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이현덕의 정보통신부 그시작과 끝<107>

[특별기획] 대통령과 정보통신부

by 문성 2011. 5. 26. 13:23

본문

한번 튼 공동기술개발의 물길은 멈추지 않았다.

CDMA첫 상용화로 가는 길은 불확실성에 대한 도전이었다. 한국전자통신연구소(현 한국전자통신연구원)와 퀄컴사는 CDMA방식의 공동기술개발 계약체결을 놓고 밀고 당기는 줄다리기를 한동안 계속했다.

한국전자통신연구소 이원웅 무선통신개발단장(인천대 정보통신공학과 교수 역임)이 1991년 1월 18일 오전 10시 미국 퀄컴사에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지만 그것은 법적인 구속력이 없었다.

퀄컴측은 이 양해각서 체결을 고리로 공동기술개발에 적극성을 보였다.

퀄컴사 살머시 부사장이 그해 3월 20일 오후 한국으로 달려왔다. 그는 이튼날 대전 한국전자통신연구소에서 직접 프레젠테이션을 하면서 CDMA방식의 장점과 공동기술개발 방식, 추진체계 등을 설명했다. 살머시는 이날 공동개발 기술료로 3천만달러를 달라고 요구했다. 살머시와 1차 협상 상대는 이원웅 단장이었다. 그 액수를 그대로 받아들일 이 단장이 아니었다.

이 단장의 말.

“처음 퀄컴에서 3000만달러의 기술료를 제시했습니다. ‘턱없이 너무 많다’면서 그들과 밀고 당기는 줄다리기를 했습니다. 최종 1천7백50만달로 합의했습니다.”

살머시가 제안한 계약방식은 단계별 독립계약을 하자는 것이었다. 3단계로 나눠 공동기술개발을 하되 단계별 공동개발이 끝나면 서로 평가를 해서 양측이 만족하면 다음 단계의 공동개발을 진행하자는 내용이었다.

한국전자통신연구소 이혁재 부장(현 KAIST 전기전자공학과 교수)의 회고.

“일종의 미끼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퀄컴이 한국에 대해 일시불로 거액을 요구할 경우 우리가 응한다는 보장이 없었습니다. 당시로서는 CDMA방식의 이동통신기술이 성공한다는 확신이 없었습니다. 불확실한 기술에 누가 거액의 목돈을 내겠습니까. 퀄컴측이 단계별 독립계약안을 제안한 것은 단계별 독립계약을 하면 한국이 응할 수 있다고 본 것입니다. 우리도 상용화 확신이 없는 데 일시불로 돈을 줄 수가 없었습니다. 단계별 독립계약방식은 양측의 이해가 맞아 떨어진 결과인 셈입니다.”

한국전자통신연구소는 그해 4월 4일 체신부에 퀄컴사와 공동연구를 위한 인력과 연구비지원을 요청했다. 기술자립을 위해서는 CDMA방식의 신기술을 도입해 취약한 국내 무선기술을 획기적으로 향상시키는 일이 시급했다.

체신부도 이점을 깊이 인식하고 있었다. 기술개발은 한국전자통신연구소가 추진하고 있었지만 정책적 판단과 그 결정은 체신부 몫이었다. 그에 따른 연구개발비도 정부가 부담해야 했다.

이 업무는 박성득 전파관리국장(정통부 차관 역임. 현 한국해킹보안협회장)과 이정행 기술과장(중앙전파관리소장 역임)라인이었다.

박국장은 기술고시출신으로 부내 최고 무선통신권위자였다. 박국장은 자신의 전결로 한국전자통신연구소에 CDMA방식의 기술개발을 추진하라는 공문을 내려보냈다.

박국장의 말.

“CDMA방식의 기술이 미래를 내다보는 좋은 기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다만 실용화가 우리 기대처럼 될지는 자신할 수 없었지만 통신강국이 되려면 공동기술개발을 해 제품을 앞당겨 상용화하는 일이 시급했습니다.”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