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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덕의 정보통신부<171>

[특별기획] 대통령과 정보통신부

by 문성 2012. 2. 14.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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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10월 14일.
 
청와대 정책기획수석실은 회의가 끝난 뒤 회의내용이 담긴 플로피디스크를 복사, 참석자들에게 나눠주었다. 회의 내용은 정보EXPO추진위가 개설한 '정보EXPO96센트럴파크'라는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이날 하오부터 중계돼 일반인들도 인터넷에 접속 그 내용을 알 수 있었다. 당시로서는 모든 것이 파격, 그 자체였다.

김 대통령은 회의가 끝난 후 강봉균 장관에게 격려의 말을 건냈다.

강봉균 장관의 기억.

“대통령께서 ‘강 장관, 수고 많이 했어요. 고맙고...’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대단히 만족해 하셨습니다.”

이날 보고회의는 청와대정책기획수석실에서 기획, 연출했고 정보통신부가 파트너가 돼 준비를했다.

당시 청와대 정책기획수석비서관이었던 이각범 KAIST교수(사진. 국가정보화전략위원회 위원장 역임. 현 한국미래연구원장)의 회고.

“김 대통령의 국가정보화에 대한 의지는 확고했습니다. 이 영상 보고회의는 1996년 3월부터 준비를 했어요. 김 대통령은 그해 3월 4일 제1차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 등에 참석하고 귀국하면서 공항에서 ‘세계가 무서운 속도로 변화를 거듭하고 있는 만큼 국정의 모든 분야에서 세계화와 정보화를 더욱 힘차게 추진해 국력을 키워나가는 것만이 우리의 살길’이라고 강조하셨습니다.”

김대통령은 세계화와 정보화를 국가발전 2대 전략목표로 제시한 후 “세계화 정책의 핵심은 국가사회정보화에 있다”며 국가정보화사업에 역점을 두었다.

정책기획수석실은 이에 따라 그동안 정보화추진체계 확립과 국가정보화 개념 정립 등 정보화를 국가전략의 핵심과제로 추진했다. 특히 정보화는 모든 영역과 연계해 추진해야 하는데 각 부처가 각개 약진식으로 정보화를 추진하면 부처 정보화에 그칠 수 있었다.

이각범 기획수석은 그런 연장선상에서 김대통령에게 “종이문화에 익숙한 풍토에서 사회지도층이 디지털문화를 솔선수범해야 한다”면서 “당시로선 파격적인 종이 없는 영상회의를 대통령이 주재할 것”을 건의했다.

김 대통령은 이에 대해 “문서를 컴퓨터가 대체한다는 말인데 그렇다면 청와대가 앞장서서 그런 회의를 하면 일선 행정기관들도 서류를 없앨 것”이라며“ 회의 참석자들은 종이 한장도 가지고 오지 말도록 하라”고 지시했다.

이에 따라 보고 회의는 이각범 기획수석 주도로 박봉수 정책기획비서관(기술보증기금이사장. 안진회계법인 부회장역임)과 차양신 행정관(방통위 이용자보호국장 역임. 현 한국전파진흥협회 부회장), 그리고 정보통신부 안병엽 정보화기획실장(정통부장관. 국회의원. 피닉스자산운용 회장 역임), 노준형 기획총괄과장(정통부 장관. 서울과학기술대총장 역임) 등의 긴밀한 협조아래 준비했다.

당시 정통부 과장이었던 노준형 전 장관의 말.

“오래전 일이긴 하나 안건 자료는 정통부에서 준비했습니다. 회의 시나리오나 진행방식은 정책기획수석실에서 총괄했습니다. ”

그래서 이날 회의보도 자료도 청와대 기자실에 배부했다.

이각범 기획수석은 회의를 앞두고 준비에 만전을 기했다.

당시 청와대 행정관이었던 차양신 부회장의 기억.

“컴퓨터 사용이 능숙지 못한 김 대통령을 위해 사전에 집무실에서 실전과 같은 연습을 했습니다. 컴퓨터를 집무실로 가져가서 리허설을 한 것이죠. 김대통령이 혹시 데스크탑 컴퓨터의 마우스를 잘못 클릭할 경우 파워포인트의 내용이 반대로 나타날 수 있었습니다. 회의장 준비에는 한국전산원(현 한국정보화진흥원)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김 대통령은 이런 연습과정을 거쳐 당일 회의를 매끄럽게 주재했다.

이각범 기획수석의 증언.

“이날 청와대에 모인 인사들은 국내 각 분야의 리더들이었습니다. 전 각료와 시도지사, 정당인사, 경제계 등의 대표들이 참석했습니다. 이런 날 혹시 회의장에서 무슨 일이라도 발생하면 그야말로 국가적인 재앙이라는 생각이 다 들었어요”

1시간여의 회의가 끝나자 김 대통령은 결과에 몹시 만족해 했다.

이각범 당시 기획수석의 기억.

“김대통령이 회의가 끝난 후 밝은 표정으로 저한테 ‘역사에 기록될 회의인데...’라며 말끝을 흐리셨어요. 저는 나름대로 대통령의 당시 심정을 이렇게 이해했습니다. ‘이렇게 중요한 정보화의 필요성을 사람들이 얼마나 알까’하는 여운이 담겨 있다고 봅니다. ”

이각범 기획수석은 재임시 정보화촉진기본법과 정통부 정보화기획실설치, 벤처처산업육성지원 육성법 제정 등에 드라이를 걸었다. 그는 1996년에는 전자정부에 역점을 뒀고 이듬해인 1997년에는 벤처육성을 중점 추진했다.

이각범 수석의 계속된 증언.

“ 당시 국가발전전략 프레임을 바꿔야 한다는 생각에 각부처 실.국장들로 CIO(정보화책임관)회의를 구성했어요. 대통령이 총체적 국가경영에 대한 정보화를 진두지휘하면 경제사회 전반에 걸친 효율을 높이고 사회전체의 정보화를 가속화할 것이라고 판단했습니다. 매년 2회에 걸쳐 대통령 주재의 정보화추진보고 회의를 열기로 하고 그 후 계속했습니다.”

이날 서류없는 회의에는 IT업계를 대표해 한국통신 이준사장(국방부장관 역임)과 서정욱 한국이동통신사장(과기부 장관 역임),이봉훈 서울이동통신사장(현 노바트로닉스 대표), 김을재 중소정보통신기업협의회장(현 금양통신 회장) 등이 20여명이 참석했다.

이날 영상회의는 전자정부 구현을 위한 새로운 출발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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