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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모습이 아름다운 선배"를 소망했던 '최시중의 불명예'

과기정통. ICT. 국방

by 문성 2012. 2. 3. 1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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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통신위원장에서 최근 물러난 최시중 전위원장(사진.연합뉴스)의 심중은 복잡다기할 것이다. 생각하면 한숨만 푹푹 나올 것이다.

그가 잘나갈  때 앞에서 알랑거리던 사람들도 이제는 닭개보듯 한다.   새삼 세상 인간사를 음미할 것이다. 자신은 최선을 다했다고 노력했지만 세간의 평가는 야박하다.


이명박대통령의 멘토, MB정권 출범의 절대 파워맨인 6인회의 멤버 등의 수식어는 그에게 짐이다. 더욱이 그와 관련된 이런 저런 비리의혹은 그를 향한 검찰의 칼이 될 수 있다.  그의 심사를 더 뒤틀리게 하는 건 정치권의 입이다. 

 

3일 한명숙 민주통합대표는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에서 "검찰은 진짜 돈봉투 수사를 하라는 국민들의 요청에도 본격적으로 착수하지 않고 있다"며 "검찰에게는 이명박 대통령의 형 이상득 의원, 멘토 최시중 전 방통위원장, 참모 박희태 의장, 이 돈봉투 3형제의 비리는 안보이나 보다"라고 비난했다. 그는 졸지에 돈봉투 3형제가 됐다.

 

잘 아는 것처럼 최 전위원장은 동아일보 정치부장, 논설위원, 편집부국장으로 29년을 근무한 언론인 출신이다. 그는 방통위원장 시절 "뒷모습이 아름다운 언론계 선배로 남고 싶다“고 희망처럼 말했다. 간혹 눈물도 보였다.  

 

동아일보 논설위원이던 최 전위원장도 펜을 통해 정권을 비판했다. 그는 6공이 출범한 후 1989년 3월10일자 동아일보 '청론탁설'에서 ‘4년후의 6공’이란 제목의 칼럼을 썼다.
그는 “이 나라 정치인들이 권력과 부귀를 추적하는 ‘부패의 행각’에 있는 것이 아니라 공의와 명예를 덕목으로 하고 찬란한 고행(苦行)에 있음을 가슴에 새겨 주길 기대해 본다.”면서 “6공청산 전통은 없어야 하지 않겠는가”라고 주장했다.

 

당시 5공 청산으로 전두환전대통령 일가는 친가,처가를 가리지 않고 줄줄이 감방으로 들어갔다. 심지어 '제사지낼 사람이 없다'는 말이 나돌았다. 그것도 전두환 전대통령의 절친이자 후계자인 6공 노태우 정부에서 벌어진 일이다. 믿었던 도끼에 발등 찍혔다며 여진히 같은 동네에 살지만 두 사람간 갈등관계는 남아있다.

 

그가 25년 전에 쓴 글이다. 그렇다면 이명박 정권은 과연 어떻게 될까. 이명박 정부는 전임인 노무현 전대통령을 자살하게 했다. 그리고 사회적 갈등과 정치적 대립이 극심하다. 4대강 사업과 수도 이전 등을 놓고 정치권이 대립했다.경제적 빈부격차는 더 심각하다.  현실은 삭막하다. 살벌할 정도다. 대통령에 대한 막말도 많다.‘가카새끼 짬뽕’, ‘꼼수면’, ‘가카의 빅엿’ 등이다.

 

 이 정부에서 최시중 전 위원장은 대통령의 멘토역할을 잘 했는가. 알려진 바에 따르면 그는 이명박 대통령이 정계에 진출한 후 줄곧 자문역을 했으며 서울시장과 대통령 당선에 이르기까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는 이 정부들어서 권한이 막중한 방통위 초대 위원장과 2대 위원장으로 일했다. 그는 방통위원장시절 방송에 치우쳐 방통위에 통신은 없다는 비아냥을 들어야 했다. 방통위에 대한 업무평가는 꼴찌를 했다.
방통위 수장으로서 미디어랩법안 처리와 종편허가를 놓고 특혜시비에 휘말렸다. 여기에 측근의 비리의혹이 등장했다. 친이계 의원에 대한 돈봉투 전달 폭로까지 불거졌다. 결국 불명예 퇴진했다. 


그 뿐만 아니다. 이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의원과 박희태 국회의장도 의혹에 휩싸여 있다.
이런 일이 정권말기가 되면 어김없이 반복된다. 그는 언론사에서 정권이 바뀐 후 전정권에 대한 청산 정통은 없애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그가 멘토인 이명박 정부의 앞날은 어떻게 될까. 그는 펜으로는 미래를 진단했지만 현실에서 그런 사태를 예방하지 못했다. 그런 역할도 결과만을 보면 방기했다.  세상일은 공짜가 없다. 
  

"뒷모습이 아름다운 언론계 선배로 남고 싶다“던 그의 소망은 무망(無望)한 것인가.
 세상 이치는 실행하지 않으면 한 줄기 바람이다. 그가 왜 이를 몰랐을까. 모든 게 업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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