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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자일기- 문수동자와 홍대

암자일기

by 문성 2009. 11. 14.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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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조와 상원사에 얽힌 전설은 많다. 가장 대표적인 게 문수동자와 만남이다.

세조가 문수도량인 오대산에서 100일 기도를 올리기 위해 상원사로 가는 길이었다.  오대산의 아름다운 산세와 맑게 흐르는 물을 보자 세조는 갑자기 목욕을 하고 싶었다.  임금 체면에 장삼이사처럼 옷을 훨훨 벗어던지고 물에 풍덩 뛰어 들수도 없었다. 임금의 뒤에 그림자처럼 따라 다니는 체통과 법도 때문이었다. 더욱이 세조는 자신의 몸에 난 종기를 다른 사람에게 보이기가 싫었다.
 세조는 주위 사람들을 멀리 물리치고 혼자 계곡 물에 몸을 담갔다.  세상의 근심걱정과 육신의 고통도 수정처럼 맑은 물에 몸을 씻으니 한결 가라않고 마음도 가벼웠다. 그러자 등에 난 종기 부근이 가볍기 시작했다. 혼자 해결하고자 했으나 손이 등에 닿지 않았다.

 

“허어 이것 참 난감하구나. 누구를 부르자니 그렇고...”

궁즉통이라고 했던가. 마침 그 때 어린 동자승이 자니가는 모습이 보였다. 세조는 반가워 그를 불렀다.

“애야 너 이리와서 내 등을 좀 밀어다오”

“예”

 티없이 해맑은 동자승이 망설임없이 세조 옆으로 오더 고사리 같은 손으로 맑은 물을 끼엊고 등을 밀어 주었다. 가렵던 곳을 부드러운 손으로 밀어 주니 시원하기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동자승이 등을 다밀자 세조는  동자승이 귀엽고 고마워 단단히 주의를 주었다.

“애야 나중에 누구한테도 임금 등 밀어 주었다는 소리는 절대 해서는 안된다. 만약 그런 사실이 알려지면 너는 참형을 면할 수 없느니라. 알겠느냐”

당시만 해도 임금의 몸에 손을 댄 사람은 참형에 처했다.

동자승이 이 말에 천연덕스럽게 대답했다.

“임금이나 조심하십시오. 나중에 사람들을 만나면 문수보살이 등밀어 주었다는 소리는 절대 하지 마시오”

“무엇이라고, 문수보살이라고”

세조가 깜짝 놀라 돌아보니 어린 동자승을 이미 연기처럼 자취를 감추고 없었다. 이날부터 등에 난 종기가 차츰 아물기 시작했다. 세조는 이것이 문수보살의 가피라고 생각했다. 

 세조는 서둘러 목욕을 마치고 화공을 불러 자신이 본 문수동자상을 그리도록  했다. 조금이라도  지체하면 동자승의 모습이 잊혀질까 걱정이 됐다. 그렇게 그린 문수동자상(사진)은 현재 상원사 청량선원 법당에 모셔 있다. 동자는 머리를 양쪽으로 묶었고 천진난만한 얼굴에 온화한 미소를 머금고 있다.

상원사 올라가는 큰 길목 왼쪽은 세조가 당시 목욕을 하기 위해 의관을 걸었던 곳이라 하려 “갓걸이” 또 “관대걸이”라고 부른다.

 세조는 문수보살의 가피를 입은 후 자주 상원사를 찾았다.
한 번은 상원사 중창을 위해 상원사에 간 세조는 그 방안을 논의하고 있었다. 
마침 공양시간을 알리는 목탁소리가 들였다. 세조는 대중들과 함께 공양을 하겠다고 말했다. 

“별도 자리를 마련했으니 그리 옮기시지요” 
주지 스님이 권했으나 세조는  사양했다.

“아니 괜찮소. 나도 스님들과 공양을 같이 하겠소”

그러자 맨 끝에 앉았던 어린 동자승이 공양발우를 들더니 세조에게 말을 건냈다.

“이 처사님, 어서 공양을 하시지요”

이를 본 스님들과 대중들이 대경실식해 몸둘바를 몰랐다. 감히 임금을 보고 ‘처사’라고 불렀으니 불경죄로 목이 날아갈 판이었다.

세조는 동자승을 보더니 개의치 않고 웃으며 말했다.

“과연 도인이 될 자격이 충분하구나”

세조는 그 자리에서 동자승에게 종삼품의 직을 내리고 붉은 천을 감은 허리띠인 전홍대를 하사했다.
 세조는 그 동자승을 보면서 지난 날 자신의 등을 밀어준 문수동자를 생각했던 것이다.

이 일이 있은 후 어린이들에게 귀하게 되라는 표시로 붉은 허리때를 매어 주는 풍속이 생겼다는 것이다. 이것이 홍대의 유래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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