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기획원은 기금운용과 관련해 복수안을 마련했다.
1안은 부총리겸 경제기획원 장관이 위원장으로 기금운용을 맡는다는 내용이다. 2안은 국무총리를 위원장으로 하고 체신부 장관이 간사를 맡는 안이었다. 1안에는 상공부가 찬성했다. 2안은 체신부가 지지했다. 이 안대로라면 전산망법과 정보통신연구개발법 등에 따라 조성한 정보통신진흥기금 등과 전산망조정위 등 그동안 해온 체신부의 기능을 경제기획원이 대부분 흡수하는 형태였다.
차관시절 어렵게 정보통신진흥기금을 조성한 윤동윤 체신부 장관의 회고.
“차관시절인 91년에 정보통신연구개발에 관한 법률을 제정해 정보통신진흥기금을 조성했습니다. 그 과정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몰라요.”
당시 어렵게 부처 협의를 거쳐 법안이 경제차관회의에 상정됐는데 재무부 이수휴차관(보험감독원장 역임)이 기금 조성에 반대했다. 경제차관회의는 강현욱경제기획원차관(농림부장관.전북지사역임. 현 조선대이사장)이 주재했다. 그는 윤차관과 행시동기로 처음 체신부로 발령받았다가 나중에 경제기획원으로 옮겨 승숭장구했다.
강 차관이 윤차관에게 “여기서 기금이 핵심인데 빠지면 안되지 않느냐. 어떻게 하겠느냐”고 물었다. 윤차관이 “보류하자” 말했다. 회의가 끝난뒤 강차관이 윤차관에게 “ 이 차관을 한 번 만나라”고 했다. 그래서 재무부 차관실로 가서 이 차관에게 협조를 구했다. 그랬더니 체신금융 건을 들고 나왔다. 할 수 없이 체신부는 우체국에서 취급하는 체신금융과 관련해 재무부에 그만한 반대급부를 주었다. 그리고 이 문제를 매듭지었다.
경제기획원은 9월27일 이 법안을 입법 예고했지만 논란은 오히려 더 증폭됐다.
부처 간 대립이 격화되자 이경식 부총리(한국은행 총재역임) 가 중재안을 냈다. 이견이 있지만 일단 법안을 국회에 내자는 것이었다. 가만히 있을 윤 장관이 아니었다. 윤 장관은 “그렇게는 절대 못한다”고 반대했다.
결국 경제기획원과 체신부,과기처,상공부 등 4개 부처 장관들은 별도로 9월 28일과 10월9일 두 차례 회의를 열어 논의한 끝에 10월 13일 정보화촉진기본법의 내용을 대폭 손질하기로 합의했다. 합의 사항은 정보화촉진기금 조성부분은 기존 체신부의 정보통신진흥기금을 흡수하는 형태가 아닌 별도의 기금조성이나 정보예산집행 방식으로 변경하며 중복되는 업무에 관해서는 총괄조정회의를 만들어 이를 조정한다는 것이었다.
윤 장관의 회고.
“ 기획원이 마련한 법안은 크게 국가정보화촉진과 정보화촉진 기반조성 등 2개 부문으로 구분해 정부시책을 규정하고 있는데 이 내용 대부분이 기존 법률에 의해 체신부가 하고 있는 업무였습니다. ”체신부는 대안으로 정보산업촉진기본법안을 제시했다. 이 법안은 극한으로 치닫던 부처간 법안 논쟁을 일단 타결국면으로 접어 들게 만들었다.
체신부 안은 정보화촉진 부분을 현행대로 각 부처에 맡기고 경제기획원 장관을 위원장으로 하는 ‘정보산업발전정책심의회’를 설치해 정보산업발전기본계획심의 조정과 관계 부처간 정책조정, 민간업계의 의견수렴 등의 기능을 맡도록 하자는 것이었다. 또 현재 부처별로 무리없이 추진되는 사업은 그대로 각 부처에 맡기고 중복된 기능이나 미흡한 부문은 조정하는 방향으로 법안을 수정키로 했다.
정부는 그해 12월 법안명칭을 정보산업기반조성에 관한 법률로 바꾸고 경제장관회의에서 통과시켰다.
그러나 12월 16일 우루과이라운드 쌀시장 개방의 책임을 황인성 국무총리외 이경식 경제부총리가 전격 경질되는 등 정치적인 격랑이 거세지면서 이 법안 추진은 뒷전으로 밀렸다.
새해를 맞아 94년 1월 13일 윤동윤장관은 청와대에서 김대통령에게 한 신년 업무보고회에서 “ 통신사업구조 개편과 국가경쟁력 강화를 위해 법과 제도를 정비하며 정보통신진흥기금도 지난해보다 2배 이상 늘리겠다”고 보고했다. 윤 장관은 연말까지 9천9백억여원의 기금을 조성하고 물러났다.
그러나 법안은 4월23일 이회창 총리가 전격 경질되면서 다시 뒤로 밀렸다.
지지부진하던 이 법안에 가속이 붙기시작한 것은 김 대통령이 아.태 순방 및 아태경제협력기구(APEC)정상회담 참석을 마치고 11월19일 귀국하면서부터다. 김대통령은 귀국전 호주 시드니에서 국정목표를 세계화에 두겠다고 선언했다.
정부는 이 무렵 박관용 대통령 비서실장(국회의장 역임)이 극비리에 정부조직개편안을 마련해 놓고 있었다. 박 실장은 정부조직개편에 소극적이던 김 대통령을 설득해 정부조직개편을 관철시켰다.
체신부는 세계화 구상 발표 후 경기도 용인의 한콘도에서 체신부와 정보통신정책연구원 한국전자통신연구소 등과 관련업계 인사 등 10여명으로 팀을 구성해 정보화촉진기본법안을 최종 손질했다.
이 법안은 94년 11월23일 경제차관회의와 25일 경제장관회의를 통과했다. 차관회의 때는 부처간 이견을 조정하지 못해 표결에 부쳐야 했다. 11개 경제부처 차관 중에서 이법안에 상공자원부와 농림수산부 등 2개 부처가 반대표를 던졌다. 나머지는 찬성이었다. 이렇게 해서 3년여에 걸쳐 법안 논쟁은 막을 내렸다.
하지만 난산 끝에 확정한 이 안은 또 멈춰서야 했다. 김대통령이 12월 4일 사상최대폭의 정부조직개편을 단행했기 때문이다. 조직개편에서 체신부는 정보통신부로 확대개편키로 했다. 정통부 산파역을 한 윤동윤 체신부 장관은 12월 6일 기자회견을 열어“ 체신부가 정보통신부로 확대개편됨에 따라 정보화촉진기본법의 입법 추진이 보류됐다”라고 밝혔다.
언제나 그렇듯 세상일은 예측불가의 연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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