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정통부를 담당하는 국장이었다가 98년 6월 정보통신부 정보화기획실장으로 발령받은 후 기획관리실장.차관을 거쳐 승승장구했다.
그러다가 참여정부 시절인 20043년 5월 차출케이스로 열린우리당 후보로 충북 청원에서 출마해 17대 국회에 진출했다. 2선인 그는 현재 국회교육과학기술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정통부의 커진 파워를 실감하게 하는 숨겨진 일화 한토막.
국가 경제를 손안에 놓고 주무르는 경제부총리가 정통부장관과 양해각서를 체결하는 극히 보기 드문 일이 벌어졌다. 법안 제정을 둘러싼 묵은 감정이 쌓인 탓인가. 하지만 정통부로서는 절대 양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 무렵, 정보화촉진기금을 놓고 정통부와 재경원은 막판까지 첨예한 갈등 관계를 보였다. 핵심은 한국통신(현 KT)주식매각대금. 정보통신부는 매각대금을 정보화촉진기금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입장인데 반해 재정경제원은 재정투융자특별회계법에 의해 재정투융자특별회계의 세입으로 처리해야 한다고 팽팽히 맞섰다. 정보통신부는 이에 대해 KT매각대금의 30%를 정보화기금으로 출연한다는 내용으로 부총리와 양해합의서를 맺기로 했다.
법안 초안의 실무를 담당했던 강 사무관의 증언.
“윗선에서 지시를 내렸습니다. 우리는 정실장을 통해 지시를 받았어요. 서면약속을 받으라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에 재경원 예산실장이 펄쩍 뛰었습니다. 그런 일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부총리가 특정 사안에 관해 서면으로 약속을 하는 없잖아요. 그런데 한국통신 주식매각 대금이 워낙 많다보니 결국은 부총리가 일종의 각성인 서면 약속을 하는데 동의했습니다. 매각 대금의 30%는 기금으로 내놓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과거 같으면 어림도 없는 일이지요.”
홍재형 부총리(현 민주당 국회부의장)는 이영탁 재경원예산실장(국무총리 행조실장. 교육부차관. 한국거래소이사장 역임. 현 세계미래포럼이사장)의 건의를 받아 서면 약속을 했다는 것이다. 이 예산실장도 “별 희안한 짓을 다 한다”고 했다는 후문이다.
이런 서면 약속을 받게 한 이유는 간단했다. 예산이란 국가경영의 우선순위에 따라 증감하지만 기금은 지속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로인해 정보통신부는 법적으로 매년 촉진기금을 조성할 수 있었다.
통상산업부를 담당했던 김원식 과장의 기억.
“통상산업부와는 표준화를 협의했습니다. 공진청 업무여서 공진청과 협의를 했습니다. 두 가지 사항에 합의했습니다. 하나는 기본법안에 부가 조항으로 공업표준화 법에 따른다는 조항을 넣기로 했습니다. 다른 하나는 그 대신 정보통신분야 KS관리 업무를 공진청이 정보통신부로 넘겨 준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조건으로 표준화에 합의했는데 나중에 공진청이 업무이관 약속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부처 협의와 법안의결은 일사천리로 진행했다. 정보통신부는 5월13일 정보화촉진기본법안을 입법 예고했다. 그리고 6월28일 차관회의와 6월 30일 경제장관회의을 거쳐 7월 7일 오전 열린 국무회의에서 법안을 의결했다. 봄을 시샘하는 꽃샘추위가 아무리 매서워도 오는 봄을 막을 수 없는 것처럼 대세는 이미 정보통신부로 기울어 있었다.
마지막 관문을 국회통과였다. 정통부는 법안을 7월5일 개회한 제176회 임시국회에 제출했다. 7월14일 국회통신과학위원회(위원장 최낙도의원)를 통과한 법안은 임시국회 마지막날인 7월15일 오전 9시반에 국회법제사법위원회를 거쳐 이날 오전 10시반에 본회의에 상정됐다. 이 법안은 오후 3시 20번째 안건으로 본회의를 통과했다. 입법을 둘러싼 부처간 긴 주도권 여정은 이렇게 막을 내렸다.
이 법이 제정되면서 정보통신부 장관의 권한은 막강해졌다. 정보통신부 장관이 정보화촉진기본계획을 실질적으로 수립할 수 있어 중앙부처 및 지방행정기관 등에 관할권 행사가 가능해 졌기 때문이다. 더욱이 정보화촉진이나 사업추진시 다른 부처가 지장을 줄 우려가 있을 경우 사전에 정보통신부 장관과 협의를 거치도록 했다.
이 법은 6장 36조 및 부칙으로 구성됐다.
이 법은 국가 정보화 촉진과 정보통신산업의 기반조성, 정보통신기반의 고도화를 위한 법적 근거가 됐다. 이를 위해 정부내에 흩어졌던 정보화 관련 기능을 정보통신부로 통합했다. 정보화촉진 및 통신산업 진흥 정책에 관한 주요 사항을 심의할 기구로 국무총리를 위원장으로 하는 정보화추진위원회를 설치 운영키로 했다. 또 중앙행정기관이나 지방자치단체가 주요 정책을 수립, 집행할 때는 정보화 촉진과 정보통신 사업의 진흥 등 정보화 관련 사항을 우선적으로 고려할 것을 의무화했다.
이 법은 8월 4일 공포했고 96년 1월1일부터 시행했다. 이에 앞서 정보통신부는 후속조치로 시행령을 10월 입법예고 했으며 12월에 시행령과 규칙을 마련했다.
김영삼 대통령은 2001년 2월 펴낸 회고록에서 이법 제정의 의미를 이렇게 강조했다.
“나는 정보강국을 위해 체신부를 정보통신부로 확대 개편했고 이어 95년 8월 기본법을 제정했다. 정보화 입국을 위한 법적 뒷받침을 완비한 것이다. 이 법에 근거해 1996년 4월 국무총리를 위원장으로 하는 정보화추진위원회를 구성해 범국가적인 차원에서 종합적인 정보화시책을 추진토록 했다. 위원은 각 부처 장관과 국회사무총장, 법원 행정처장 등 25명 이내로 구성키로 했다.”
정홍식 실장의 회고록 증언.
“이법은 정보통신부 도약의 발판이었습니다. 또 개인정보보호 등 정보화의 부정적 측면에 관한 대책을 최초로 반영한 법입니다. 이 법 제정은 정보화관련 정책을 범정부적으로 일관성있게 추진할 수 있고 한국IT산업발전의 핵심적인 법적. 제도적 근거가 됐다고 평가합니다(한국IT정책 20년에서).
김대통령의 평가처럼 이 법은 IT코리아 건설을 위한 원동력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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