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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여행<4>합천 해인사 길상암

여행. 맛집. 일상

by 문성 2018. 3. 4. 2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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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사 길상암(사진)은 내 마음의 고향이다. 마치 어머님 품속같은 곳이다.

20여년전 생사의 기로에서 헤매일 때 해인사 길상암에서 여름 한철을 요양했다. 당시 처음 인연맺은 명진 큰스님은 이듬해 열반에 드셨다.

그후 큰 스님 기일이면 길상암에 내려갔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애틋한 그리움도 차츰 옅어져 길상암에 가지 못한지가 10여년에 이른다회사를 그만두고 마음을 달래기 위해 2008년 다시 길상암에 내려가 보름여 머물다 온 적이 있다.

그 후  다시 10여년이 지났다. 과연 길상암은 어떤 모습일까. 

그런 상념에 젖으며 경주를 출발해 길상암으로 향했다. 경주에서 경남 합천 해인사로 가기 위해 길은 대구로 나와 다시 88도로를 타고 합천IC로 나갔다.

합천 해인사로 가는 길은 예전과 크게 변한게 없었다. 홍류동을 흐르는 물길과 도로 주변의 울창한 소나무 숲은 청청함을 유지하고 있었다.

길상암은 내 영혼의 휴식처요 안식처다. 길상암에서 나는 마음과 육신을 재 충전했다. 명진 스님의 배려와 보살핌아래서 무심의 상태로 지냈다.

해인사에는 14개의 부속암자가 있다가야산 호랑이로 불리던 성철스님이 주석하시던 백련암. 혜암스님이 계시던 원당암. 일타 스님이 거처하시던 홍제암 등은 모두 산내 암자들이다.

상념속에 해인사 입구를 지나 약 1.5키로미터를 올라가면 적멸보궁이란 글을 새긴 입석이 나타났다. 바로 길상암 입구다.

적멸보궁이란 불가의 성지다.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신 곳이다. 적멸이란 모든 번뇌가 사리져 버린 고요한 상태, 깨달음의 세계를 말한다. 보궁이란 보배같이 귀한 궁전이란 뜻이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적멸보궁으로는 다섯 곳이 있다. 흔히 5대 적멸보궁이라고 부른다. 불보사찰인 양산 통도사와 부처님 정골사리를 모셨다는 오대산 적멸보궁, 설악산 봉정암, 정선 정암사, 영월 법흥사 등이다.

길상암에는 모두 36과의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셨다. 길상암 뒤에 우람하게 치솟은 묘길상봉에 2, 그리고 길상암 아래 홍류동 계곡 옆에 34과를 모셨다.  한 곳에 이처럼 많은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신 곳은 아직까지는 길상암 밖에 없다. 명진 스님이 24년 간 기도끝에 모신 사리다.

진신사리를 모신 보궁에는 불상이 없다. 불상 자리에 작은 방석만 놓여 있다. 불상보다 더 귀한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신 까닭이다.

길상암에 머물 때 숨을 헐떡이며 보궁을 참배 한적이 있다. 당시 그곳에는 지금은 법명도 잊었지만 한 스님이 정진하고 있었다. 그 스님과는 공양시간에만 얼굴을 마주쳤다. 명진스님이 열반한 후 그 스님도 다른 곳으로 떠났다.  

길상암은 아래서 보면 잘 보이지 않는다. 소나무 숲에 가려 있다. 하지만 계단을 걸어오라가면 길상암은 큰 바위위에 좌선하듯 앉아 있다.

이곳은 기가 세다고 한다. 기가 약한 사람은 이곳에서 살지 못한다고 한다. 어떤 이는 밤에 무서워 화장실에도 못간다는 것이다. 심지어 밤중에 신발끄는 소리를 들었다는 이도 있다. 나는 그런 말을 듣고 반신반의했다. 그러다가 직접 그런 경험을 했다. 명진스님이 열반 한 후 2층 요사채에서 혼자 자다가 밤중에 신발 끄는 소리를 들었다. 그런데도 당시는 조금도 무섭지 않았다

나는 그동안 도량신이 있다는 사실을 믿지 않았다. 그러다가 열반하신 법정스님의 법문을 듣고 무릎을 쳤다. 법정스님은 자신도 경험을 통해 도량신이 있다는 것을 믿는다고 했다.

길상암은 기도도량으로 유명하다. 내가 이곳에 머물던 당시 하루종일 염불소리와 기도 소리가 멈추지 않았다.  

길상암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계단을 따라 길상암으로 올라갔다. 의외로 사람들이 많았다. 알고보니 바로 지장재일이었다.

하루 3번씩 안방처럼 드나들던 법당으로 올라갔다. 스님 한 분이 법당을 정리하고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 부처님과 영암스님과 명진스님 영전에 삼배를 올랐다.

사진속 스님은 명진 스님은 생전처럼 그리운 듯 반겨 주셨다영정을 보니 눈물이 핑 돌았다. . 법당을 정리하던 스님은 명진스님 상좌로 보궁에서 기도 중이었다. 내려와 주지 스님을 만났다광해 스님은 부산 사리암 주지로 가셨다. 부산 노보살도 만났다. 명진스님 생존시 각종 일에 가장 열성을 보인 보살이다. 두 손을 잡고 안부를 물었다.

흐르는 세월 따라 인연도 사라지고 있었다. 그곳에 머물 때 있었던 함께 지내던 스님과 공양주 보살은 추억속에 남았다. 그 때 머물던 학생들도 지금은 없다. 그뿐이 아니었다. 지금은 공양주 보살도 없이 스님들이 직접 공양을 짓는다고 했다. 마음이 허전했다. 이제는 반겨주거나 아는 이가 한 사람도 없었다.

발길을 돌려 곧장 길상암을 내려와 해인사로 올라갔다. 주차장에 차를 세운 뒤 아내와 두 아들과 걸어서 대웅전과 팔만대장경판을 모신 장경각 등을 두루 참배했다. 명진스님 한테 들은 일화를 두 아이에게 이야기했다.  2008년 여름 길상암에 머물 때는 문수라는 아이와 둘이서 해인사를 돌아보고 해인사 앞 목욕탕에서 목욕을 했다. 흘러간 추억이었다.  

두 시간여 해인사 참배를 끝내고 가야산 자락에 안개처럼 서린 길상암 추억을 남겨놓고 우리는 곧장 서울로 향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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