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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자일기-오대산 적멸보궁

암자일기

by 문성 2009. 11. 17.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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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적멸보궁(적멸보궁)은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신 곳이다.
 우리나라에는 5대 적멸보궁이 있다. 영축산 통도사와 태백산 정암사, 사자산 법흥사, 설악산 봉정암, 오대산 적멸보궁 등이다.

이 곳을 가려면 월정사와 상원사를 지나야 한다. 상원사 입구에는 세조가 옷을 걸어 놓고 목욕을 했다는 '관대걸이'가 있다. 또 상원사에는 세조와 인연이 깊은 문수동자상과 고양이상이 있다. 근대 고승인 한암 스님(사진)이 이곳에서 열반에 든 곳이기도 하다.

 

오대산 적멸보궁은 천하의 명당이다. 오대산 비로봉에서 흘러내린 산맥들이 마치 병풍처럼 이곳을 둘러싸고 있다. 그 가운데 우뚝 솟은 곳에 부처님 정골사리를 모셨다. 이 자리는 용이 여의주를 가지고 느는 형국이라고 해 용의 머리에 해당한다. 적멸보궁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앞이 다 내려다 보이고 좌우는 굵은 산맥들이 감싸고 있다.  풍수에 문회한이 봐도 명당이란 느낌이 든다. 

삼국유사를 쓴 고려 때의 고승인 일연스님은 “국내 명산중에서 가장 좋은 곳이 이곳이요, 불법이 길이 번창할 곳”이라고 했다.

이 곳에 적멸보궁을 처음 세운 스님은 자장 율사이다. 그는 당나라에 유학을 가서 중국 오대산에서 기도를 하던 중 지혜의 상징인 문수보살을 친견하고 얻은 석가모니 정골사리를 이곳에 모셨다고 한다. 신라 선덕여왕 때인 645년 이곳에 보궁을 세웠다고 한다.

적멸보궁에는 따로 부처님을 모시지 않는다. 그 대신 불단만 설치해 놓았다.

적멸보궁에는 참배객들이 끊이지 않는다. 하루 4번 기도를 하는데 보통 1시간 이상 걸린다.
 특이한 점은 이곳은 불교의 성지라 주위에 화장실이 없다. 적멸보궁아래 있는 중대에서 식사를 하고 화장실도 이용해야 한다.  안 그러면 난처한 상황에 처할 수 있다.

 중대에서 적멸보궁까지는 1.5Km 위로 더 올라가야 한다. 길 주위는 온통 소나무와 잡목 들이다. 봄이면 진달래가 아름답게 자태를 자랑한다. 가을이면 단풍이 아름답다.
보궁의 법당 크기가 5평 가량이다. 신도들이 많이 들어갈 수 없어 보궁 건물의 앞이나 좌우 뒤에 자리를 깔고 앉아 기도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먼저 가는 사람이 법당에 들어가기 때문에 뒤에 온 사람은 별 도리가 없다.

적멸보궁에 가면 새들과 쉽게 친해질 수 있다. 참새들에게 줄 먹이를 손바닥에 놓고 손을 벌리고 있으면 참새나 맷새들이 날아와 먹이를 먹고 날아간다. 이곳에 오는 사람들의 순진무구한 마음을 날짐승들도 아는 모양이다.

상원사는 해방 직후 화재로 나 다시 중창했다. 그 후 6.25때 다시 소실될 위기가 있었다.  국군이 빨치산의 근거지를 없앤다며 오대산 절을 불태기로 한 것이다. 상원사에도 국군이 들이닥쳐 상원사를 태우려고 했다.

이 때 당대의 고승인 한암 스님이 법당에 앉아 일갈했다

“나는 부처님의 제자요. 내가 이절과 함께 불에 타서 소신공양을 할 터이니 불을 지르시오”

스님의 모습에 감명을 받은 군인들이 문짝만 태웠다. 멀리서 보면 절을 태운 것처럼 위장했다는 것이다. 스님 덕분에 상원사는 화를 면했다.

한암 스님은 조계종의 초대 종정으로 1920년 상원사로 오면서 그 유명한 말을 남겼다.

“천고에 자취를 감춘 학이 될지언정 상춘에 말 잘하는 앵무새의 재주는 배우지 않겠다”

이후 입적할 때까지 한 번도 절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스님은 속세를 떠나던 날도 가사와 장상을 입은 단정한 모습으로 앉아서 열반에 드셨다. 좌탈입망(坐脫立亡)이었다.
상원사에 가면 스님이 머물던 방에서 열반 모습을 볼 수 있다. 당시 속세 나이 76세. 법랍은 54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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