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은 현재와 과거, 미래가 소통하는 공간이다.
2013년 7월 27일 제주시에 개관한 넥슨컴퓨터박물관은 한국 최초이자 아시아에도 단 하나뿐인 정보기술(IT)박물관이다. 국제박물관협회에 등록한 세계 컴퓨터박물관 네 곳 중 하나다. 개관 2년여 만에 20만여명이 다녀가 제주도의 떠오르는 IT명소로 자리 잡았다. 박물관에서는 컴퓨터와 게임의 과거, 현재, 미래를 볼 수 있다.
최윤아 넥슨컴퓨터박물관장(사진. 전자신문)을 9월 24일 오전 서울 여의도 한음식점에서 만났다. 제주에서 사는 그는 전날 회사 일로 서울에 왔다고 했다. .
최 관장은 컴퓨터나 게임과는 거리가 먼 길을 걸었다. 이화여대 교육공학과를 나와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서양화를 전공했다. 이어 동대학원에서 미술교육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그동안 아트선재센터 교육팀장과 인투뮤지엄 대표를 역임했다. 현재 NXCL대표와 넥슨컴퓨터박물관장으로 재임 중이다.
-어떻게 컴퓨터박물관장을 맡게 됐나.
▲미술관에서 일할 때 김정주 넥슨 회장을 몇 번 만난 적이 있다. 김 회장은 공연이나 예술에 관심이 많다. 하던 일을 줄이고 한 달간 쉴 때인 2011년 6월 제주여행을 갔다. 넥슨은 당시 컴퓨터박물관을 준비 중이었다. 김 회장 요청으로 그해 10월부터 박물관 태스크포스(TF)에 참여해 계획을 세우고 콘셉트를 정해 개관작업을 했다. 박물관은 승인받기가 어렵다. 모든 내용을 다 알아야 한다.
-넥슨이 컴퓨터박물관을 설립한 이유는.
▲사회에 공헌하기 위해서다. 넥슨은 세계적인 온라인 게임업체다. 한국 소프트웨어(SW)산업 중 가장 경쟁력 있는 분야가 온라인 게임이다.
-박물관 규모는.
▲지하 1층, 지상 3층, 2445.68㎡ 규모다. 약 150억원을 투입했다. 4년간 준비 끝에 개관했다. 1층에 카페와 작은 책방(추억의 만화방)이 있다. 직원은 35명인데 바쁠 때는 임시 직원을 채용한다.
-세계 컴퓨터박물관은 몇 곳인가.
▲국제박물관협회(ICOM)에 등록된 세계 컴퓨터박물관은 네 곳이다. 미국 보스턴컴퓨터박물관과 미국 캘리포니아주 컴퓨터역사박물관, 영국 국립컴퓨터박물관, 우리나라 넥슨컴퓨터박물관이다.
-소장품은 얼마나 되나.
▲현재 6600여점을 보유하고 있다. 이 가운데 기증과 기탁품이 2791점이다. 애플1과 알타이어8800을 포함해 IBM 컴퓨터5150, 삼성전자가 1983년 생산한 SPC-1000 같은 귀한 소장품도 많다.
-어떻게 수집했나.
▲처음에는 경매에서 소장품을 구매했다. 지금은 컴퓨터와 게임에 관심 있는 분들이 많이 기증해주고 있다. 외국 박물관은 돈 주고 사는 소장품이 거의 없다. 기증품이다.
-사연이 있는 특별한 소장품이라면.
▲단연 애플1이다. 작동 가능한 제품은 세계에 6대뿐이다. 이 제품은 애플 공동 창업자인 스티브 잡스와 스티브 워즈니악이 만든 애플 최초 컴퓨터다. 한국 서체개발 선각자인 최정호 선생의 한글원도와 세계 최초 온라인 게임인 넥슨 ‘바람의 나라’ 초기 버전도 특별하다. 바람의 나라는 다중사용자 온라인 롤플레잉 게임(MMORPG) 기네스북에 등재됐다.
-애플1은 어떻게 구입했나.
▲2012년 6월 뉴욕 소더비 경매에서 구매했다. 낙찰가가 4억3000만원이었다. 이 제품은 수작업으로 제작한 것인 데 200대를 판매했다고 한다.
최 관장은 개관을 앞두고 이 제품을 구하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2012년 5월 31일부터 6월 2일까지 제주에서 열린 ‘제7회 평화와 번영을 위한 제주포럼’에 애플 공동창업자 스티브 워즈니악이 초청연사로 참석했다. 주최 측 협조로 그와 5분간 면담키로 했다. 그날 애플1 복각품에 그의 친필 서명을 받았다. 박물관을 소개하고 조언을 구하다 보니 5분이 40분으로 늘었다. 애플1 경매가는 급등했다. 지난 8월 뉴욕 본햄스 경매에서 9억5000만원에 낙찰됐다고 영국 일간지 텔레그래프가 보도했다.
-기증자 중에 기억에 남는 사람은.
▲박물관 첫 기증자로 실리콘그래픽스 워크스테이션을 기증한 이종원 KOG 대표와 게임과 컴퓨터의 유닉스잡지 1500여권을 수집해 이를 PDF파일로 기증한 오영욱씨가 기억에 남는다. 이외에도 소장품을 기증해 준 분이 많다. 고마운 분들이다.
-박물관 이용실태는.
▲2년여 만에 20여만명이 다녀갔다. 이 중 어른과 어린이·청소년의 방문비율이 6 대 4 정도다. 전 연령층이 박물관을 즐겨 찾았다. 요즘은 중·고교생 방문이 급증했다. 박물관이 한국 IT산업을 이끌 미래인재에게 컴퓨터와 게임 학습장 역할을 하도록 하겠다.
-개관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다. 6월부터 8월까지는 오후 8시까지 연장하고 월요일은 휴관이다.
-박물관에서 운영하는 청소년 교육프로그램이 있나.
▲박물관은 사회교육기관이자 평생교육기관이다. 청소년을 대상으로 ‘꿈이 IT니?’라는 진로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IT분야에 관심을 가진 학생들에게 컴퓨터와 게임 산업을 소개하고 진로 선택기회를 주는 프로그램이다. 2013년 시작했는데 첫해 698명이었다. 올해까지 누적인원 목표가 6000명이다. 교사 직무연수와 어린이 융합IT워크숍 HAT, 도민교육 프로그램도 마련했다. 어린이 자문단도 운영한다. 올해가 3기인데 25명 내외다.
-기존 박물관과의 차이점이라면.
▲박물관은 과거와 소통하고 공유하면서 미래변화를 유도하는 곳이다. 박물관 3층에는 오픈 수장고(守藏庫)가 있다. 다른 박물관과는 달리 개방해 컴퓨터와 게임 관련 소장품을 관람하고 체험도 할 수 있다. 관람객은 부모와 자녀가 함께 와서 아이는 컴퓨터나 게임을 즐기고 어른은 1층 책방에서 책을 읽는 이가 많다. 한 번 입장하면 나왔다가 몇 번이고 다시 입장할 수 있다. 부모세대는 1980년대 오락을 대표하던 ‘갤러그(galaga)’ 게임에 열광한다. 일명 ‘뿅뿅게임’으로 불린 이 게임은 황지우 시인의 1983년 작 ‘徐伐, 셔발, 셔발, 서울, SEOUL’이라는 시에도 등장한다.
컴퓨터 역사연구를 위한 정기 프로그램이 있나.
▲아직은 없다. 지난 5월 20세기 대한민국 컴퓨터 개발역사 워크숍을 넥슨 1층 1994홀에서 진행했다. 20세기 대한민국 컴퓨터 개발 역사 워크숍은 50여년 역사를 지닌 국내 컴퓨터 개발 역사를 정립하기 위해 마련했다. 전길남 박사를 비롯한 컴퓨터 상용화를 이끌어 온 주역들이 연구사례와 노하우를 공유했다. 내년에도 행사를 주관할 방침이다.
-박물관 올해 역점은.
▲교육과 아카이빙에 역점을 두고 있다. 그래픽디자인이나 컴퓨터프로그래머 같은 진로교육 프로그램 개발을 올해부터 시작해 3년 계획으로 완성하고자 한다. 소장품 자료를 검색할 수 있는 앱을 개발해 일반인이 외부에서 볼 수 있게 할 방침이다.
-미래 박물관 구상은.
▲박물관은 꿈과 비전을 제시하는 곳이다. 아이들에게 창조적 비전을 주는 곳, 한국 IT역사를 품은 곳, 게임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곳으로 만들 계획이다. 과거를 잘 봐야 창조적 발상을 할 수 있다. 게임을 하듯 즐기는 박물관 관람방식을 도입해 변화를 시도할 생각이다.
-살아있는 IT역사 공간을 늘리기 위해 정부에 바라는 점은.
▲새로 전시공간을 늘리기보다는 기존 시설에 좋은 프로그램을 운영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 주기 바란다. 문화예술과 융합할 수 있는 IT프로그램을 지역별로 정착시킨다면 창의 인재를 양성할 수 있다. 정부가 보유한 IT역사자료를 한곳에 모아 국민이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게임산업 규제에 대한 입장은.
▲게임도 규제할 게 있다면 19금 영화처럼 규제해야 한다. 게임을 무조건 사회악으로 보거나 게임하는 사람을 중독자로 인식하는 일은 잘못이다. 게임은 자연스러운 것, 즐기는 것으로 인식이 바뀌었으면 한다.
-게임 산업 진흥을 위한 조언은.
▲게임이나 소프트웨어산업이 발전하려면 우수한 인력을 양성해야 한다. 좋은 인재가 많아야 게임 산업이 발전한다.
-좌우명과 취미는.
▲‘작은 일에 행복하라’다. 취미는 승마와 스쿠버다이빙을 포함해 운동은 다 좋아한다.
최 관장은 1인 다역이다. 입장권도 팔고 관람객 안내도 한다. 소탈하지만 일에 대한 열정과 추진력이 대단하고 아이디어가 풍부하다는 게 주변 평가다. 인터뷰를 끝내며 “컴퓨터란 무엇이냐”고 묻자 최 관장은 “세상을 바라보는 창”이라고 대답했다.
시대는 저마다 흔적을 남긴다. 우리는 ‘ICT강국’, ‘인터넷강국’이라고 자랑하면서 ‘ICT박물관’한 곳도 없다. 역사는 기록해야 남는다. 박물관도 건립해야 과거, 현재, 미래를 연결할 수 있다. 역사를 모르면 미래도 없다는 말이 가슴에 와 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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