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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덕의 정보통신부<228>-TDX개발

[특별기획] 대통령과 정보통신부

by 문성 2012. 11. 15.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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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년 전 지금은 상상조차 하기 어려울 정도로 전화난을 겪던 시절 이야기다.

 

 

이런 국내 전화적체를 일거에 해소한 게 전전자교환기(TDX) 개발이다. 한국ICT사(史)에 이정표로 기록할 쾌거였다. 세계 10번째 개발이었다.

 

하지만 전전자교환기술 개발까지는 곡절이 많았다. 시작에서 개발까지 강산이 변한다는 10년이 걸렸다. 박정희 정부에서 시작해 전두환 정부에서 개발을 완료했다. 김영삼 정부들어 전전자교환기 1000만회선을 돌파해 1가구 2전화시대를 여는데까지 또 11년이 소요됐다.

 

박 대통령은 체신부 순시에 앞서 1월 14일 10시부터 2시간40분간 가진 연두기자회s에서 도 “농어촌 전화사업을 적극 추진해 전화 보급률을 크게 높이겠다”고 밝혔다.

 

그해 8월 22일.

체신부는 전자교환기 국산개발을 위해 1976년 1월에 전자교환기연구소를 설립하겠다고 밝혔다. 체신부는 이를 위해 전자교환기연구소법안을 마련해 그해 정기국회에 제출하겠다고 말했다.

당시 전화 사업은 체신부가 주무 부서가 아니었다. 경제기획원과 상공부가 주역이고 체신부는 전화설치 업무만 전담하고 있었다. 그 무렵 정부 고민은 전화적체를 해소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업계와 부처 입장이 엇갈려 전자교환방식을 기존의 기계식에서 전자식으로 바꾸는 일은 진전이 없었다.

 

정부에서 이 일에 가장 적극성을 보인 사람은 김재익 경제기획원 기획국장(사진. 대통령 경제수석 역임. 작고)이었다. 그는 전자식 교환기 도입만이 전화적체를 해소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당시로서는 개혁적 발상이었다.

 

1975년 10월경 김재익 국장은 과기부에서 열린 회의석상에서 경상현 한국원자력연구소 에너지시스템연구실장(정보통신부 장관 역임. 현 KAIST 겸직교수)를 만났다. 경 박사는 정부 과학기술자 유치계획의 일환으로 귀국한 과학자였다.

 

회의가 끝난 후 김 국장이 경 박사에게 미국에서 담당했던 업무를 물었다.

경 박사가“ 미국에서는 아날로그 전자교환기가 나오는데 구식인 기계식 교환기를 계속 설치하는 것이 좋은지, 운영비와 장비구입비 등 수요측정에 대비해 경제성을 판단하는 업무를 맡았다”고 말했다.

 

김 국장이 반색을 하며 “시간을 내 달라”고 부탁해 김 국장과 함께 경제기획원으로 올라갔다. 그 곳에서 남덕우 부총리(국무총리, 한국무역협회 회장 역임)를 만났다.

 

남 부총리는 "반갑다"며 악수를 청하더니 갑자기 질문을 던졌다.

"우리도 외국에서 기술을 도입해 교환기를 바꾸려고 합니다. 그런데 의견이 첨예하게 엇갈리고 있습니다. 한 쪽은 아날로그 전자교환기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다른 한 쪽은 기계식교환기를 그대로 사용해야 한다는 겁니다. 경 박사는 이 문제를 어떻게 생각합니까"

이에 경 박사는 "인구가 증가하는 지역은 기계식을 아날로그 전자교환기로 교체하는 것이 대세"라고 대답했다.

 

이 후 김 국장과 경 박사는 일주일에 1-2번씩 두 달 여를 계속 만났다.

경상현 전 장관의 회고.

“김 국장과 저는 아날로그전자교환기 도입이 전화적체를 해소할 수 있고 다가오는 정보화 사회의 기반이 된다는데 점에 의견이 같았습니다. 당시 아날로그 전자교환기술을 곧바로 도입하느냐, 또는 다지털 전자교환 기술을 국내기술진이 개발할 때까지 기계식 교환기를 계속 사용하느냐를 놓고 찬반 공방이 치열했습니다. ”

 

경 박사는 아날로그 전자교환 기술 도입의 타당성을 객관적으로 입증할 수 있는 방안을 만들어 김 국장에거 넘겨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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