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5월6일. 대전 한국전자통신연구소 회의실.
경상현 소장(한국전산원장. 체신부차관. 정통부 장관 역임. 현 KAIST겸직교수)과 어원 제이콥스 사장이 마주 앉았다. 두 사람은 MIT동문이었다.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두 사람은 CDMA관련 원천기술을 배우기 위해 원천기술 이전과 시스템과 단말기 설계와 개발 등에 관한 공동기술개발협약을 체결했다. 이는 정식계약이 아니었다. 일종의 가계약이었다.
개발협약의 기본 내용은 퀄컴은 한국전자통신연구소에게 제공한 기술을 활용할 수 있는 권리를 주고 그 기술을 이용해 생산하고 판매할 수 있는 실시권(사용권)은 별도의 협약에 따르되 그 조건은 적정하게 하기로 했다. 한국전자통신연구소는 국내 산업체를 통해 기술실시권을 사용하며 미보유기술인 시스템설계와. 기지국, 부품, 이동통신교환기 접속기술은 퀄컴의 개발기술을 이용키로 했다. 한국전자통신연구소는 이동통신교환기와 이동단말기를 개발한다는 협약이었다.
단계별 개발연구비는 연구소가 퀄컴측에 1천6백95만달러(120억원)를 제공하기로 했다. 연구비는 퀄컴측과 당초 합의한 1천7백50만달러보다 55만달러를 삭감했다. 퀄컴은 일정액의 연구개발비와 원천기술을 제공해 CDMA이동통신시스템을 공동개발하기로 했다.
퀄컴사는 CDMA방식 시스쳄설계와 기지국개발, 이동전화 기술선계 등의 업무를 담당하고 연구소는 이동통신교환기개발과 기지국 장치개발, 이동전화기 응용개발, 국내표준 등의 업무를 담당키로 했다. 양측이 개발한 부문은 서로 교환해 동일한 구조의 이동통신시스템을 완성키로 했다.
공동기술개발은 단계별로 추진키로 했다. 가장 큰 이유는 CDMA방식 이동통신기술에 대한 성공 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만에 하나 공동개발 성공 가능성이 낮으면 다음단계에서 공동기술개발을 포기하고자 했던 것이었다. 한국측 입장에서는 일종의 안전판을 마련한 셈이다.
1단계는 5개월간 전반적인 CDMA시스템 기술사항과 시스템 정의에 관해 공동 개발키로 했다. 2단계는 9개월에 걸쳐 이동시험시스템(RTS)의 국내 설치 및 필드시스템, 네트워크와 이동단말기 상위설계를 하기로 했다, 3단계는 5개월간 기반구조와 단말기의 하위설계를 통해 생산 전단계 기술을 개발키로 했다.
이와 관련해 1단계에 190만불을 지불하고 2단계 1000만달러, 3단체에 505만달러를 지불키로 했다.
이날 서명식에서 일어난 일.
공동기술개발 협약서에 서명을 끝낸 경 소장이 느닷없이 옆에 있던 팩텔의 한국지사장인 박헌서 박사(현 한국정보통신 회장)사장에게 펜을 내밀며 말했다.
“박 사장도 여기 입회인으로 서명하세요“
“제가요?”
박 사장의 입회인 서명에 대해 뒷말이 많았다.
왜 민간업체 대표가 입회인으로 서명하느냐는 문제 제기였다. 하지만 연구소입장에서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다.
이원웅 단장의 말.
“박 사장은 미국업체의 한국지사장이었기에 미국측의 기술관련 정보를 많이 그리고 빨리 알 수 있었습니다. 우리 입장에서 그쪽 사정을 빨리 파악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협약을 체결한 제이콥스 사장은 5월8일 윤동윤 체신부 차관(체신부 장관 역임. 현 한국IT리더스포럼회장)을 방문(사진)해 공동개발 등에 관해 의견을 나눴다. 이 자리에는 박성득 국장과 이원웅 단장, 그리고 박헌서 박사 등이 참석했다.
제이콥스는 관련 업체 경영자들과도 만났다.
체신부는 CDMA방식 기술도입과 관련한 관계기관 회의를 몇차례 열었다. 혹여 정식 계약서 내용에 하자 있을 경우 그 피해는 고스란히 한국이 부담해야 했다.
그해 7월26일.
체신부 13층 회의실에서 열린 회의는 박성득 체신부 전파관리국장 주재로 한국통신, 한국전자통신연구소, 정보통신정책연구원 등 관계자 및 고문 변호사, 박한규 연세대교수(현 연세대 명예교수)등이 참석했다. 참석자들은 먼저 공동기술개발 합의서에 대한 검토를 했다. 이 자리에서 합의서와 관련한 미비점을 집중 논의했다.
박 국장의 회고.
“회의에서는 한국전자통신연구소는 퀄컴과 공동개발에 참여하지만 개발후 소유권이 없다.또 퀄컴사 개발품은 한국전자통신연구소 사용이 불가능하게 명문화해 제작 판매 권한이 없다. 합의서 내용에 대해 전반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등의 의견이 나왔습니다.”
이에 따라 회의에서는 한국전자통신연구소가 이런 의견을 모아 양측이 계약원칙에 따라 재작성하고 이를 관련부서에서 검토한 후 종합 회의를 다시 열기로 결정했다. 이를 합의서에 반영키로 했다.
그해 8월5일 오후 5시.
체신부 13층 회의실에서 CDMA방식 2차 기술도입관련 회의가 열렸다. 박성득 전파관리국장이 주재한 회의에는 이원웅 단장과 정보통신정책연구원 이상덕박사, 고문변호사 등과 연구평가위원장인 박한규 연세대교수 등이 참석했다.
회의에서 참석자들은 1차 회의에서 지적한 내용을 토대로 한국전자통신연구소가 다시 작성한 합의서를 검토했다. 이날 회의에서 합의서 전문에 퀄컴사가 한국전자통신연구소측에 인도한 물품 및 기술은 국내에서 생산. 판매하고 외국에도 수출할 수 있는 허가권 부여를 추가하기로 했다.
체신부는 이정행과장을 단장으로 연구소, 업계 관계자등 4명으로 구성한 CDMA조사단을 미국에 보내 기술동향을 파악했다. 체신부는 이런 과정을 거쳐 학계와 전문가들로 구성된 전파육성협의회를 열어 96년 자체 개발을 목표로 추진했던 디지털이동통신개발계획을 대폭, 수정했다.
그 핵심은 외국에서 새로운 기술을 도입, 앞당겨 국사화를 이룩하고 기술도 첨단방식으로 변경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CDMA방식의 기술이 실패할 경우를 대비해 국내에서 개발중인 TDMA방식도 병행해 추진키로 했다.
체신부는 그해 8월23일 한국전자통신연구소의 CDMA방식 이동통신기술도입을 승인했다. CDMA첫 상용화의 대장정이 시작된 것이다.
이현덕의 정보통신부 그시작과 끝<110> (0) | 2011.06.09 |
---|---|
이현덕의 정보통신부 그시작과 끝<109> (0) | 2011.06.07 |
이현덕의 정보통신부 그시작과 끝<107> (0) | 2011.05.26 |
이현덕의 정보통신부 그시작과 끝<106> (0) | 2011.05.24 |
이현덕의 정보통신부 그시작과 끝<105> (0) | 2011.05.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