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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덕이 만난 생각의 리더]<95>“공유정부로 가야”김광웅 서울대 명예교수

[특별기획] 생각의 리더

by 문성 2017. 5. 13.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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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웅 서울대 행정대학원 명예교수(사진. 전자신문. 초대 중앙인사위원장)는 행정학 최고 권위자다. 그는 정부 리더십과 행정 조직의 산 증인이다. 1985년 대통령자문 행정개혁위원으로 시작해 김영삼 정부에서 행정쇄신위원으로 정보통신부 출범을 주도했고, 김대중 정부에서는 정부개혁심의원회 실행위원장을 거쳐 초대 중앙인사위원장직을 맡았다. 2005년에는 국회 정치개혁협의회 위원장으로 일했다.

 

 

김 교수를 서울 서초구 자택에서 만났다. 멜빵 청바지 차림인 그는 예술가 같은 풍모였다. 실제 외국에 가면 예술가인 줄로 생각하는 이가 많다고 했다. 서재는 사방이 책들로 가득했다. 책상 위와 바닥, 심지어 베란다에까지 책들이 쌓여 있었다.

 

김 교수는 새 정부는 정보통신부 같은 독임 부처를 신설해야 한다면서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정부 역할은 기존과 크게 변해야 한다. 앞으로 정부가 잘하지 못하는 것은 민간에 넘기는 공유(共有)정부로 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최근 '이승만 정부와 공유정부로 가는 길'이란 저서를 출간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단행하는 정부 조직 개편을 어떻게 생각하나.

정권의 오만(傲慢)이다. 정부 조직은 생물(生物)과 같다. 이걸 정권이 바뀔 때마다 떼었다 붙였다 하면 조직이 죽는다. 정부 조직 개편은 환자 수술과 같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지도자는 정부 역할에 관해 공부를 해야 한다.

 

-앞으로 정부 조직 개편 방향은.

정부 조직이 위계질서에 의한 것이 아니라 구성원 모두가 동등한 위치에서 일을 하는 홀라크라시로 변해야 한다. 이미 일부 기업이 이를 도입했다.

 

-역대 정부의 조직 개편 특징은.

이승만 정부부터 박근혜 정부까지 어김없이 조직 개편을 했다. 이승만 정부는 12년 재임하면서 조직을 4번 개편, 부처와 청을 늘렸다. 노태우 정부는 부처 차관을 늘렸다. 김영삼 정부는 대부처주의로 조직을 개편했다. 그때 체신부를 정보통신부로 개편했다. 김대중 정부는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 사태로 조직을 축소했다. 당시 인사와 조직을 담당하는 총무처를 폐지했다. 그 대신 대통령 직속 중앙인사위원회를 신설해 인사를 담당하게 했고, 조직은 행정자치부로 넘겼다. 이로 인해 조직과 인사가 따로 놀았다. 조직 개편을 잘못했다. 이명박 정부는 대부제 원칙으로 정보통신부를 해체했다. 박근혜 정부가 신설한 국민안전처는 조직 개편 가운데 가장 졸작이라고 생각한다.

 

-정보통신부 폐지에 대한 입장은.

이명박 정부의 실책 가운데 핵심이 정보통신부 해체다. 새 정부는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선도할 정보통신부 같은 독임제 부처를 신설해야 한다.

 

김영삼 정부가 만든 정보통신부는 정보통신기술(ICT) 강국, 인터넷 강국, 전자정부 세계 1위를 달성한 주무 부처로서 정보화를 선도했다. 그러나 2008년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14년 만에 간판을 내렸다.

 

-정부 조직 규모에 대한 입장은.

정부가 크고 작은 건 문제가 아니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정부는 국민 요구가 무엇인지를 빅데이터나 사물인터넷(IoT)을 이용해 파악하고 계층과 세대에 맞는 이른바 맞춤형 정책을 수립하는 게 중요하다. 그렇게 하려면 정부가 할 수 있는 일과 해야 할 일, 할 수 없고 할 필요가 없는 일을 판별해야 한다. K스포츠나 미르재단은 정부가 관여할 일이 아니다. 정부는 할 필요가 없거나 할 수 없는 일은 과감하게 민간에 맡겨야 한다. 태릉선수촌도 마찬가지다.

 

-왜 그런가.

대통령이 되면 할 일이 많다. 흔한 말로 정신이 없다. 기존의 일을 열심히 잘하기도 힘든데 새로운 일을 잘하기는 더욱 어렵다. 국정을 잘 수행하지 못하면 모두 대통령 책임이다. 정부가 많은 걸 다 한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실패한 이유는.

가장 큰 이유는 정부에 대해 잘 몰랐다. 과거처럼 지시만 하면 되는 줄 알았다. 지금 정부는 복잡하다. 감각으로 국정을 경영해야 한다. 말로만 원리원칙을 강조했다. 청와대를 누가 감히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는가. 정부 조직을 사인화(私人化)했다. 인사(人事)도 실패했다. 능력 있는 인재를 적재적소에 제대로 배치하지도 못했다.

 

-공직 인사는 어떻게 해야 하나.

바른 권력 행사는 정의를 구현하는 일이다. 조각(組閣)할 때 총리나 장관의 경우 자기 사람을 발탁하면 안 된다. 반대편 인사를 발탁하는 게 가장 좋다. 특히 초대 국무총리는 자기 사람을 쓰지 않아야 한다. 문민정부 시절 김영삼 대통령은 초대 국무총리로 군 출신이자 호남 인사인 황인성씨를 임명했다. 대통령은 바뀌었지만 그동안 군 출신 대통령이 집권했고, 여전히 군사 문화가 남아 있었다. 황 총리는 군 출신이지만 국정 경험이 풍부했다.

 

-대통령의 리더십은

21세기 리더십은 공유와 팀이다. 팀은 정직하고 유능해야 한다. 대통령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걸맞게 공유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정부는 내일을 준비하는 게 책무다. 영국 정치가 에드워드 카는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끝없는 대화라고 했지만 여기에 더해 새 대통령은 '역사의 거울에 자신이 어떻게 비칠까'를 생각하면서 미래와 늘 대화해야 한다.

 

- 공유(共有)정부란 무엇인가.

공유정부는 공유경제에서 내가 패러디한 용어다. 본질은 정부가 잘하지 못하거나 힘에 부치는 부분은 민간에 넘기라는 것이다. 꼭 정부가 하지 않아도 될 일에서 손을 떼라는 것이다. 정부 역할 가운데 민간과 겹치는 교집합 영역이 대상이다. 공유정부에서 권력은 지배가 아니라 협연(協演)이다. 그렇게 하려면 정부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꿔야 한다. 정부가 민간을 다스린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정부의 어떤 기능을 민간에 넘기면 좋겠는가.

예를 들면 현 정부의 역점 가운데 하나인 문화창조융합센터의 운영을 왜 정부가 해야 하는가. 이걸 민간 재단에 맡기자는 제안이 있었지만 정부가 받아들이지 않았다. 정부 연구개발(R&D)비도 비슷하다. 그걸 삼성전자가 주도했다면 한국의 실리콘밸리가 탄생했을 것이다. KT가 대학을 설립하면 서울대보다 낫지 않을까. 교육부에 대학정책실만 없어도 대학은 규제에서 벗어난다. 문화체육관광부에 문화예술정책실만 없애도 예술이 살아날 것이다.

 

-새 대통령에게 바라는 것이 있다면.

비판을 겸허하게 수용하고 소통해야 한다. 무엇을 하겠다는 것보다 무엇을 하지 않겠다는 약속도 해야 한다. 이승만 대통령처럼 교육대통령이 되고 싶다면 사립대학부터 자율화해야 한다. 청와대는 인체에 비유하면 뇌에 해당한다. 청와대는 부처와의 중복 기능을 줄이고 '창조대(創造臺)'가 돼야 한다.

 

-청와대 구조는 어떻게 개선했으면 좋겠는가.

김대중 정부 시절에도 그런 논의가 있었다. 1998년 초 김대중 전 대통령이 만나자고 해서 청와대로 들어갔더니 이종찬 인수위원장과 김중권 비서실장이 함께 있었다. 김 대통령이 청와대를 정부종합청사(현 정부서울청사)로 옮길 계획인데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기에 집무실을 옮기면 다른 부처가 일을 못한다. 대통령이 드나들 때 경호도 문제다라고 말했다. 김 전 대통령이 대안을 묻기에 국무회의를 종합청사로 와서 주재하시라고 건의했다. 당시 대통령이 사용할 정부종합청사 3개 층 수리비가 89억원이 들어가는 것으로 계산했다. 결국 김 전 대통령은 국무회의를 종합청사에서 주재했다. 청와대 본관은 구중궁궐 같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집무실 옆방에 젊은 비서진을 상주시켜서 그들과 대화하고 담배도 나눠 피웠다고 한다. 청와대 구조를 바꾼다면 비서실 규모를 대폭 축소해야 한다.

 

-공직자의 바람직한 자세는.

공무원들은 정확(正確), 정직(正直), 정당(正當) 등 삼정(三正)의 원칙을 지켜야 한다. 혼자 있을 때도 부끄럽지 않아야 한다. 공직은 정직이고 희생이며 봉사다.

 

-장관급인 초대 중앙인사위원장으로 있었다.

1년만 일하려고 했는데 임기제여서 19995월부터 3년 동안 근무했다. 청와대 재임 중에 다섯 번이나 사표를 냈지만 대통령이 반려했다. 퇴임 후 '통의동 일기'란 저서를 냈다. 출근해서 아침마다 15분 동안 주요 단어만 나열했다가 다시 정리했다. 3년 동안의 공직 일기다.

 

김 교수가 쓴 이 책은 일반인들이 알기 어려운 공직 사회의 생생한 이면을 소개, 조선왕조실록 이후 최초의 '공직 실록'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원고지가 무려 7000장에 달했다.

 

-좌우명과 취미는.

좌우명은 정직이다. 공직은 정직해야 한다. 취미는 음식 만들기다. 건강을 지키기 위해 자전거 타기와 산행도 한다.

 

김 교수는 인터뷰 이튿날 기자에게 자신이 만든 음식 사진을 보냈다. 음식 인증 샷이었다. 전날 저녁에는 오삼불고기 요리를 했고, 점심으로는 메밀국수를 만들어 먹었다고 했다.

 

김 교수는 서울대 법학과를 졸업한 뒤 서울대 행정대학원 행정학 석사, 미국 하와이대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72년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로 부임해 한국 행정학회장, 서울대 행정대학원장, 대통령자문 행정개혁위원, 행정쇄신위원, 한국공공정책학회장, 정부조직개편심의원 겸 실행위원장, 김대중 정부 초대 중앙인사위원장, 국회 정치개혁협의회 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한국간행물윤리위원장과 시사IN 대표이사 등으로도 일했다. 국민훈장 동백장과 청조근정훈장을 받았다. 현재 서울대 행정대학원 명예교수다. 저서로 '장관 리더십'을 비롯한 40여 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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