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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덕의 정보통신부 그시작과 끝<128>

[특별기획] 대통령과 정보통신부

by 문성 2011. 8. 8.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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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는 제2이동통신사업자의 서비스 시기 연기다.


선경의 대한텔레콤 사업권 반납이 선경에게는 뒷날 한국이동통신(현 SK텔레콤)의 경영권을 확보하는 씨앗이 됐고 정부한테는 CDMA상용화 시간을 벌어줬다는 것이다. 대한텔레콤이 1992년 8월26일 사업권을 획득해 곧바로 서비스를 시작했다면 CDMA는 성공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당시 국내 장비시장은 모토로라 등 외산이 독점하고 있었다. CDMA개발은 그해 1월31일 퀄컴과 1단계 공동개발을 끝냈고 2단계를 진행중이었다. 그해 12월 14일 이동통시시스템 을 생산할 국내 지정업체를 선정했다. 그런 상황이니 CDMA방식의 서비스는 불가능했다. 윤동윤 체신부 장관(현 한국IT리더스포럼 회장)은 1993년 6월15일 제2이동통신 사업자 선정시기를 1년 후로 연기했다. 윤 장관은 기자회견에서 “디지털장비의 상용화가 95년 말이면 가능할 것으로 전망해 94년 6월까지 사업자를 선정하고 1년 반 정도 준비하면 95년말부터 서비스가 가능할 것”이라고 밝혔다.


윤 장관의 회고.

“사전에 청와대와 협의를 했어요. 우리가 남이 하지 않는 신기술을 개발해야 CDMA기술종주국이 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CDMA개발에 장관직을 걸겠다’고 한 것입니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1994년 2월28일 신세기이동통신은 제2이동통신사업자로 최종 선정했다.

그해 10월 25일 에스코 아호 핀란드수상이 경제인단 25명과 함께 한국에 왔다. 노키아 회장도 동행했다. 두 나라 경제인들은 28일 전자통신과. 기계금속, 환경산업분야 등에서 합작투자와 기술협력을 강화키로 합의했다.


윤 장관은 이 기간에 극비리에 하이야트호텔에서 노키아 회장을 만났다. 그 자리에 서정욱 박사(SKT사장. 부회장. 과기부장관 역임)을 참석시켰다.


윤 장관의 증언.

“노키아 회장에게 ‘노키아에서 CDMA방식의 단말기를 만들어 줄 수 있느냐”고 물었더니 노키아 회장이 ’만들어 줄 수 있다‘고 하더군요. 그 후 서 단장에게 노키아에 다녀오도록 했습니다. 이런 소식이 삼성전자와 LG정보통신 등에 알려지자 이들이 단말기 개발에 적극 나섰습니다. 국내 기업들이 불참할 경우를 대비한 차선책이었습니다.“


1995년 10월초. CDMA방식에 또 위기가 닥쳤다.

경상현 정보통신부 장관은 롯데호텔에서 한승수 대통령비서실장(국무총리 역임)과 배석자 없이 단독으로 만났다. 한 실장은 경 장관에게 “PCS접속방식을 CDMA단일표준으로 고집할 이유가 있느냐‘면서 ”신세기통신에 TDMA방식을 허용해 달라“고 요구했다. 경장관은 ”그렇게 하면 국책사업으로 추진한 CDMA개발은 사장(死藏)되고 만다. 나는 받아들일 수 없다“고 거부했다. 대통령의 뜻을 거부한 것이다. 경 장관은 그해 12월 개각에서 경질됐다.


이석채 정통부 장관(현 KT회장)은 1996년 1월 중순 김영삼 대통령과 독대해 CDMA방식으로 가야 한다고 건의해 방식논란에 종지부를 찍었다.


CDMA는 상용화 이후 바다 넘고 하늘을 날아 세계를 누볐다. 남이 하지 않은 일을 해 이룩한 기술신화의 선물이었다.



<참고>
퀄컴측과 특허료와 관련한 이야기는 추후 자세하게 다룬다. 아울러 퀄컴과 ETRI간 특허소송과정과 계약서 초안이 본 계약에서 바뀐 의혹 등에 대해서 관계자들의 증언을 통해 실체적 진실을 규명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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