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에 가정법은 없다.
가정이란 게 부질없는 짓이다.마치 원님 떠난 뒤에 나팔부는 격이다. 그래도 얻는 게 있다. 바로 우리한테 교훈을 준다는 점이다.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의 경우를 보자. 대쪽 총리로 신망높던 그가 15대 대선에서 아들 병역기피 의혹만 제기되지 않았다면 그는 김대중 새정치국민회의 후보를 누르고 대통령이 됐을 것이다. 그가 이인제 국민신당 후보와 수단방법을 가지지 않고 단일화를 했더라도 대선에서 확실히 승리했을 것이다. 그와 김대중 당선자와 표차는 39만여표였다.
이회창 씨는 2002년 제16대 대선에서 다시 도전했다. 당시 누구도 이 후보 대세론을 의심하지 않았다.측근들도 그가 대통령이 다 된 듯 처신했다. 그런 그에게 국정원 도청 문건 폭로와 색깔론이라는 지뢰가 터졌다.결국 노무현 후보화 57만여표 차이로 패했다. 변화와 개혁을 바라는 국민의 여망을 수용하지 않고 현실에 안주한게 결정적 패인이었다. 만약 이 후보가 개혁에 앞장섰다면 그는 대권을 거머쥐었을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지명한 김용준 총리 후보자(사진).
1인 지하 만인 지상이라는 국무총리 후보가 됐다. 노년에 인생 황금기를 누릴지도 모른다. 좋은 일 뒤에는 궂은 일이 기다리고 있다. 그의 앞에 영광만 있는 게 아니다. 그의 앞에는 해명해야 할 의혹이 많다. 공직자가 건너야 지뢰밭이다. 김 후보자는 자칫하면 그동안 쌓아온 자신의 명예도 먹칠하고 새롭게 출범하는 박근혜 정부의 앞길에 재를 뿌릴 수 있다. 그게 인사 청문회다.
재력가인 그와 관련해 최근까지 제기된 의혹은 크게 3가지다.
하지만 앞으로 그에 대한 의혹제기는 더 늘어날 확률이 높다. 현재 드러난 의혹은 고위층들의 특허인 돈과 병역면제 의혹이다. 헌재소장 출신인 그도 이 범주를 벗어나지 못했다. 변호사 사위의 처신도 여론의 도마위에 올랐다.
첫째, 김 총리 후보자의 둘째 사위인 김범수 변호사와 관련한 일이다.
김 변호사가 '먹튀' 논란의 당사자인 론스타의 변호를 맡았다. 지금 한국 정부를 상대로 소송중이라는 점이다. 김 변호사는 법무법인 세종 소속이다. 김 총리 후보자가 사위의 일에까지 책임을 져야 하느냐는 이론이 있다. 이 문제는 국민 정서상 휘발성이 강하다.
하지만 김 후보자가 국무총리 후보자는 점이다. 그가 청문회를 통과한다면 장인은 한국 국무총리인데 그 사위는 한국정부와 투자자·국가소송(ISD)을 진행중인 론스타 측의 변호를 맡는 것이다. 김 변호사는 판사 출신으로 2004년엔 한국 변소사로는 최초로 세계무역기구(WTO) 분쟁사건을 맡아 한국 정부의 승소를 이끈 적도 있는 중재 분야 전문가라고 한다. 먹퇴 해외기업을 국무총리 사위가 변호한다?. 국민 감정이 이를 좋게 볼리 없다. 국무총리로서 김 후보자의 체면도 말이 아니다. 김 변호사가 론스타 변호인을 사퇴하는 방안도 있다.
둘째, 두 아들의 병역면제다.
병역문제는 한국 남자들에게 가장 민감한 문제다. 부모 잘만나 부정하게 면제 받았다면 그 누구라도 이를 용납하지 못한다. 김 후보자의 두 아들이 정당한 사유로 면제받았다면 걱정할 게 없다. 병무청에 따르면 큰아들은 신장과 체중 미달로, 둘째 아들은 94년 통풍(관절 질병)으로 군 면제에 해당하는 제2국민역(5급) 판정을 받았다. 당시 병역면제 기준은 신장 1m54㎝, 체중은 41㎏인 것으로 기록돼 있다. 그런데 언론은 큰 아들의 신장이 1m69라고 보도했다. 당장 의문이 제기된다.이회창 씨가 대선에서 패한 결정적인 게 바로 아들 병역기피 의혹이었다. 이 후보는 "법적으로 문제 없다”고 법리로 대응했지만 국민은 "법 좋아하네"라며 외면했다. 만에 하나 큰 아들과 둘째 아들의 병역면제 사유가 명확하지 않다면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될 수 밖에 없다.
셋째, 두 아들 재산문제다.
재산 많은 걸 탓하는 게 아니다. 두 아들은 각각 8, 6세 때 서울 서초동 땅을 매입한 것으로 나타났다. 당시 김 후보자는 서울민사지법 부장판사였다. 대지면적 674㎡(약 204평)에 이르는 이 부동산의 현재 시가는 60억원을 호가한다. 김 후보자의 본가나 처가가 재력가여서 김 후보자 어머니가 손자에게 편법증여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일고 있다. 정당한 절차를 거쳐 세금을 납부했느냐가 핵심이다. 일부 언론은 그가 판사시절 부동산 투기에 관여했다고 보도했다. 이도 우려되는 점이다.
김 후보자는 이런 의혹에 대해 명쾌하게 해명해야 한다. 김 후보자는 박 당선인으로부터 발표 일주인전 쯤 내정을 통보받았다고 한다. 그렇다면 자신이 국회 인사 청문회 통과 여부를 스스로 점검했고 자신이 있기에 지명을 수락했을 것이다. 문제가 된다고 판단했으면 고사했을 것 아닌가.
김 후보자에 대한 의혹 제기는 갈수록 더 늘어날 것이다. 야당은 모두 정보라인을 총동원해 김 후보자에 자료를 취합할 것이다. 언론도 각자 취재망을 통해 그와 관련한 의혹을 보도할 것이다. 그 어떤 의혹제기라도 그는 밝힐 수 있어야 한다. 그게 아니라면 사태는 심각해 질 수 있다.
김 후보자가 인수위원장 직무를 수행하면서 한 언행은 흡족하지 않았다. 귀가 어둡다는 이유로 또는 자신이 언급할 일이 아니라는 이유로 기자들의 질문을 회피했다. 간혹 기자들에게 반말도 했다. 국민 입장에서는 다소 미흡했다. 하지만 박근혜 당선인의 업무 스타일을 감안해 이해하고 넘어갔다.
청문회는 적당히 넘어갈 사안이 아니고, 그럴 수도 없다. 김 후보자가 제기된 의혹에 관해 적극 해명해야 한다. 두 아들 병역과 재산, 사위, 아니면 자신과 관련한 온갖 일도 국민이 궁금해 하는 일은 한 점 의혹없이 밝혀야 한다. 그것은 총리 후보자로서 책무다. 남의 일인양 무성의하게 "나는 몰라. 왜 그걸 물어"라는 식으로 넘길 일이 아니다. 그가 무결점 총리라야 정부 출범후 '책임총리' 또는 '통합형 총리'로서 내각을 강력하게 통솔할 수 있다.
김 후보자가 의혹을 명쾌하게 해명하지 못하면 박근혜 정부는 출범전에 국정운영에 타격을 받게 된다. 당장 이명박 정부 출범처럼 인사문제가 불거질 것이다. 김 후보자는 청문회를 통과할 자신이 없다면 스스로 사퇴하는 게 바람직하다. 김 후보자 인선은 박근혜 정부의 인사 시금석이다. 김 후보자는 지금 일생 최대의 현미경 검증대 위에 서 있다. 그는 결단해야 한다. 청문회를 당당히 통과할 수 있을지, 아니라면?. 그는 미적거리지 말고 거취를 결정해야 한다. 더 늦기 전에 물러나야 옳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