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사의 여명은 참으로 경이롭다. 맑은 공기와 졸졸 거리며 내닫는 물소리, 볼을 간질이는 바람소리 등등.
자연이 깨어나는 모습을 보면 자연의 이치가 두려울 정도다.
티없이 맑게 기지개를 켜는 자연을 보면 내 마음이 절로 청정해 졌다.
동화속의 새벽처럼 맑고 경건하고 신성하기조차 했다. 새벽 안개가 산허리부터 연기처럼 피어 오르는 모습은 산사가 아니면 구경하지 못할 장관이다.
새벽 예불을 마치고 요사채로 내려오면 대략 5시경이다. 이 무렵부터 자연은 기지개를 켜기 시작했다. 인간들은 한창 꿈나라를 헤맬 시간이다. 나도 사회생활을 할 때는 그랬다.
나는 넑나간 사람처럼 요사채 마루에 두 다리를 쭉 펴고 앉아 멍하니 차츰 훤하게 밝아오는 동쪽 하늘을 지켜 보았다.
새벽 안개가 사라지면서 가야산이 제 모습을 하나 씩 드러내기 시작했다. 자연속에 앉아 있으면서도 나는 자연에 대해 아는 게 없다. 새들의 휘파람 소리를 들어도 그 새 이름조차 모른다. 새벽 이슬을 머금고 수줍게 핀 한 송이 꽃을 봐도 통성명을 할 수 없다. 그저 들고 보고 느끼고 감상할 따름이다. 새들의 휘파람 소리는 산사에서 듣는 순수 음악이다.
어둠이 물러가면 먼저 동쪽 산위로 붉은 불기둥이 솟아 올랐다. 그 찬란함이여. 집채 만한 전등이 빛을 발하듯 빨간, 노란, 파란 등이 한 데 어울러지면서 동쪽 하늘이 차츰 훤해졌다. 저 찬란한 태양은 누가 만들었기에 저리 동쪽 하늘을 붉게 칠하며 나타나는가.
자연의 경이를 보면 내가 거듭 티끌같다는 생각이 든다. 만약 저 태양에 눈이 달려 있어 하늘에서 나를 내려다 본다면 내가 보이기나 할까.
자연 앞에 인간은 겸손해야 한다. 자연의 품에서 나고 자라서 사는 인간들이 자연을 우습게 보는 일이 너무 많다. 개발이란 미명아래 자연을 훼손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가야산에도 골프장 건립을 놓고 시비가 벌어졌다. 1백년도 못사는 인간들이 자신의 한 때 즐거움을 위해 자연을 망치려는 일이 너무 많다.
“까악 까악”
새벽 까치가 암자 앞 소나무 가지에 앉아 울었다. 뒤늦은 나름의 새벽 예불인가.
까치가 울면 ‘반가운 손님이 온다’는 옛말이 있다. 오늘 절에 누가 올려나.
절집의 불문률은 ‘오는 사람 막지 않고 가는 사람 붙잡지 않는 것’이니 누군들 오지 못할 이유가 없다.
사람은 자연에 묻혀야 자연의 숨소리를 듣고 자연의 움직임을 볼 수 있다.
그래야 자신을 자연에 대입해 볼 수 있다. 외로움이 있어야 나를 찾을 수 있다.
그대의 참모습이 무엇인가. 이런 질문에 답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생각도 안해 봤으니 답이 있을리 없다.
그런 나를 해맑은 가야산과 하늘의 붉은 태양이 미소지며 내려다 보고 있었다.
산사의 아침은 미망에 헤메는 나를 흘들어 깨우고 있었다.
“정신 차려 이 친구야. 저승길에 가지고 갈 것은 업장 뿐이라네”
그것은 마음의 소리였다. 사방은 고요했다. 세상사의 허망함이 내 몸에서 하나 둘 사라짐을 느끼는 산사의 여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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