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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라니'

전원일기

by 문성 2018. 9. 14.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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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닥닥

뭐야

 

깜짝 놀라 텃밭을 둘러보니 고라니 한 마리가 고구마두둑 속에서 후다닥 뛰어나왔다. 고라니는 순식간에 울타리를 훌쩍 뛰어넘어 뒷산으로 모습을 감췄다. 한순간에 일어난 일이다.

 

아하 이놈이 바로 상추와 고추, 고구마순을 잘라먹은 범인이구나

 

텃밭에 심은 채소를 마치 낫으로 자르듯 예리하게 잘랐기에 범인이 고라니인지 긴가민가했다. 왜? 직접 현장을 보지 못해서다.

 

입맛이 까다롭다는 고라니가 설마 고구마순까지 먹을 까 하는 생각이 있었다. 직접 도망가는 현장을 목격하니 주범이 바로 고라니였다. 고라니가 현장을 들킨 셈이다.

 

올해 봄

마음을 다잡고 텃밭에 채소 모종을 사다 심었다. 고추와 상추, 땅콩, 고구마다. 5일장인 남양주시 장현시장에 가서 모종을 사다 내 딴에는 정성을 다해 심었다.

 

가물지 않게 아침 저녁이면 고무 호스로 물도 뿌렸다. 파릇 파릇 자라는 채소를 볼 때마다 미소가 절로 나왔다. 농민들의 흐뭇하고 넉넉한 미소의 의미를 알 듯 했다.

 

그런데 그 미소가 오래가지 못했다. 상추를 뜯어먹을 무렵, 텃밭에 문제가 발생했다. 어느 날 아침, 텃발에 올라갔더니 이게 웬일인가. 멀쩡하게 잘 자란 상추가 하루 밤사이 싹둑 싹둑 잘린 모습이었다.  전전긍긍하는 사이 이번에는 고추잎을 다 잘라 먹었다.  

 

 

정성들여 키운 상추와 고추 잎을 모조리 삭둑 잘라먹자 울화가 치밀었다. 고라니의 입질은 멈추지 않았다. 이번에는 고구마순(사진)을 잘라 먹었다.

 

내가 해를 입고 보니 유해동물의 피해를 본 농민들의 참담한 마음을 헤아릴수 있었다. 전업농의 경우 한 해 농사를 망칠 경우 얼마나 상심이 클 까 싶었다. 텃밭에 채소 조금 심은 나도 피해를 당하자 화가 났다.

 

주위 지인에게 대책을 물었더니 철조망을 치거나 개를 한 마리 키우라고 했다. 아니면 고약한 냄새가 농약을 사다 뿌리라고 했다 아내는 개 키우는 것에 반대한다. 개를 키우면 식구가 느는 셈이고 훗날 이별이 싫다는 이유다. 농약을 사다 뿌리는 일도 무공해 농사 원칙에 맞지 않고, 더욱이 미운 고라니지만 해롭다는 점이 마음에 걸렸다.

 

대책을 놓고 고민하다 허술한 울타리를 손질했다낮은 곳은 약간 높였다. 이튼날 텃 밭에 올라갔더니 이상무였다. 이제 괜찮나 보다 했더니 웬걸, 며칠 지나자 고라리가 다시 텃밭은 헤집고 갔다. 이번에는 조금 심은 땅콩 잎까지 잘라 먹고 고구마순까지 먹었다.

 

고라니는 농작물에 피해를 준다는 이유로 1994년 유해 야상동물로 지정했다. 그러나 국제적으로는 멸종위기 보호종으로 분류했다.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은 고라니를 적색목록의 취약종(Vulnerable)으로 지정했다. 하지만 고라니는 허가만 받으면 수렵이 가능하다고 한다.  

 

내 딴에 정성들여 재배한 텃밭 채소를 먹었다고 고라니를 수렵할 생각은 없다. 세상에 태어난 이상, 고라니도 먹고 살아야 한다.

 

사는 게 별 건가.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 사람과 동물이 공생하는 게 삶이 아닌가. 그래서 당분간 그냥 두고 보기로 했다

 

차분히 생각해 보니 내 잘못도 있다. 아예 고라니가 못 오도록 울타리를 높고 견고하게 쳤다면 이런 피해는 보지 않았을 게다.  배고픈 고라니가 먹을 게 있는데 들어오게 한 책임은 나한테 있다.

 

다행스러운 점은 최근 며칠 째 고라니가 다녀간 흔적이 없다. 더 이상 텃밭에 내려와 남은 작물을 절단내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 희망 사항이다. 아무튼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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