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간 통신협상이 타결됐지만 그것이 종막(終幕)이 아니었다. 합의사항 이행이란 채무가 남아 있었다. 한미간 협상타결은 통신분야 새로운 갈등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한미 양국은 통신회담 타결시 매년 통신협의회를 열어 합의사항 이행여부와 양국간 애로사항 등을 논의하기로 했다. 미 무역대표부(USTR)가 매년 3월말 발표하는 무역장벽보고서에 그 결과를 반영키로 했다. 이 내용이 두고 두고 화근(禍根)이 됐다.
합의사항 이행여부를 보는 한미양측의 시각은 일치하지 않았다. 이행 과정에서 양국간 갈등이 하나씩 수면위로 떠올랐다. 미국측의 한국 불신도 점점 누적됐다.
1993년 1월 20일.
클린턴 미행정부가 출범했다. 클린턴 정부는 자국산업 보호와 이익극대화를 기치로 내세웠다. 통상정책은 수입규제 강화 등 강경 보수로 선회했다. 이는 미국 교역상대국도 시장을 개방해야 하며 이것이 충족되지 않으면 슈퍼301조 등을 부활해 무역보복을 하겠다는 경고 신호였다. 클린턴 행정부는 실제 시장 개입에 적극적이었다.
클린턴 행정부의 이런 정책 기조는 대외 정책에 곧바로 반영됐다.
그해 2월4일과 5일 양일간 한미 양국은 미국측 요구로 워싱턴 DC 미 USTR에서 한미통신협의회를 열었다. 클린턴 정부 출범후 변한 미국측의 통상정책을 가늠해 볼 수 있는 첫 회의였다.
한국측에서 체신부 이종순 체신부 통신협력단장(정통부 국제협력국장, 아태전기통신협의체 사무총장 역임, 작고)을 수석대표로 9명의 대표단이, 미국측에서 낸시 아담스 미USTR부대표보를 수석대표로 콜린스 한국담당과장 등이 참석했다.
미국 대표단은 클린턴 정부의 강경 통상정책을 반영하듯 공세적인 자세를 취했다.
당장 1992년 선경그룹(현 SK그룹)의 대한텔레콤 사업권포기로 중단된 제2이동전화사업허가와 관련, 사업 재허가를 빠른 시일내에 추진해 줄 것을 희망했다.
이종순 단장은 이에 대해 “ 제2이통 사업자 선정은 차기정부에서 결정한다는 게 정부의 방침”이라고 답변했다.
미국측은 한국통신(현 KT) 의 조달규정 미공개와 미국 AT&T사의 한국 공급자격 인증을 강력히 요구했다. 이 문제는 한미간 가장 큰 쟁점이었다.
그동안 미국측은 약 4천억원에 달하는 한국의 통신장비 구매입찰에 미국기업들이 참여할수 있도록 입찰참가 자격, 기준, 절차등을 조속히 공표해줄 것을 끊임잆이 요구해 왔다.
미국측은 “1992년부터 미국에 개방된 한국통신 통신망장비 구매시 AT&T의 입찰참여자격을 제한해서는 안된다”며 “만약 한국이 이 문제를 개선하지 않으면 정부조달에 관한 양국간 합의사항 위반으로 간주해 통신협정불이행국으로 결정해 보복조치도 불사하겠다”고 경고했다.
그 무렵, 한미 양국은 자동차와 반도체 등 통신분야 이외의 통상현안을 놓고 밀고 당기는 협상을 진행중이었다.
미국측은 “한국이 1993년 1월1일부터 한국통신등의 통신망장비 조달시장을 외국업체에 개방키로 약속해 놓고 관련 규정을 공개하지 않아 미 통상법상 시한인 3월31일까지 협정위반사실을 의회에 보고하고 즉각적인 제재조치를 발동하겠다”는 강경 입장을 한국측에 거듭 전달했다.
미국측은 한국통신이 교환기등의 구매절차를 최초조달. 후속조달 등으로 구분해 기존에 교환기를 공급해온 국내제조업체들을 후속조달자로 인정하고 AT&T등은 최초조달로 별도의 절차를 두고 있는 것은 명백한 차별이라고 거듭 주장했다.
불길한 조짐이었다.
이종순 단장은 한미협의회 후 “ 미국측이 문제삼는 통신망장비공급자격자인정절차, 기술개발촉진법등에 의한 국산품우선구매 등을 그대로 두면 무역마찰로 대두될 가능성이 상존하므로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우려감을 나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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