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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덕의 정보통신부 그시작과 끝<131>

[특별기획] 대통령과 정보통신부

by 문성 2011. 8. 18. 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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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통신개방 요구에 대해 정부 훈령은 1992년부터 개방을 수용한다는 방침이었다.
통신기기에 대한 관세율도 현행 15%를 미국은 5%로 내릴 것을 요구했으나 9%선으로 내리는 안을 가지고 있었다.



박 단장은 처음 개방시기를 1996년으로 하자고 제안했다. 미국측이 거부하자 다시 2년 앞당겼다. 정부 훈령보다 2년이 늦은 것이었다. 박 단장은 사안마다 규정을 세밀하게 보면서 정확한 수치와 통계를 근거로 미국측 요구를 논리적으로 반박했다.



미국측 피터 알카이어 수석대표가 박 단장을 향해 물었다.

“본국에서 1996년으로 훈령을 보냈습니까”

“그렇습니다”

‘다시 한번 조회해 주십시오“

미국 대표단이 한국 정부 훈련내용을 알고 묻는 것이었다.


이튼날 미국 대표가 “회신이 왔느냐”고 묻자 박단장은 “아직 안왔다”며 시치미를 땠다.

협상 마지막날인 2월17일 새벽2시경. 벼랑끝 대치와 협상 연장, 이제는 결론을 내려야 했다.



박 단장이 미국 대표에게 잠시 협상 중단을 제안했다.

“잠시 쉽시다.”


박 단장은 대표단들과 긴급 회의를 했다. 대표단은 상공부, 조달청 등 유관 부처 과장급과 대사관 직원 등 모두 10명이었다.


박 단장의 말.

“이들에게 ‘협상을 어떻게 했으면 좋겠느냐’고 물었습니다. ‘더 이상 양보하면 안된다’와 ‘그래도 협상을 해야 한다’는 의견이 5대5로 반반이었습니다. 그러자 단장인 저보고 최종 결정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고민하다가 결렬을 선택했습니다. 만약 그 당시 우리가 미국측 요구를 수용했더라면 한국 무선통신시장과 IT산업은 외국에 종속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는 속개한 협상에서 미국측에 결렬을 선언했다.  박 단장은 당시 사표낼 각오를 했다. 정부 훈령을 어긴 셈이었다.


협상 결렬을 한국측이 선언하자 미국특파원들의 취재경쟁이 뜨거웠다. 그는 기자들의 질문공세가 이어지자 귀국 비행기시간을 늦추고 협상결렬 배경을 설명했다.


“서로의 입장을 확인했습니다. 협상은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나는 협상이 결렬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미국 의존도가 높은 한국의 통신협상대표가 미국에 대해 먼저 결렬을 선언한 것은 초유의 사태였다. 당시 박 단장은 국가를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라고 판단했다.


박 단장이 귀국해 최영철 장관에게 협상결렬을 보고하자 통이 큰 최장관은 “수고 했다‘는 말로 박 단장을 격려했다.


최 장관의 증언.

“내심 ‘잘했다’고 생각했어요. 때로는 정부 훈령을 어기고 협상을 깨야 상대방도 긴장하는 게 아닙니까. 그러다보면 우리가 협상에서 유리만 고지에 올라설 수 있습니다. 사전 대비도 없이 통신시장을 개방할 수는 없었어요.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최 장관은 박 단장에게 질책도 하지 않았다. 통신회담 한국측 수석대표를 그에게 맡겨 미국과 통신시장 개방협상에서 유리한 조건을 만들도록 지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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