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재원 미국 항공우주국(NASA) 국장(사진. 전자신문)은 자랑스러운 한국인이다.
그는 NASA 항공 부문 행정최고책임자다. 한국계 미국인 가운데 최고위직 임원으로, 우주항공 기술 분야의 최고 권위자이기도 하다.
한국에 온 신 국장을 지난달 24일 오전 11시 서울 용산구 LG 유플러스 1층 도서관에서 만났다.
신 국장은 이날 오전 8시부터 2시간 동안 LG 유플러스 팀장급 200여명을 대상으로 특강을 했다. 인터뷰는 그의 일정이 빠듯해서 특강이 끝나자 만나 진행했다.
신 국장은 연세대 기계공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롱비치)에서 석사 학위, 버지니아공대에서 박사 학위(유체역학 전공)를 각각 받았다.
그는 “4차 산업혁명은 새로운 것이 등장한 게 아니라 기존 기술이 융합해서 각 분야를 변화시키는 현상”이라면서 “정부는 기업과 연구기관, 대학이 협력하는 이노베이션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신 국장은 과학자이자 글로벌 리더답게 질문에 막힘이 없었다. 핵심 현안을 정확히 짚었다. 대안도 제시했다. 그는 최근 '이노베이션 코리아 어떻게 이룰 것인가?'라는 저서를 펴냈다. NASA에서 28년 동안 일하며 축적한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이 21세기 이노베이션 강국으로 가는 길을 제시한 책이다.
-4차 산업혁명이란 물결이 거세다. 한국은 잘 대응하고 있다고 보는가.
▲나라 밖에서 보는 입장에서 정보가 부족해 말하는 게 조심스럽다. 개인이나 국가나 대체로 어떤 성공 사례가 있다면 벤치마킹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걸 미국에서는 구급차 뒤쫓기(ambulance chasers)라고 한다. 정부가 사전에 철저한 준비 없이 남을 따라가는 식으로 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싱가포르에 가서 느낀 게 많다. 싱가포르는 도시국가다. 부존자원이 부족한 나라다. 싱가포르는 특이하게 기업에서 하듯 국가 차원에서 장기 국가발전 전략을 수립한다. 국무총리실 산하에 미래전략센터를 두고 그곳에서 정치와 경제 같은 분야별 세계 동향을 분석해서 다양한 미래 시나리오를 준비해 놓고 어떤 상황이 발생하면 성공률이 가장 높은 시나리오를 선택, 대응한다. 4차 산업혁명은 21세기형 이노베이션이다. 4차 산업혁명은 새로운 것이 등장한 게 아니라 기존 기술이 융합해서 각 분야를 변화시키는 현상이다. 4차 산업혁명은 융·복합 지식과 통찰력을 바탕으로 사전에 철저히 준비를 해야 한다.
-어떻게 미래를 준비해야 하는가.
▲가장 중요한 게 국가 과제를 정하고, 기업과 연구기관·대학이 협력하는 이노베이션 생태계를 구축하는 일이다. 21세기는 첨단 기술이 국가 발전을 좌우한다. 기업과 연구기관, 대학이 국가가 정한 첨단 기술 개발에 역할을 분담해야 성과를 낼 수 있다. 우선 대학은 기초과학 연구와 인재 양성을 해야 한다. 정부와 연구기관은 대학이 연구한 기초과학을 더 발전시켜야 한다. 기업은 이 기술을 넘겨받아 상품화해야 한다. 미국은 이런 방식으로 기술을 발전시킨다. NASA가 이런 모델의 대표다. 마치 톱니바퀴 돌아가듯 많은 대학과 기업이 연계해서 첨단 기술을 개발한다. 정부는 장기 계획 아래 과제를 정해서 대학과 기업이 이를 잘 실행할 수 있는 협력 생태계를 만들어야 한다.
NASA는 워싱턴에 본부가 있다. 미국 안에 10개의 연구센터와 비행센터를 두고 있다. 1년 예산이 190억달러, 직원은 1만8000여명이다. 신 국장은 NASA 민간항공 연구 전체를 계획하고 관리한다. 항공 연구 방향을 설정하고 그에 따른 정책, 예산, 연구 관리, 성과 평가를 담당한다. 이를 위해 백악관과 미국 상·하원을 비롯한 항공사, 대학과 연구소, 다른 연방 정부기관, 해외 연구기관과 긴밀히 협조한다. 항공 전략 결정, 항공 비행 및 안전 등 항공학 관련 모든 연구가 신 국장의 책임이다. 백악관과 민간 항공업체에 가서 연구 예산을 직접 브리핑하는 것도 그의 몫이다.
-소통의 달인으로 불린다. 소통은 어떻게 하는가.
▲늘 상대방 입장에서 생각한다. 예를 들면 미국 사회가 남녀평등이라곤 하지만 사람마다 사정이 다 있다. 미국에서도 맞벌이 부부의 경우 일찍 퇴근하고 늦게 출근하는 걸 바란다. 나는 그런 사정을 다 듣는다. 그런 다음 상대 입장에서 생각하고 해법을 찾는다. 누구나 회사를 망치려고 출근하는 사람은 없다. 열심히 일해서 회사에 도움을 주겠다는 사람이 전부다. 그 사람의 사정은 일단 들어 봐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해법이 당장 없다면 다시 상의해서 방안을 찾는다. 그런 과정을 통해 상호 신뢰가 생긴다. 불신하면 진정한 소통은 불가능하다. 서로 신뢰하면 그다음부터 소통이 원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이노베이션을 위해 해야 할 일은.
▲21세기 화두는 이노베이션이다. 누구나 '왜'라는 질문을 지위와 무관하게 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 많은 조직에서 직원들이 말을 자유롭게 하지 못하는 분위기가 있는데 이런 조직에서는 이노베이션 아이디어가 나오지 않는다. 이노베이션은 열린 마음으로 서로 협력해야 가능하다. 나와 다른 의견을 낸 사람을 윽박지르면 안 된다. 연구기관일수록 다양한 의견을 내고 수용하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게 중요하다. 연구 결과는 누구도 알 수 없다. 연구라는 것은 남이 안 가는 길을 가는 것이다. 연구 결과를 안다면 그건 연구가 아니다. 예를 들어 2년 안에 연구 결과가 생각한 목표에 미달해도 새로운 지식이나 과정을 배웠다면 그건 실패가 아니다. 결과가 나빠도 과정을 통해 배운 게 있다면 그 실패는 자축해야 한다. 조직 문화라는 게 하루아침에 바뀌지 않지만 소통하고 협력하는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최고경영자(CEO)는 열린 리더십을 발휘해야 이노베이션을 할 수 있다.
-연구기관에서 안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연구기관에서 연구 결과가 기대에 못 미쳤다고 해서 연구 인력을 문책하거나 연구비를 삭감하는 일이다. 성과를 내지 못했다고 연구비를 줄이고 인사에서 불이익을 주면 그다음부터 누구도 새로운 일에 도전하지 않는다. 실패 부담이 없고 책임지지 않을 안전한 일만 골라서 한다. 그런 조직에서 세상을 놀라게 할 기술 개발은 불가능하다. 기술 문제가 아니라 관리를 잘못해서 실패하는 일도 절대 없어야 한다. 관리잘못은 완전한 실패다.
-유망 항공 분야는.
▲세계 항공 산업의 핫 이슈는 드론과 소형 비행기다. 드론과 소형 비행기는 초기비용이 적게 들어간다. 2~4인용 소형 비행기는 활주로 같은 게 필요 없다. 수직 이착륙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자가용처럼 도심에서 택시 대용으로 사용할 수 있다. 소형 드론을 시작으로 에어택시 같은 새로운 항공 시대가 열릴 것이다. 자율 주행 비행기도 등장할 것이다. 한국은 정보통신기술(ICT) 강국이다. 경쟁력이 충분하다. 현재 NASA 항공도 드론의 항법 시스템을 연구개발(R&D)하고 있다. 비행체는 5~6년 안에 나올 것으로 생각한다. 인증과 항법 법제 제정이 숙제다. 이미 여러 연구기관과 기업들이 소형 비행기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21세기 인재상은.
▲크게 다섯 가지를 말하고 싶다. 일을 할 때 창의성과 유연성이 있어야 한다. 다음은 기존 패러다임이나 통념에 '왜'라는 질문을 하는 호기심과 배짱이 있어야 한다. 또 자신의 생각을 간결하고 명확하게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다른 사람의 의견을 잘 경청해야 한다. 끝으로 개인기보다 팀플레이를 해야 한다.
-이노베이션의 조건은.
▲아이디어가 새롭고 실현 가능성이 있어야 한다. 또 경제성과 함께 사회가 필요한 수요를 만족시킬 수 있어야 한다. 그게 조건이다.
-청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가장 중요한 게 소통이다. 외국어를 잘하라는 게 아니다. 자기 생각을 논리 타당하게, 상대방이 이해할 수 있도록 간략하게 말하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 공학이나 기초과학의 경우 하루아침에 배울 수 없다. 인내심을 발휘해서 늘 노력해야 한다. 공익을 위한 사명감으로 임해야 한다. 개인의 명예나 돈이 아니라 공익을 위한 자세로 일하길 바란다.
-퇴직 후에 한국에서 부른다면.
▲지금 뭐라고 말하기 어렵다(웃음). 그런 제안이 온다면 그때 가서 생각하겠다.
-좌우명은.
▲'순위를 확실히 하자'와 '원칙을 세워서 일관성 있게 결정하고, 겉과 속이 같은 사람이 되자' '사회와 국가를 생각하는 큰 그림을 그리고 이를 실현한다'가 좌우명이다.
신 국장은 일주일여 한국에 머물면서 23일 국토교통부 주최로 열린 국제 무인기 워크숍에 참석했다. 이어 연세대를 비롯한 대학과 기업, 단체 등에서 특별 강연을 하고 나서 5월 28일 미국으로 돌아갔다.
신 국장은 1982년 연세대 기계공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유학길에 올라 캘리포니아주립대(롱비치)에서 석사 학위, 1989년 버지니아공대(버지니아폴리테크닉주립대) 기계공학과에서 유체역학으로 박사 학위를 각각 취득했다. 1989년 NASA 연구원으로 입사한 후 탁월한 연구 실적과 관리 능력을 인정받아 항공안전연구본부장, 항공연구기술개발 국장보로 고속 승진했다. 2008년에는 동양인 최초로 NASA 항공연구기술개발국장 자리에 올랐다. 2008년과 2016년 2회에 걸쳐 연방정부 고위 공직자에게 수여하는 최우수 공직자 대통령상을 비롯해 NASA 리더십 메달, 특별 서비스 메달, 그룹 성취상, 루이스 우수 성취상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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