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에 가정(假定)은 부질없다고 한다.
왜?. 쓸모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정을 통해 역사의 물줄기가 어떻게 변했는지를 뒤짚어 보는 것은 의미가 크다. CDMA 개발은 한국ICT의 희망버스였다. 몇 번의 결정적 위기를 맞기도 했지만 희망버스는 CDMA 기술종주국이란 목적지에 안착했다.
CDMA 상용화 후 이런 저런 가정이 등장했다. 인터넷상에 아직도 가정을 전제로 한 의견들이 올라와 있다.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퀄컴의 CDMA기술을 ‘우리가 샀더라면 막대한 로열티는 지불하지 않아도 될터인데’ 하는 내용 등이다. 다른 하나는 ‘정부가 제2이동통신사업자 선정을 연기하지 않았다면 과연 CDMA상용화가 가능했을까’하는 점이다.
국내 기업이 퀄검을 인수했거나 정부가 사업자 선정시기를 늦추지 않았다면 CDMA 세계 첫 상용화는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CDMA방식을 개발하기 위해 정부는 미국 퀄컴에 막대한 선급기술료를 지불했다. 1991년 5월 6일 한국전자통신연구소(ETRI)와 미퀄컴측은 CDMA원천기술 공동개발을 위해 3단계에 걸쳐 총 1천6백95만달러(120억원)를 지급키로 하는 협약을 체결했다.
정부는 이에 따라 1단계 190만달러, 2단계 1,000만달러, 3단계에 505만달러를 지급했다. ETRII 이원웅 부소장겸 무선통신개발단장(인하대 정보통신공학과 교수 역임)이 미퀄컴측과 협상을 통해 결정한 로열티는 5%였다. 이 중 20%는 ETRI가 되돌려 받기로 했다.
이원웅 부소장의 말.
“서로 줄다리기를 하다가 로열티는 5%로 했습니다. 대신 공동개발이므로 양측이 로열티를 5 대 5로 분배하자고 제안했습니다. 퀄컴 측은 한국 측의 TDX-10기술을 다 넘겨 달라고 요구했어요. 최종 퀄컴 측과 80 대 20으로 타결했습니다. 퀄컴측에 가는 로열티는 4%가 된 셈입니다.”
CDMA지정개발업체들도 퀄컴측에 선급기술료와 로열티를 지불했다. 로열티와 관련해서 5%가 너무 많다는 주장이 업계에서 제기됐다. 로열티 문제는 나중에 쟁점이 됐다.(로열티 분쟁은 추후 다루기로 한다). 이런 관계로 퀄컴사를 인수하거나 아니면 CDMA기술을 매입했으면 막대한 로열티를 지불하지는 않았을 것 아니냐는 가정이 등장했다.
CDMA도입의 주역인 경상현 정통부장관(현 KAIST겸직교수)의 증언.
“그 무렵 유사한 말을 듣긴 했지만 실제 그런 접촉이 있었는지 알지 못합니다.”
당시 퀄컴측은 처지가 궁색했다. CDMA방식의 이동통신기술을 개발해 시연까지 끝냈으나 미국내에서조차 별로 주목받지 못했다. 그런 판에 한국이 공동개발을 제안하자 퀄컴측은 한국에 목을 메는 상황이었다.
CDMA 기술을 당시 경상현 ETRI소장에게 처음 소개하고 이후 기술도입과 협약 과정에 깊이 관여했던 박헌서 박사(현 한국정보통신 회장)의 회고.
“삼성전자 강진구 사장(삼성전자 회장역이)을 만나 CDMA기술을 소개한 적은 있습니다. 강 사장이 ‘CDMA가 뭐나’며 묻더군요. 그래서 기술 내용을 설명했더니 ‘아 그래’하면서 ‘그거 삼성전자하고 같이 하자’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박회장은 미 코넬대 정보통신공학 박사로 경 소장이 1976년 말 전자교환기 도입기종의 총괄책임을 맡았을 때 생산반 책임자로 함께 일했다. 그후 ETRI의 전신인 한국전자기술연구소장을 역임한 후 미 팩텔의 한국지사장을 맡고 있었다. 팩텔사는 퀄컴에 투자를 해 퀄컴의 CDMA기술에 대해 소상히 알고 있었다.
삼성전자는 실제 퀄컴과 기술이전 등에 관한 별도의 협상을 한 적이 없다고 한다.
삼성전자에서 이동통신개발 관련업무를 총괄한 김영기 상무(한화정보통신 대표 역임)의 말.
“퀄컴과 개별 접촉한 일이 없습니다. 퀄컴과 로열티 협상할 때도 저는 '왜 정부가 나서느냐'고 반론을 제기했어요. 삼성의 경우 로열티는 3%를 넘지 않았어요. 퀄컴은 협상도 정부채널을 이용했습니다. 퀄컴의 제이곱스 회장은 유태계입니다. 그들의 상술은 대단하잖아요. ”
김 상무는 체신부 출신으로 삼성에서 무선호출기를 개발해 성공했고 1999년까지 삼성에서 무선통신 사업을 주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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