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 집 밥상은 완전 풀밭이야"
처음 절에 간 사람들이 흔히 농담삼아 하는 소리다.
맞는 말이다. 절에서는 육류는 구경조차 할 수 없다. 멸치도 볼 수 없다.반찬은 채식위주다.
절 공양은 상(床)공양 아니면 발우(拔羽)공양이다. 절 식구가 몇 안 될 때는 일반 가정처럼 상을 차려놓고 먹는다. 하지만 큰 절일 경우 스님들이 많아 발우공양을 한다.
해인사 겨울 학생부 수련회 모습(해인사 홈페이지)
길상암은 식구가 몇 되지 않아 상에 음식을 놓고 먹었다.
절 음식은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음식은 단백하고 정갈하다. 짜지 않고 다소 싱겁다. 일반인들이 처음 절 음식을 먹으면 대부분 간이 안맞다고 말한다. 조미료를 안 쓰고 짜게 조리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스님들의 수행 생활에 해롭거나 방해가 되는 음식은 절에서 일절 만들지 않는다.
절 생활이란 게 규율이 없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엄격하다. 규율하지 않는 규율처럼 무겁고 무서운 것은 없다. 어느 것 하나 제 멋대로 할 수 있는 게 없다. 오직 수행에 전념하는 일을 제외하면 모두 하지 말아야 할 일이다.
공양하는 일만 해도 그렇다. 음식을 먹을 때도 ‘쩝쩝’ 소리를 내지 않아야 한다.
맛있다고 배가 터지도록 폭식을 해서도 안된다. 앉는 자세도 흐트러지지 않아야 한다.
절에서 공양할 때는 다섯 가지를 생각해야 한다. 이를 오관계(五觀偈)라고 한다.
이 음식이 어디서 왔는고
내 덕행으로는 받기가 부끄럽네
마음에 온갖 욕심 버리고
이 육신을 지탱하는 약으로 알아
도업을 이루고자 이 공양을 받습니다
스님들은 깨닫음을 얻한 수단으로 공양을 하는 것이다. 사찰음식은 가리는 게 많다. 육류는 말할 것도 없고 오신채(五辛菜)라고 하는 마늘과 파, 달래, 부추, 홍거 등은 어느 절이나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
법망경(法網經)에 이런 채소는 수행에 방해가 되므로 절대 먹지 말라고 적었다.
오신채를 먹으면 음란한 마음과 성내는 마음이 일어난다고 한다. 마음이 고요해야 공부를 할 수 있는데 잡념이 잡초처럼 자라면 도를 깨치기가 어려운 법이다.
보조국사 지눌 스님은 ‘계초심학인문’에서 이렇게 강조하셨다.
“공양을 할 때 소리를 내지 말고, 음식을 집거나 놓을 적에 반드시 조심하며, 얼굴을 들거나 돌아보지 말고, 맛있거나 맛없는 음식을 구분하지 말며, 그저 묵묵히 잡념이 일어나지 않게 공양하라”
절에서 음식타박이란 있을 수 없다.
노스님이 홀로 수행하는 산속 토굴로 젊은 스님이 찾아 갔다. 깨달음의 정도를 점검받고 싶었다. 가는 날이 장날인지라 노스님은 출타하고 없어 혼자 토굴에서 노스님이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사방이 칠흙같은 어둠으로 변한 밤이 되자 노스님이 토굴로 돌아왔다. 노스님은 젊은 스님을 보자 미안해 하며 저녁을 차려왔다. 상위에는 밥 한그릇과 김치가 놓여 있었다.
노스님이 거듭 양해를 구했다.
“나는 하루에 한 끼만 먹습니다. 남은 밥이라고는 이것이 전부요. 시장할테니 우선 요기라도 합시다”
젊은 스님은 허기를 달래려 허겁지겁 밥을 입어 넣었다.
순간 젊은 스님은 ‘헉’하며 경악을 금치 못했다. 김치는 이미 식초가 됐고 밥은 삭아 풀처럼 흐물흐물했다. 젊은 스님은 이런 음식이 목구멍으로 넘어가지 않았다.
그런데 노스님은 아무 표정없이 그 음식을 맛있게 먹었다. 설걷이가 필요없을 정도로 밥 그릇을 말끔히 비웠다.
이를 본 젊은 스님은 자신의 공부가 크게 부족했음을 깨닫았다. 그는 노스님에게 큰 절을 올리고 다시 수행길에 나섰다고 한다.
속세와는 달리 절 음식은 맛으로 먹는 게 아니다. 도를 이루려면 우선 내마음의 경계부터 말끔히 털어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