시급히 개혁해야 되겠습니다. 우리는 결코 폭력에 굴복해서는 안됩니다.그리고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회복하고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서 국민과 함께 힘을 모을 수 있도록 혼신의 힘을 바쳐야 하겠습니다.
저도 몸과 마음을 추스르고 지혜를 닦고 상경하여 2월 국회에서 새로운 모습을 보이도록 하겠습니다. 이 정권의 성공을 위해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할 것인지 깊이 고민하겠습니다. 그리고 어떤 일이 있어도 국민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는 정치인이 되도록 각고의 노력을 다하겠습니다.
2009년 1월 30일 기기암에서 안상수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