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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각 전원 일기 - 김장 담그기

전원일기

by 문성 2018. 12. 3.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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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구 허리야

김장을 이틀에 걸처 끝냈다. 장모님이 살아 계실 때는 장모님 댁에서 김장을 했다. 장모님이 별세한 뒤에는 서울 근교 동서집에서 김장을 했다동서가 전원생활을 청산하고 아파트로 이사가는 바람에 지난해부터 집에서 김장을 담갔다.

동안 김장 걱정하지 않고 편하게 잘 지낸 셈이다. 행복 끝, 노동 시작이다.  이제부터는 직접 김장을 담가야 할 처지다김치를 사 먹으면 김장할 필요가 없다. 내심 그럴 생각으로 인근 마트에 가서 김치를 사다 먹었더니 광고 내용과는 맛이 딴판이었다.  젓갈 비린내가 많이 나 식욕이 떨어졌다. 배추도 억세고 질겼다. 편한 것 보다는 김치 맛이 우선이다. 내 입맛에 맞는 김치를 사철 맛 있게 먹으려면 김장을 하는 수 밖에 없다. 

서울 근교 전원으로 이사와 지난해 처음 아내와 인근 농수산물 시장에 가서 배추를 구입했다. 하지 않던 일을 하니 힘이 들었다. 배추를 다듬어 소금에 절이는 일도 만만한 한 게 아니었다. 돈을 조금 더 주더라도 절임배추를 사는 게 편했다.

올해는 지인 시골에서 절임배추를 판매한다고 해서 절임배추 15 포기를 주문했다. 김장 전날 아내와 인근 시장에 가서 양념 거리를 샀다. 10개와 대파, 양파, 쑥갓, 쪽파, 생강, 갈치 젓갈, 생새우 등이다. 장보기도 힘들었다. 혹 빠진 게 있나 아내는 메모지를 몇 번이나 꺼내 확인했다. 

집에 와 사온 채소를 다듬고 하나 손질했다. 무는 깨끗히 씻어 채 썰기를 했다. 채칼을 이용하니 한 결 일이 수월했다. 힘쓰는 일은 내가 했다. 양파를 다듬고 생강도 껍질을 벗겼다. 어느 것 하나 쉬운 게 없었다.  파를 손질할 때는 매워 눈물이 줄줄 흘렀다. 모르는 이가 이 상황을 봤다면 아내한테 혼나 우는 남편으로 오해했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쌀 한 톨 생산하는 데 농부 손이 88번 간다고 했는데 실감이 났다. 어느 것 하나 그냥 입으로 들어가는 게 없다. 아내는 고추가루와 양파, 젓갈, 육수물로 양념을 만들었다. 양념에 무 채와 양파를 넣어 비볐다.  

이튼 날 오전 택배로 절임배추가 도착했다. 곧장 절임 배추를 꺼내 채반과 소쿠리에 담아 소금기를 쭉 뺐다. 소금기를 뺀 뒤 배추를 포기당 4쪽으로 잘라 준비했던 양념으로 버무렸다.

아내가 배추 잎을 하나씩 제치고 그 속에 양념을 비비 넣었다. 내가 양념을 버무리겠다고 했더니 아내가 질색이다. '올해 김장 버릴 일 있냐'면서. 골고루 양념을 비벼야 한단다. 김장한 배추는 아내가 시키는대로 통에 담아 곧바로 딤채에 넣었다.

이제껏 김장을 할 때 아내를 도와 준 일이 별로 없다. 직장 생활을 할 때는 직장 핑게로 김장 일을 나 몰라라했다.  결혼 후 올해 처음 어설프지만 김장 보조역할을 했다. 보조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어떤 일이건 모르면 지청구를 듣는다. 내 나름대로 잘한다고 했지만 아내 성에 차지 않는 모양이다.

"이걸 저리 옮겨라”, “ 고추가루를 좀 더 통에 부어라등 주문이 많다.  초짜다보니 아내가 시키는 일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아내에게 핀잔을 들었다. 힘들게 일하면서 칭찬은 커녕 지적만 받으니 은근 자존심이 상했다. 하지만 별수 있나. 잘 한 게 없으니 참는 수 밖에. 하지만 남편 체통이 말이 아니다. 

그래도 시간은 갔다. 시간이 약이다.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는 법.  아웅다웅하며 김장을 하다보니 끝이다.   

뒷 정리를 합시다

아내 말에 앉은 자리에서 일어서는데 허리가 당겼다.

아이구 허리야

하지만 기분 좋은 고통이다. 저녁 밥은 김장한 생김치를 얹어 먹었다. 아삭아삭 씹히는 맛이 아주 좋다. 갈치 젓갈을 사용했더니 비린내가 나지 않았다.

김장을 하고 나니 마치 농부가 가을 타작을 모두 끝낸 듯 홀가분하다.  아내에게 내색은 안했지만 속으로 다짐을 했다. 내년에는 김장 보조를 더 잘해야겠다. 다짐해 보지만 내년이라고 달라질 게 있을지 모르겠다. 아무튼 전원에 살다보니 내 일이 자꾸 늘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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