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태 KAIST 경영대 교수(사진. 전자신문)를 7월 20일 오후 서울 동대문구 회기로 KAIST 서울캠퍼스에서 만났다. 이 교수는 요즘 두 가지 논쟁의 한복판에 서 있다. 하나는 대통령 공약 사항인 통신비 인하 문제다. 이 교수는 정부와 정치권이 주장하는 통신비 인하는 시장 경제를 부인하는 조치라는 입장이다. 그는 여·야 국회의원이 주최한 토론회에서도 통신비 인하 반대와 그 근거를 조목조목 제시했다. 이로 인해 그는 재벌 앞잡이라는 댓글 공격을 받았지만 소신에는 변함이 없다. 그는 “정부가 잘못하는 정책을 지적하는 것은 학자가 해야 할 일”이라며 말했다.
다른 하나는 '헬(Hell)조선' 논쟁이다. 그가 젊은이들에게 '가슴에서 호소합니다'라는 제목으로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 글에 댓글만 1000여개 달렸다. 이 글을 모 대학 교수가 반박하면서 논쟁은 확산됐고, 언론도 이를 크게 다뤘다. 이 논쟁에 대해 그는 학자로서 사회 담론을 토론해 보자고 제기한 것일 뿐 다른 의도는 없다고 말했다. 그는 한 시간여 동안 진행된 인터뷰 내내 현안 관련 표현은 부드러웠지만 내용은 확실하게 짚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통신비 인하 공약을 한다.
▲통신비 인하는 시장 경제를 부인하는 공약이다. 경제 문제를 정치가 다 해결할 수 없다. 한국에서만 존재하는, 표를 노린 통신 포퓰리즘이다. 시장 경제 틀 안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통신비 인하에 반대 입장이다. 비난 댓글은 없었는가.
▲'재벌을 비호한다'라는 댓글이 달렸다. 나는 재벌을 비호하거나 옹호할 생각이 추호도 없다.시장경제 원칙을 말했을 뿐이다. 과거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단통법)을 정부가 제정할 때 단통법은 물론 모든 단말기 보조금 규제를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학문을 하는 사람은 사실을 확인하고 끊임없이 의심해야 한다. 헬조선이란 말은 사고의 틀로 규정할 수 있다. 미국에서 교수나 대법관은 종신직이다. 외부 압력에 굴하지 않고 양심과 소신에 따라 일할 수 있게 한 제도다.
-국정기획자문위원회가 발표한 통신비 인하 방안은 어떻게 평가하는가.
▲통신이건 빵이건 정부가 시장에 직접 개입하려면 특별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시장 실패나 독과점으로 물가가 급등한 상황이라면 정부가 개입해야 한다. 통신 시장은 이런 특별한 상황이 아니다. 통신과 정보통신기술(ICT)은 한국의 대표 성공 사례다. 통신 품질은 세계 1위다.
-정부는 10월에 논의 기구를 구성할 예정이다.
▲매우 위험한 논의 구조다. 과거 정부가 제시한 반값 등록금과 같다. 등록금을 못 내리자 학교 안에 등록금심의위원회를 두고 외부인과 학부모·학생들이 과반 참여했다. 결과는 업무 과중과 부실 교육으로 이어졌다. 소비자와 공급자가 합의해서 가격을 결정하는 일은 세계 어디에도 없다. 시장경제를 부인하는 일이다. 정부가 대통령 선거 공약을 지킬 수 없으니 논의 기구에서 결정하라는 것은 책임 떠넘기기다. 정부는 주파수를 비싸게 매겨서 기업에 돈을 받고 할당했다. 나중에 '단가를 낮춰 당초보다 수익을 적게 내라'면서 규제한다면 타당하다고 할 수 있는가. 민간이 이런 식으로 했다면 사기성 경매라고 할 것이다.
-통신 기본료를 폐지하면 가계에는 얼마나 도움이 되는가.
▲통신 기본료 인하 폐지는 법률 근거가 희박하다. 가계 소비 지출 항목 가운데 통신비는 9번째다. 통신비는 가계 소비의 4.8% 수준이다. 기본료를 전액 폐지해도 가계 지출의 1.5%다. 오히려 부자만 덕 보는 역진 현상이 발생한다. 우리는 수신 요금은 받지 않는다. 미국은 송수신자에게 세금을 부과한다. 미국은 절친한 친구가 아니면 전화번호를 알려주지 않는다. 수신 무료 정책이 이동통신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기본료를 폐지하면 신기술이나 5세대(5G) 연구개발(R&D)비가 줄 것이다. 통신비 인하 실패 사례가 이스라엘이다. 2011년 물가 폭등으로 통신요금을 내렸다가 신규 통신 분야 투자가 이뤄지지 않아 창업 국가에서 밀려났다.
-기업들은 어떻게 되는가.
▲현재는 통신업체가 약 3조원 수익을 낸다. 기본료를 없애면 순식간에 5조원 적자 사업자로 추락한다.
-통신을 공공재라고 하는 사람이 많다.
▲그런 주장에 내가 '통신은 공공재가 아니다'라고 했더니 그다음에 '보편재'라고 주장했다. 그렇게 따지면 국민이 먹는 막걸리, 쌀, 삽겹살 등 대중 먹거리의 가격에도 정부가 다 개입해야 한다. 공공재나 보편재여서 시장에 개입해야 한다는 주장은 시장 경제 논리에 안 맞는다.
-통신비 오해가 많은가.
▲통신비를 비용으로 본다. 스마트폰이 등장하면서 시계, 전화기, MP3, TV, 오디오, 디지털카메라 등 13가지가 사라졌다. 2007년에 아이폰이 처음 미국에서 나왔을 때 1인당 가전제품 구입비용이 약 600만원에 달했다. 아이폰이 등장하면서 이게 사라졌다. 통신은 단순한 전화기가 아니다. 아이들은 교육방송을 시청하고, e북으로 책을 읽는다. 영화를 보고, 게임을 하고, 사진을 전송한다. 스마트폰 지출이 다른 지출을 줄인다. 통신비를 효율을 무시하고 비용 관점에서 보는 것은 잘못이다.
-월 통신비가 가계 부담이라는 주장이 많다.
▲현재 가구당 평균 통신비는 20만원 정도다. 이 요금에는 순수한 무선 통신요금 외에 데이터사용비, 단말기 할부금, 콘텐츠 구입비, 소액 결제, 해외 로밍비 등이 다 들어 있다. 5년 사이에 데이터 사용량이 약 5배 가했다. 정부가 이 가운데 부가세로 10%를 가져간다. 실제 통신비는 20만원의 절반에 못 미친다. 가계 소비 지출 가운데 통신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계속 줄고 있다.
-외국과 비교해서 어느 수준인가.
▲소득 대비 통신비 지출은 한국이 세계 182개국 가운데 21위다. 아시아에서는 싱가포르 다음으로 저렴하다. 싱가포르는 도시국가여서 통신비가 싸다.
-외국의 통신비 정책은 어떤가.
▲우리처럼 정부가 통신비를 결정하는 구조는 없다. 통신은 모든 나라에서 독과점이다. 미국은 2개 업체가 유선의 70%를 차지한다. 무선은 80%를 점유한다. 미국은 1위 기업이 50% 이상 점유하고 있다. 한국 통신 시장 1위인 SK텔레콤이 비정상이라고 하는데 이는 사실과 다른 주장이다. 미국 마이크로소프트(MS) 윈도는 독점인데 왜 그대로 두는가. 불공정 행위가 규제 대상이지 독과점은 규제 대상이 아니다. 정부가 통신비 가격을 내리라고 하거나 공무원이 가격을 결정하는 나라는 어디에도 없다.
-현재 한국 이통사의 이익률은 얼마나 되는가.
▲한국 기업은 7%대다. 낮을 때는 3% 수준이었다. 미국은 18%대, 일본은 16%대다.
-제4 이동통신 출범이 대안이라는 주장에 대한 입장은.
▲현실성이 없는 대안이다. 지금 우리나라 통신 시장은 포화 상태다. 스마트폰은 6100만대가 공급됐다. 신규 고객이 없어 수익을 낼 수 없는 구조다. 통신 주파수는 수조원대다. 여기에 망을 설치하고 채널 구축비가 들어간다. 경제성이 없다. 시장 왜곡만 가져온다.
-요금 자율화는 어떻게 보는가.
▲그게 정답이다. 단통법도 없애야 한다.
-통신사들이 담합하면 어떻게 되는가.
▲걱정할 이유가 없다. 정부는 얼마든지 이통사 담합을 규제할 수 있다. 주파수를 회수하거나 과징금 부과 등 처벌 수단이 많다.
-요즘 헬조선 논쟁이 치열하다. 글을 올린 이유는.
▲바이럴(viral)이 이렇게 강한 줄 몰랐다. 헬조선은 요즘 정부의 경제 정책 가운데 최저임금제에 관해 걱정이 많지 않은가. 이게 무리한 정책이라는 걸 설득하기 위해 SNS에 글을 올렸다. 그랬더니 “금수저가 흙수저 사정을 알겠느냐”며 비난이 쇄도했다. 건강한 담론을 위해 헬조선, 흙수저 계급론에 대해 글을 올렸다. 이튿날(17일) 아침에 댓글이 1000개가 달렸다. 언론에서 전화가 오고, 모 대학 교수가 반론을 하는 등 논쟁이 확산됐다. 더 놀란 건 일본에 사는 지인으로부터 재일 교포가 이 글을 번역, 일본 사회에서도 논쟁이 뜨겁다는 연락이 왔다.
-문자 폭탄은 없었는가.
▲일부는 비야냥, 인신 공격성 댓글을 달았다. 인격 살인을 당한 것 같아 슬펐다. 나는 현안과 관련해 진영 논리가 아니라 우리 시대 과제가 뭔지에 대해 건강한 담론이 필요하다고 판단해서 글을 올린 것이다. 아직 우리 사회는 건전한 대화가 익숙하지 않은 모양이다. 마음에 안 들면 논리로 토론하는 게 아니라 글 쓴 사람을 공격하고 비판한다.
-감명 깊게 읽은 책은.
▲'총, 균, 쇠' '희랍인 조르바' '진화심리학' '도덕적 동물' '사피엔스' 등 많다.
이 교수는 대단한 독서광이다. 해외 출장 시 비행기 안에서 e북으로 책을 두 권 읽을 정도다. 매주 책 3권을 읽는다.
-좌우명과 취미는.
▲과거에는 '최선을 다하자'였는데 최근에 '틀에 얽매이지 말고 자유롭게 살자'로 바꿨다. 이유는 집단주의나 진영 논리에 휘둘리기 싫어서다. 취미는 운동이다. 마라톤 풀코스를 27번 뛰었다. 2년 전에는 아내와 뉴질랜드 필포드 트래킹을 다녀왔다. 아내도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했다.
이 교수는 서울대 산업공학과를 졸업하고 KAIST 경영과학 석사, 미국 텍사스 오스틴주립대에서 경영학(MIS)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미국 애리조나대와 일리노이대 경영대 교수를 거쳐 현재 KAIST 경영대 교수로 재직하며 테크노경영대학원장, 경영대학장을 역임했다. 2009년 세계인명사전 '후스후'에 등재됐다. 미국에서 남들이 6년여 걸리는 종신교수직, 즉 테뉴어(Tenure)를 3년 만에 획득했다. 19대 대선 당시 모든 캠프에서 러브콜을 받았지만 학자의 길을 걷기 위해 거절했다. 현재 KAIST 청년창업투자지주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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