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 편익을 위한 일인데 당연히 전자교환기를 개발해야지요. 대신 조건이 있습니다. 전자교환기개발단장으로 한국전자통신(주)에 있는 양승택 박사를 불러 주십시오.”
1981년 8월 어느 날.
최순달 한국전기통신연구소장(사진. 체신부장관 역임)은 오명 체신부 차관(체신부 장관,건설교통부장관. 과기 부총리 역임. 현 웅진에너지 폴리실리콘 회장. KAIST 이사장)에게 양 박사를 불러 달라고 요청했다.
오 차관의 대답은 군말이 없었다.
“그렇게 하지요.”
오 차관의 증언.
“나는 사람을 뽑을 때 직접 데리고 일할 상사의 의견을 가장 중요시한다. 직접 데리고 일할 사람이 점찍은 이야말로 가장 확실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양 박사를 데려 오는 일이 쉽지 않았다. 삼성쪽에 그를 보내달라고 하니 펄쩍 뛰는 것이었다. ‘왜 하필 그사람입니까. 우리도 꼭 필요한 사람이라서 어렵게 데려왔습니다. 보낼 수가 없습니다.’”(자서전 ‘30후의 코리아를 꿈꿔라’중에서“
오 차관은 선배인 이춘화 삼성반도체통신 사장에게 도움을 청했다.
“전자교환기 개발사업은 정부 수립이래 국가의 가장 중요한 프로젝트입니다. 그가 국가를 위해 봉사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십시오. 어차피 삼성도 공동 개발을 하게 되니 삼성에 있는 분이 단장을 맡으면 삼성에도 유리할 것입니다.|”
이춘화 사장은 1948년 육사를 졸업하고 육본 통신감과 합참 통신전자국장을 지낸 예비역 소장 출신이었다.
양승택 박사(ETRI 원장. ICU 총장. 정보통신부 장관. 동명대 총장. 현 IST컨소시엄 대표)는 최 소장의 서울공대 7년 후배였다.
양 박사는 서울공대를 졸업하고 해군 중위로 예편한 후 미국 유학길에 올라 미 브루클린공과대학원에서 전기공학 박사학위를 받고 미국 벨연구소에서 11년간 근무했다. 1979년 2월 귀국해 한국전자통신주식회사 기술담당 상무로 일하고 있었다.
양승택 전 장관의 회고.
“ 최 박사가 1981년 1월 한국전기통신연구소장에 임명되고 나서는 자주 만났다. 어느 날 기차속에서 만나 ‘연구소에서 일하고 싶다’고 말했더니 ‘대우가 좋은 회사 상무직을 버리고 연구소로 오겠느냐’고 하셨다. 나는 ‘젊은 데 월급 더 받는 것에 만족해서 되겠느냐’고 말씀드렸다. 그해 9월 최 소장을 만났더니 ‘나를 교환기개발단장으로 정부에 추천해 놓았으니 준비하라’고 말씀하셨다. 얼마 후 오명 체신부 차관을 면담하게 됐다. 오 차관은 ‘교환기개발은 국가의 중요 연구과제이니 연구소 개발책임을 맡아 달라’고 했다. ”
양 박사는 며칠 후 삼성그룹 이건희 부회장(현 그룹 회장)의 호출을 받았다.
이 부회장이 양 박사에게 말했다.
“정부에서 양 박사가 필요하다니 보내 드립니다. 장기 출장이라고 생각하고 가서 일을 끝내면 돌아와 주세요.”
그해 10월 양 박사는 한국전기통신연구소 출근해 최 소장으로부터 시분할 교환기개발사업단장 임명장을 받았다. 당시 개발단장은 부소장인 경상현 선임연구부장(체신부 차관. 정보통신부 장관 역임. 현 KAIST 겸직교수)이 겸직하고 있었다. 경 부소장은 1982년 1월 18일 한국전기통신공사 부사장으로 발령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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