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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덕의 정보통신부 그시작과 끝<125>

[특별기획] 대통령과 정보통신부

by 문성 2011. 7. 26. 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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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기이동통신은 1994년 6월30일 서울 신라호텔 다이너스티홀에서 창립기념식을 갖고 회사명칭을 '㈜신세기통신'으로 변경했다.



이날 기념식에는 윤동윤 체신부 장관과 장경우 국회체신과학위원장(현 한국캠핑캐라비닝연맹 총재), 최종현 전경련회장, 김만제 포철회장(한나라당 정책위의장 역임), 이동찬 코오롱회장, 신세기이동통신의 외국인 제1대주주인 ATC社의 샘 짐 회장등 관계자 1천여명이 참석해 대성황이었다.



체신부는 7월30일 신세기통신에 특정통신사업허가서를 교부했다. 허가 공문에 CDMA방식으로 해야 한다는 내용을 포함시켰다.


박성득 체신부 통신정책실장(정통부 차관역임. 현 한국해킹보안협회장)의 회고.

“국장이 가지고 온 결재서류에 제가 직접 그런 내용을 써 넣었어요.”


허가서는 권혁조 사장이 체신부를 방문, 박 실장으로부터 직접 받았다. 
권사장은 CDMA방식의 이동통신서비스 장비선정 과정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했다.


그는 장비공급업체들이 납품기한을 어길 경우 1천억원의 벌금을 내야 한다는 조건을 내걸었다. 당시 신세기통신이 구매할 장비 총액이 1천억원이었다.


권 사장의 말.

“장비업체를 선정하는데 여기 저기서 엄청난 청탁과 압력이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직접 제안요청서(RFP)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단서조항에 만약 납품기일을 어겨 서비스에 실패할 경우 1천억원의 페널티를 납부해야 한다는 내용을 넣었습니다. 유례없는 내용이었어요. 장비업체 들이 발칵 뒤집혔습니다.”


권 사장은 이런 내용의 공문을 CDMA시스템을 개발중인 삼성전자와 LG정보통신, 현대전자 등과 에릭슨, 모토로라 등 국내외 업체에 보냈다. 하지만 업체들이 서로 눈치를 보며 제안서를 내지 않았다.


권 사장은 현대전자 김주용 사장(현 한국공학한림원 회원)을 만나 제안서를 빨리 내라고 독촉했다. 현대가 가장 먼저 제안서를 먼저 내자 삼성과 LG정보통신등도 뒤질새라 제안서를 제출했다. 신세기통신은 서울 성북동 포철 안가(安家)에서 2주에 걸쳐 장비업체들이 제출한 제안서를 꼼꼼하게 검토했다.

심사위원회를 구성해 기술의 신뢰성 등을 중점 분석했다. 그런 가운데 외부에서 엄청난 청탁과 압력이 들어왔다. 외국 주주사에 장비를 몰아 주라는 압력도 거셌다. 권 사장은 이에 굽히지 않고 원칙에 충실했다.


권 사장의 증언.

“책임과 의무가 명확해야 하는데 그럴 수 없다고 딱 잘랐습니다.”


그는 심사기간동안 집에도 들어가지 않고 호텔에서 머물렀다. 외부와 연락도 하지 않았다. 외부 인사들과의 만남도 일체 거절했다. 잘못 처신했다가 근거없는 음해에 시달릴 수 있었다.


제안서를 심사해 1995년 3월 30일 삼성전자와 첫 장비구매 계약을 체결했다. 이어 현대전자와도 계약을 맺었다. 제안서를 냈다가 탈락한 모토로라는 ‘세계적인 기업을 신세기가 탈락시켰다“며 불쾌함을 감추지 않았다.


CDMA표준을 놓고 시련도 겼었지만 신세기통신은 1996년4월1일 ‘디지털 017’개통식(사진)을 갖고 수도권과 대전권에서 CDMA 이동전화 상용서비스를 시작했다. 신세기통신의 등장은 이동전화의 경쟁시대 개막을 알리는 신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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