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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자일기-진묵대사2

암자일기

by 문성 2010. 2. 7. 2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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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살에 출가한 진묵이 처음 한 일은 신장단에 향을 올리는 일이었다.

당시 주지스님은 동자승인 진묵에게 신장단의 신장들에게 향불을 피우는 일은 맡겼다.  아직 어리니 다른 힘든 일을 시킬 수가 없었던 것이다.  어린 진묵은  아침 저녁으로  신장단에 향불을 피웠다.

 이렇게 며칠이 지났다.  어느 날 주지스님 꿈에 신장들이 나타나 몹시 화난 표정으로 말했다.

“우리는 부처를 호위하는 신장들이요. 그런데 어찌해서 부처님의 화신에게 우리들에게 예경하고 향을 올리는 일을 시킨단 말이요.  우리가 송구하고 불편하기 한이 없소.  앞으로 그분에게 절대 이런 일은 시키지 마시오. 그래야 우리가 마음 편히 지낼 수 있소”


깜짝 놀란 주지스님이 잠을 깨고 보니 꿈이었다. 이튼날부터 주지스님은 진묵에게 이일을 시키지 않았다.  스님은 이어 송광사. 원등사. 대원사 등에서 주석하셨다.


스님과 관련한 일화는 이 일대에 널리 전해진다.

스님은 효성이 지극했다. 진묵 대사가 전주시에 있는 용화산 일출암에서 머물 때 일이다.  스님은 홀로 남은 어머니를 절 아래 왜막촌에 모셔다 놓았다. 진묵대사는 아침 저녁으로 마을로 내려가 어머니에게 문안을 드렸다. 하루는 어머니의 얼굴이 좋지 않아 어찌된 일인가 살펴보니, 모기 때문에 고생을 해 그런 것이었다.

대사는 그길로 산신을 불러 왜막촌에 모기가 없게 해달라고 당부했다. 그 날 이후로 어머니가 돌아가실때까지 모기가 없었다고 한다.


진묵대사의 어머니는 그 후 5년 만에 돌아가셨다.  모친의 산소는  전국 김제군 만경면의 유양산에 모셨다.  현재는 만경읍 화포리 358번지다.

진묵대사는 노모의 왕생극락을 빌며 영전에 제문은 지어 올렸다.  그 내용이 애절해 듣는 이들이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열 달 동안 태중의 은혜를 무엇으로 갚으리오. 슬하에 삼 년 동안 길러주신 은혜 잊을 수가 없습니다.
만세 위에 다시 만세를 더하여도 자식의 마음에는 부족하온데 백 년 생애에 백 년도 채우지 못했으니 어머님의 수명은 어찌 그리도 짧습니까?
표주박을 들고 길거리에서 걸식하는 이 중은 이미 말할 것도 없거니와 비녀를 꽂지 못하고 출가하지 못한 누이동생이 어찌 슬프지 않겠습니까?
상단 불공을 마치고 하단 제사를 모셔 파하니 중들은 각기 자기 방을 찾아 들어가고 앞산도 첩첩하고 뒷산도 중중한데 어머님 영영은 어디로 떠나시렵니까? 아! 애닯고 슬프도다.”


누구든지 진묵대사의 노모 산소의 풀을 베고 과일과 음식을 차려놓으면 그 사람의 농사가 풍년이 들었다. 
이런 소문이 나자 주변 사람들이 앞 다투어 벌초를 하고 과일을 차려 놓았다. 산소는 언제든지 말끔히 정돈돼 있다고 한다.

이 산소는 자손이 없어도 천 년동안 향연기가 끊이지 않는다는 이른바 ‘천년향화지지(千年香火之地)라고 한다. 다시말해 자손이 없어도 천 년동안 향을 피우고 제사를 지내주는 곳이라는 것이다.  이곳에는 참배객들의 발길이 여전히 끊이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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