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년그해 2월25일.
김영삼 대통령이 국회의사당에서 취임식을 갖고 문민정부를 출범시켰다. 문민정부는 변화와 개혁을 통한 신한국창조와 신경제 실현을 기치로 내걸었다. 국정목표를 경제회복과 부정부패 척결에 두었다.
김영삼 정부는 정보통신 정책에 일대 전환점을 마련했다. 김대통령은 1994년 12월 체신부를 정보통신부로 확대개편했다. 각 부처로 흩어졌던 정보통신관련 정책도 정통부로 일원화했다.
김 대통령은 첫 조각에서 체신부장관에 정통체신관료인 윤동윤 차관(현 한국IT리더스포럼회장)을 임명했다. 윤동윤 체신부장관은 3월31일 오전 청와대에서 김영삼대통령에게 새해 업무보고를 했다.
이 자리에서 윤 장관은 통신국제협력과 관련,“ UR(우루과이라운드)협상 후 예상되는 통신개방 요구에 대한 대응책을 강구하고 한미통신회담 합의사항인 통신망장비 및 부가통신사업 개발에 대비해 국내통신 산업을 적극 육성해 나가겠다”고 보고했다.
3월들어 한동안 잠잠했던 한미 양국간 통신분야에 적신호 경고등이 켜졌다. 미국측이 한미간 통신합의사항을 한국이 제대로 이행하지 않는다고 판단, 한국에 대한 강력 제재조치에 착수한 것이다. 한미양국은 그해 3월16일 19일까지 위싱턴DC에서 무역실무회의를 열어 새 정부출범이래 첫 통상현안에 대해 이견해소 방안을 논의했다.
한국측에서 홍정표 외무부 통상국장(주 인도네이사 대사역임)이 수석대표로, 미국측에서 로버트 캐시리 미 USTR대표보가 수석대표로 참석했다. 이 회의에서 양국대표단은 현안이었던 △지적재산권 보호문제△ UR협상 △양국 영업환경 개선 △쇠고기 시장 개방 등을 두루 협의했다.
미국측은 통신시장 개방과 관련, 한국측이 한국통신의 조달규정을 공개하지 않는 것은 미국기업의 참여를 배제하려는 것이라고 거듭 주장했다.
미국측은 5월에 있을 한국통신의 교환기구매입찰에 AT&T사를 교환기공급자격자로 즉각 인증할 것을 요구하며 종합무역법 1377조에 따라 미의회에 보고한 뒤 즉각적인 제재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다.사태가 악화되자 당시 미국을 방문중이던 한승주 외무장관(현 2022월드컵 유치위원장)은 3월 26일 미키 캔터 미 USTR대표를 만났다.
한 장관은 “미국업체의 한국통신의 통신망 장비조달에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하겠다”며 슈퍼 301조 부활 등 미국 보호무역주의에 대해 우려를 표명했다. 한 장관은 AT&T사의 한국통신 교환기 입찰참여 문제는 현재 한국통신에 공급되는 기기를 공급할 경우에 한해 이른 시일안에 참여를 허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정부 공식 입장을 전달했다.
체신부는 3월 29일 워싱턴에서 현지 업계설명회를 갖고 교환기공급자격인증절차에 대한 미국업계의 이해를 구했다. 체신부는 한국통신과 AT&T간의 문제해결에도 적극 나섰다.
하지만 한국에 대한 미국측의 강경 입장은 변하지 않았다.
미 국가경제회의(NEC)는 3월 29일 공언한대로 한국에 대한 제제 조치를 결정했다. 한국을 통신협상불이행국으로 지정키로 한 것이다.
체신부는 장관 자문관인 최병일 박사(현 이화여자대학교 국제대학원교수)의 증언.
“한국측으로서는 발등에 불이 떨어질 급박한 상황이었습니다. 제가 혼자 미국으로 날아가 3월31일 미 USTR과 한미무역실무위원회에 참석해 한국측 입장을 설명했습니다. 공교롭게도 31일 오전 청와대에서 대통령에게 체신부 새해 업무보고를 하는 날이었습니다. 이종순 단장도 청와대 참석 때문에 미국에 가지 못했어요. 도리없이 외교부와 주미대사관 관계자등과 미 USTR와 막후 절충해 합의안을 만들어 이종순 단장에게 보냈습니다. 당시 주미대사관 장기호 참사관(주 캐나다. 이라크 대사역임)이 미국측과 협상을 총괄했습니다.”
이 업무라인은 이종순 단장과 김재섭 과장(서울지방우정청장 역임. 현 지경부 한국스마트그리드사업단장), 석제범 사무관(현 방통위 네트워크정책국장) 등이었다.
김재섭 과장의 증언.
“그 당시 통신개발연구원(현 정보통신정책연구원)에 파견나가서 한미통신회담 업무를 담당했습니다. 1년여 있다가 경영분석담당관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양국은 ▲한국통신의 조달관련규정이 충분히 공개되고 미국 기업이 국내기업과 동등하게 참여할수 있도록 보장하고 ▲조달규정공개의 지연으로 미국 기업이 한국통신의 통신망장비 조달에 불이익을 받지않도록 확인하며 ▲AT&T가 한국통신 교환기 입찰시 현재 한국통신에 공급되고 있는 기기를 공급 할 경우에 한해 AT&T의 입찰참여를 허용한다 등에 합의했다.
최 박사는 미국 현지에서 체신부 이종순 단장과 컨퍼런스 콜로 내용을 검토한 후 주미대사관을 통해 미 USTR에 서한을 보냈다.
최 박사의 계속된 증언.
“ 만약 통신협정불이행국으로 결정되면 미국은 60일이내에 미국이 입은 피해를 산정, 통신장비를 포함한 한국상품에 대해 약 1백%의 보복관세를 부과하는 등 강력한 보복조치를 취할 수 있었습니다. ”
그해 4월2일.
미국은 이날 한국을 통신협정불이행국에서 제외시키기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한미간 통신협정 이행을 다짐한 한국측 서한을 미국측이 막판에 수용한 것이다.
미키 켄터 무역대표는 한미통신협정 이행상황과 관련한 발표문을 통해 "한국은 미USTR와 긴밀한 협의끝에 양국통상협정을 이행하는 조치들을 취하기로했다"며"미국은 한국의 새정부가 통신협정과 관련한 쟁점들을 타결하려는 노력들을 평가한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협상이행을 놓고 불거진 양국 통신마찰은 일단 해소됐다. 하지만 이후에도 한미간 통신분야의 이익갈등이 수시로 불거져 체신부는 바람잘 날이 거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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