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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장 목날린 '돈봉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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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성 2012. 2. 10.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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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봉투가 입법부 수장인 국회의장을 사퇴시겼다.

 

박희태 국회의장(사진)은 9일 2008년 한나라당 전당대회 돈봉투 사건과 관련해 의장직을 사퇴했다.
 

박 의장은 한종태 국회 대변인을 통해 발표한 사퇴문에서 "국민 여러분, 죄송합니다. 저와 관련된 문제에 대해 저는 큰 책임을 느끼며 의장직을 그만두고자 합니다. 제가 모든 것을 짊어지고 가겠습니다. 관련된 사람이 있다면 모두 저의 책임으로 돌려주셨으면 합니다"라고 했다.

 

지난 1월 4일 고승덕 의원이 "2008년 전대 때 박 의장 측으로부터 300만원을 전달받았다가 돌려줬다"고 폭로한 지 36일 만에 사퇴한 것이다.

 

그는 불명예 퇴진하면서 또 다른 기록을 남겼다. 비리사건에 연루된 사퇴한 현직 의장이라는 역사에 남을 기록이다.국회의장이란 자리는 엄중하다. 국가 의전서열 2위. 관용차 1002번. 더욱이 법을 만드는 입법부 수장이 돈봉투로 사퇴하다니. 이건 입법부의 치욕이다.

 

박 의장의 처신도 문제다. 자신의 사퇴를 대변인을 통해 발표했다. 내용도 진정성이 별로 없다.
그는 검사장 출신이다. 법무장관도 지냈다. 그랬던 그가 돈봉투비리를 몰랐다고 오리발을 내밀었다. 법을 너무 잘 알아서일까. 아랫사람에게 거짓짓술을 하도록 지시했다는 의혹도 사고 있다. 적당히 시간을 끌다가 임기를 채울 심산이었다.  

 

그는 과거 민정당 시절, 명대변인 소리를 들었다. 4년3개월간 대변인을 하면서 그가 남긴 명언은 아직도 정치판에 돈다 ‘남이 하면 불륜, 자기가 하면 로맨스’'정치 9단', '총체적 난국' 등의 조어다.

 

그의 권력의지는 대단했다. 정권이 바뀌었지만 그때마다 그는 살아 남아 독야청청했다. 5공부터 20년간 정치를 했다. 그는 이명박 정권의 6인회의 멤버로 정권탄생의 공신이었다. 하지만 이대통령의 실세들에게 밀려 국회의원 공천에서 탈락하는 수모를 겪었다. 그러다가 다시 당대표로 부활했고 이어 국회수장의 자리에 올랐다.

 

지뢰는 흘러간 당대표 선거에서 터졌다. 고승덕 새누리당 의원의 증언이 화약고였다. 고 의원의 증언에 그는 ‘모르는 일’이라며모르쇠로 일관했다. 해외에도 나갔다. 그는 버티기로 임기를 채울 심산이었다. 1차로 차기 불출마였다.

 

법무장관을 지낸 그도 검찰의 속성을 간과했다. 검찰은 지는 권력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조직에 충성할 뿐이다. 검찰은 그의 사무실과 전.현직 비서를 소환해 샅샅히 털었다. 견디다 못한 비서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입법부 수장의 치욕이었다.

 

정권 탄생의 주역, 그의 사퇴는 권력의 무상함을 절감하게 한다. 이정권 들어 원로그룹은 줄줄이 돈봉투에 침몰했다.  이 대통령의 친형으로 ‘만사형통’‘상왕’‘영일대군’으로 불렸던 이상득 의원을 비롯해 '방통대군'이었던 최시중 전 방통위원장, 그리고 입법부 수장이었던 박의장까지 돈봉투로 몰락했다.   

 

 

그는 입법부 수장으로서 법질서 확립을 의사당에서 강조했지만 자신은 열외로 했다. 그 결과는 치욕이며 몰락이다. 그는 이제부터 법의 저울에 올라서야 할 것이다. 노무현 전대통령조차 검찰이 불러 대질심문까지 했고 결국 노전대통령은 자살이란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권력의 반열에 서 있던 박희장도 추한 몰골로 역사에 기록되게 됐다. 왜 우리 정치판은 원칙에 투철한 원로로서 아름답게 물러나는 사람을 보기 어려운가. 언젠가는 인생의 계급장을 떼고 무위로 돌아가야 하는데도 왜 추하게 살다 욕을 먹어야 막판에 정신을 차리는가.  무엇보다 자신에게 엄격하지 못해서다. 누구건 초심을 잃으면 파멸이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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