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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덕의 정보통신부<271>-김영삼 대통령 퇴임

[특별기획] 대통령과 정보통신부

by 문성 2013. 7. 9.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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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거래사(歸去來辭)를 노래할 날이 왔다.

 

서울 북악산에서 부는 겨울바람이 허허로움을 더 느끼게 했던 1998년 2월 24일. 국민이 맡겼던 대통령 권한을 반납할 시간이었다.

 

통치권자의 5년은 결단의 나날이었다. 영광은 짧고 고뇌는 길었다.

“자 이제 떠납시다”

 

 

김영삼 대통령<사진>은 이날 오후 5시 5분 부인 손명순 여사와 청와대 본관을 나섰다. 본관 앞에 나열한 직원들과 일일이 이별의 악수를 나눈 김 대통령 내외는 서울 상도동 사저로 가기 위해 승용차에 올랐다. 이별 앞에 일부직원은 눈물을 보였다.

 

영욕으로 점철된 청와대를 떠나 평범한 시민으로 돌아가는 김 대통령은 만감이 교차했다.

사저에 도착하자 400여명의 주민들이 몰려 김 대통령 내외를 환영했다. 김 대통령은 승용차에서 내려 주민들에게 감사 인사를 했다.

“26세에 국회의원이 된 이래 45년 동안 영광의 시간을 짧았지만 고통과 고뇌의 시간은 길었습니다. 이제 상도동 주민 여러분과 저는 5년 만에 다시 한 식구가 되었습니다. 앞으로 자주 만납시다”

 

김 대통령은 사저에 도착, 1층 거실에서 기자들에게 임기를 마친 소감을 짤막하게 밝혔다.

“멀고 험한 항해에서 돌아와 고향의 품에 안긴 느낌입니다. 우선 푹 쉬고 싶습니다. 환영해준 여러분에게 감사합니다 ”

 

김 대통령은 임기 마지막 날 바쁜 일정을 소화했다.

김 대통령은 오전 국무회의 주재와 국립묘지 참배, 수석비서관 오찬, 은행법개정안 등 3개 법안에 서명했다. 김 대통령은 이어 청와대 본관 1층 세종실에 걸려 있는 역대 대통령 초상화 옆에 자신의 초상화가 걸리는 것을 지켜봤다. 이승만, 윤보선,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김 대통령 순으로 사진이 걸렸다. 김 대통령의 초상화는 이원희 계명대 교수가 그렸다.

 

세상은 변하는 것, 세월 앞에 영원한 것은 없었다. 김 대통령의 멀고 험난했던 청와대 5년 임기는 이렇게 막을 내렸다.

 

권력자가 떠난 자리에는 공과(功過)만 남았다. 피할 수 없는 역사의 냉엄한 평가였다.

김영삼 대통령은 정보통신사에서 큰 족적을 남겼다. 한국이 ‘ICT강국’을 향해 본격 시동을 건 것은 김영삼 정부 시절이다. 체신부를 정보통신부로 확대 개편한 것이 시발점이다. ICT가 한국의 대표브랜드로 등장하는 기반을 그가 만들었다.

 

김 대통령은 ‘정보화를 국정지표’로 제시한 첫 대통령이었다. 전임 대통령들도 과학기술이나 정보통신에 역점을 두었으나 정보화를 국정지표로 제시하지는 않았다.

김 대통령은 재임 중 “정보화는 국가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가장 중요하고 강력한 수단”이라면서 ‘정보화 대통령’이 되고자 노력했다.

 

이각범 청와대 정책기획수석의 증언(현 KAIST교수, 한국미래연구원장)의 증언

“국정지표로 정보화를 제시한 대통령은 김 대통령이 처음이었습니다. 김 대통령은 문민정부가 내건 신한국창조의 가장 효율적인 전략이 정보화라고 확신했고 그런 신념에서 국가정보화를 강력히 추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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