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필귀정인가. 우려가 현실이 됐다.
첫 조첫 조각의 열쇠를 쥔 김용준 국무총리 후보자(사진)가 29일 사상 최초로 자진사퇴했다. 이유는 그와 관련한 각종 의혹 제기 때문이다. 김 후보자는 처음부터 총리직을 고사하는 게 옳았다. 그 나이에 무슨 영화를 보겠다고 후보직을 수락해 화를 자초하는가. 5일 만에 물러나는 그의 뒷모습은 안타깝고 궁색하다. 새삼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속은 모른다’는 옛말이 실감난다.
김 후보자는 이날 오후 7시 윤창중 인수위 대변인을 통해 "저의 부덕의 소치로 국민여러분께 걱정을 끼쳐드리고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에게도 누를 끼쳐드려 국무총리 후보자직을 사퇴하기로 결심했다"고 자진사퇴 의사를 밝혔다.
정치적 수사지만 이게 부덕(不德)의 소치(所致)인가. 덕이 없어서 발생한 게 아니라 그가 걸어온 흔적에 어두운 그림자가 있기 때문이다. 인과 응보다. 그는 억울한 점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원칙의 법관이라고 믿었던 그의 겉과 속이 다른 삶을 본 서민들이 느낀 배신감이 더 크다.
그를 지명한 박 당선인도 기가 막힐 것이다. 정치적 부담도 감수해야 한다.
1차 잘못은 박 당선인에 있다. 철저한 사전 검증을 소흘히 한 책임을 면할 수 없다. 최측근이 잘못해도 박 당선인 책임이다. '깜깜이 인사' '나홀로 인사' '철통보안 인사' '불통인사'란 비난을 받아도 할 말이 없다. 당장 새 정부 출범 조각 작업에 차질이 불가피하다. 박 당선인의 정치력이나 사람보는 안목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많다.
김 후보자가 처음 총리 후보자로 지명될 때마 해도 ‘품위와 도덕성 면에선 무난한 인사’라는 평을 받았다. 박 당선인의 말처럼 “나라와 법치와 원칙을 바로 세우고 사회적 약자를 보호할 적임자”인 것으로 생각했다. 그가 장애를 극복하고 헌재소장까지 지낸 것은 장애인들에게 희망의 등불이었다.
그런데 웬걸. 사람은 겪어 보지 않고 정확하게 평가할 수 없다. 당장 두 아들의 병역 면제의혹과 부동산 의혹이 불거졌다. 김 후보자와 배우자의 부동산 투기의혹도 언론이 제기했다. 한 두곳이 아니었다. 전국에서 그런 의혹이 제기됐다. 변호사인 사위는 먹튀 외국기업의 변호를 맡았다. 사실이 아니라면 그는 명쾌하게 해명하면 될 일이었다. 그는 어느것 하나 명쾌하게 해명하지 못했다.
김 후보자가 자진사퇴를 결심한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하지만 아쉬운 대목이 있다. 김 후보자는 1월 24일 총리 후보자 지명 발표 며칠 전 박 당선인으로부터 총리직 제의를 받았다. 그는 대법관과 헌재소장을 역임했지만 청문회 경험이 없다. 그가 두 아들의 병역면제와 재산문제 등에 당당할 수 없다면 고사 했어야 했다. 김황식 국무총리는 이명박 대통령의 총리 제의를 받고 ‘자신의 군 면제’ 사실 때문에 한때 고사했다고 한다. 그 정도는 돼야 한다.
그는 대통령직 인수위원장직도 사퇴해야 한다. 총리 후보자도 사퇴한 마당에 무슨 미련이 있다고 여운을 남기는가. "박 당선인 뜻에 따르겠다"고 할게 아니다. 인수위는 진영 부위원장이 업무를 대행하면 된다.
그는 사퇴의시를 밝히면서 언론에 대해 “국민의 알권리를 충족 시키기 위한 보도라도 상대방의 인격을 최소한이라도 존중하면서 확실한 근거가 있는 기사로 비판하는 풍토가 조성돼 인사 청문회가 원래 취지대로 운영되기를 소망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망각했다. 언론은 권력을 감시 하는 일이 기본 임무다. 그가 국무총리 후보자로서 적임자인지를 검증하는 것은 언론의 고유 책무다. 억울한 점도 있겠지만 언론을 탓하기 전에 자신의 행적을 뒤돌아봐야 한다. 살기 힘든 지난 시절, 그는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법관이자 재력가였다. 국가의 법과 질서를 세우는데 전념해야 할 그가 전국 곳곳에 부동산 투기를 했다는 의혹이 있다면 누구의 잘못인가. 의혹을 보도한 언론 잘못인가.
박 당선인은 이번 사태를 교훈삼아 인사시스템을 개선해 고위 공직자 인선에 더 엄격해야 한다. 앞으로 고위공직을 맡고 싶다면 산림거사(山林居士)처럼 살아야 한다. 청렴결백하지 않고 도덕적으로 흠결있는 사람은 고위 공직에 갈 생각을 해서는 안된다. 고위 공직자는 국민의 신망과 존경받는 인사라야 한다. 뒷구멍으로 호박씨 까다가 권력자 앞에서 눈도장 찍어 한자리 차지하려는 비도덕적인 인사들은 철저히 배제해야 한다. 군미필자나 투기의혹, 비도덕적인 인물은 철저하기 배제해야 한다. 박 당선인이 강조하는 법과 질서가 바로 서는 국가를 만들기 위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