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와 중앙일보.
국내 보수언론의 선두를 다투는 신문이다.
1996년 6월11일 국내 신문 가운데 유독 조선일보와 중앙일보는 같은 사안인데도 논조(論調)가 극명하게 대비됐다.
조선일보는 이번 사업자 선정에 의미를 부여했다. ‘통신업계 독점서 경쟁시대로’ 라며 ‘사업능력 평가서 우열 판가름’이란 제목을 돋보이게 편집했다.
중앙일보는 3면 전면을 신규통신사업 특집으로 꾸몄다. 하지만 중앙일보는 ‘심사기준 오락가락 신뢰성 흠집’ ‘내정설 안배설 꼬리문 의혹’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회사의 주장을 반영하는 사설의 표제와 내용도 비교될 만큼 판이하게 달랐다.
조선일보는 ‘정보통신의 경쟁시대’라는 사설 제목을 달았다. 중앙일보는 ‘소문대로 된 통신사업자 선정’이라는 사설 제목을 붙였다.
사설의 표제가 다른 만큼 내용도 달랐다.
조선일보는 “신규사업자 선정이 정보사회의 지평을 열어갈 것”이며 기대감을 나타냈다.
“새 통신사업자 확정은 국내 통신사상 중요한 획을 긋은 전기가 될 것이다. 27개 신규통사업자의 최종 선정은 그 과정의 공공성이나 결과의 합리성 여부와는 별개로 국내 통신산업의 발전 과정에서 중요한 이정표를 하나 더 세우는 것이었다. 국내 통신산업은 오랜 기간의 독점적 공영화에도 불구하고 쉴 새 없는 연구개발 투자를 포함한 대형설비 투자를 지속함으로써 비교적 짧은 시일안에 통신 분야의 기반을 든든히 다져놓았다. 그러나 오늘의 급전하는 정보혁명의 시대에는 이 같은 기간통신 중심만으로는 역부족일 뿐만 아니라 외히려 정보통신사업으로의 개혁과 변신을 저해하는 장애가 되기도 한다. 다행히 정보통신시대의 새로운 전개를 너무 늦지 않게 간파한 정부와 통신업계가 이제 본격적인 정보화사회의 건설에 앞장서고 있어 이 분야의 새로운 지평을 열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중앙일보는 사설에서 “선정방법과 기준 등에 대해 문제가 있다”며 “선정의 의미도 엄밀하게 재평가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무엇보다 문제가 되는 부분이 왜 정부가 사업자 선정에 직접 개입해야 하는 가에 대한 의문이다. 이번 선정방법은 정부가 아무리 그럴듯한 기준을 제시해도 당초부터 문제의 소지를 안고 있었다. 몇가지 지표에 객관적인 점수를 매기는 것 자체가 한계가 있을 뿐만 아니라 주관성이 개입되는 기준은 모호할 수밖에 없다. 더구나 기준이 몇 차례 바뀌고 처음부터 특정업체로 내정해 놓고 ’짜고 치는 고스툼‘이란 소문이 무성했다. 특히 장비제조업체부문인 앨지텔레콤은 (주)데이콤에 대한 경영지배 구조의 의혹이 없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신청됐다는 점에서 두고 두고 말썽의 소지를 안고 있다. 이 부문은 정부가 주장하는 경제력 집중이나 기업의 도덕성 같은 기준이 얼마나 내용없는 개념인가를 보여 주는 대목이다.“
야3당과 언론의 신규통신 사업자 선정과정에 대한 의혹 제기는 정통부를 향해 비리(非理)의 그물을 던진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하지만 사업자 선정작업 실무진들은 이런 언론의 반응에 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실무자인 이규태과장( 정통부 감사관. 서울체신청장 역임, 현 한국IT비즈니스진흥협회 부회장)의 말.
“언론의 이런 논조에 별로 관심을 갖지 않았어요. 장.차관 등 윗분들이야 언론반응을 주목했겠지요. 하지만 실무자들은 심시기준에 따라 작업을 해서 별 신경을 쓰지 않았습니다. 후속작업을 하느라 신경 쓸 겨를이 없었어요.”
정통부 고위관계자 A씨의 말.
“정말 아이러니했어요. 1995년 12월 조선일보 사설로 인해 정통부가 큰 곤혼을 치뤘습니다. 장관이 경질되는 원인을 조선일보 사설이 제공했고 이를 본 김영삼대통령이 ‘통신사업자를 또뽑기로 결정한다는 게 말이 되는 기가’라며 대노했어요. 당시 중앙일보는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어요. ”
정통부가 1995년 12월 15일 신규통신사업자 허가신청요령을 발표하자 조선일보는 12월18일 사설을 통해 추첨제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사설 제목도 ‘통신사업자 또 뽑기’로 자극적이었다.
월요일 아침 상큼한 기분으로 출근한 한이헌 경제수석(15대국회의원. 기술신용보금기금 이사장 역임. 현 한국디지털미디어고교장 )은 김 대통령의 호출을 받고 불려가 야단을 맞았다.
그 여파로 경상현 정통부 장관이 12월20일 단행한 개각에서 경질됐다. 각계의 의견을 수렴해 고심 끝에 결정한 1차 서류심사, 2차 출연금비교, 3차 추첨방식은 이 장관 취임 후 채점제로 바뀌었다.
한 경제수석의 증언.
“경제수석을 거치지 않고 경제문제에 관해 김대통령에게 ‘문제가 있다’고 말할 사람은 당시 현철씨 밖에 없었어요. ”
조선일보는 사설로 문제를 제기해 정부의 추첨제를 채점제로 변경시켰다. 사업자 선정이 끝나자 이번에는 중앙일보가 채점제에 대한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두 신문이 취한 정반대의 사설 논조에 대한 손석춘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장(한겨례논설위원 역임)의 분석.
“사설의 배경에는 신문사의 사익(私益)이 가로놓여 있다. 신문사의 기업적 이해관계가 걸려 있을 때 사설은 심각하게 왜곡된다. LG.텔레콤에는 조선일보가 컨소시엄을 구성해 참여했다. 에버넷은 삼성과 현대의 컨소시엄이다. 삼성은 중앙일보를 지배하고 있었다. 중앙일보가 에버넷 탈락에 분통을 터뜨리고 조선일보가 LG텔레콤 선정을 환영한 이유를 독자들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신문읽기’의 혁명 중에서)
기간통신사업자 B씨의 증언.
“ PCS통신제조업군에서 LG텔레콤과의 경쟁하던 에버넷이 탈락한 것에 중앙일보가 채점방식을 이유로 문제를 제기한 것입니다.”
정치권과 일부 언론, 탈락업체가 제기한 선정의혹의 그림자는 바람을 타고 불길처럼 7월 국회로 번져 나갔다. 불길한 조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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