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를 보는 눈에 의혹이 가득하면 진실은 어둠뒤로 숨는다. 그래서 오얏나무 아래서 갓끈을 고쳐 매지 말라고 했다. 의혹아궁이에 정치권이 개입하면 사태는 파국(破局)을 향해 질주한다.
CDMA방식의 2단계 공동개발이 막 시작한 1992년 8월 20일.
송언종 체신부장관(광주시장 역임. 현 21세기종합법률사무소 변호사 )은 이날 오전 9시 체신부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황금알을 낳은 거위’로 불리는 제2이동통신 이동전화 신규사업자로 선경그룹의 유공이 대주주로 참여한 대한텔레콤을 최정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송 장관은 기자들에게 “심사를 전후해 외부 압력은 없었고 사업자 심사결과는 청와대에 사전 보고하지 않았다”며 공정한 기준에 의한 선정임을 강조했다.
체신부는 선경의 대한텔레콤이 포철의 신세기이동통신과 코오롱의 제2이동통신 등 3개법인을 대상으로 서울지역 통신망건설능력과 연구개발계획, 외국인 주주와 협력관계, 사업경영능력 등에 관한 36개 항목을 심사평가한 결과 대한텔레콤이 1만점 만점에 8천3백88점을 얻어 허가대상 법인으로 확정됐다고 발표했다. 포철의 신세기이동통신은 7천4백96점, 코오롱의 제2이동통신은 7천99점을 얻었다.
체신부가 대한텔레콤을 제2이동통신사업자로 선정하자 정국은 요동치기 시작했다. 선경그룹의 최 회장은 노대통령의 사돈이었다. 민주당과 국민당은 ‘6공비리의 대표적 사례’라며 전면 정치 공세를 시작했다. 대통령의 사돈이 대주주로 참여한 대한텔레콤이 사업자로 선정된 것은 특수관계를 이용한 로비나 특혜라는 의혹을 제기한 것이다.
선경그룹 최종현 회장는 이날 오후 서울 여의도 유공빌딩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대통령의 사돈이라는 이유로 특혜를 받지 않았다. 이동통신사업으로 얻는 이익은 어떠한 방식으로든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밝혔다. 최 회장은 1.2차 심사에서 결과도 대한텔레콤이 모든 항목에서 다른 경쟁업체보다 앞섰다며 특혜설은 추측이라고 부인했다.
특혜의혹은 정치권의 뇌관으로 부상했다. 사태는 갈수록 악화됐다.
체신부는 △제2이동통신사업의 절대 필요성△ 사업자 선정과정의 공정성 △ 이 사업이 대통령 임기말에 추진한 사업이 아니라는 점을 밝혔다. 이어 세부평가 항목과 항목별 가중치 및 가중치 부여 원칙. 각업체의 항목별 점수와 신청서 사본, 심사평가위원 명단까지 공개했다.
사업자 선정을 총괄한 박성득 제2이동통신 심사평가단장(당시 체신부 통신정책실장. 정통부차관 역임. 현 한국해킹보안협회 회장)의 회고.
“ 한 점 의혹없이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선정작업을 진행했습니다. 우리나라 최초로 정부의 인ㆍ허가를 공개적으로 종합계획서를 평가 시행해 아무 하자가 없었습니다.”
체신부는 각계 전문가 40명으로 심사평가반을 구성해 6월26일 사업허가신청서를 접수한 후 선정작업을 시작했다. 6개 컨소시업을 대상으로 7월 1일부터 27일까지 자격확인심사와 이어 14일부터 28일까지 1차심사평가를 실시했다. 이 중 평균점수 이상을 얻은 대한텔레콤과 제2이동통신, 신세기이동통신 등3개컨소시엄을 선정했다.
1차평가결과 대한텔레콤이 가장 높은 8천1백27점을 얻었으며 2위는 코오롱의 제2이동통신(7천7백83점), 3위는 포철의 신세기이동통신(7천7백11점)이 차지했다.
체신부는 8월4일부터 2차심사평가에 들어갔다. 2차심사에서는 통신망설계능력을 평가하는 특정(서울)지역통신망건설계획서와 외국제휴업체의 경영 및 기술협력계획, 상한선 3백억-4백억원의 이동통신기술개발 일시출연금을 포함한 연구개발계획등이 포함된 전기통신발전계획서를 30여개 평가항목으로 나누어 10명의 평가위원을 투입, 1차심사때와 같은 방식으로 평가했다.
심사평가는 1.2차 모두 합숙으로 한국통신(현 KT) 도고수련관(비계량평가)과 체신부전산관리소(계량평가)에서 실시했다.
체신부는 대학교수와 연구원 등 박사급전문가 20명으로 평가위원선정을 구성해 기술과 영업으로 나누어 항목별 채점을 했다.
실무를 지휘했던 박영일 평가심사단 부단장(당시 정책심의관. 현 크레스텔 회장)의 증언.
“공정성을 위해 평가위원들에게 이해관계여부를 직접 확인했어요. 하루만에 위원선정을 끝내고 곧바로 단체 버스로 도고수련관으로 이동했습니다. 그곳에서 심사를 한 후 발표때까지 외부와 격리시켰어요. 저도 같이 합숙을 했습니다. ”
사실이 이러함에도 특혜의혹설은 바람탄 불길처럼 더 번져나갔다. 민주과 국민당 등 야권은 국정조사권 발동과 국회청문회를 추진하고 있었다. 민심의 바다도 출렁거렸다.
대선을 불과 4개월 남겨둔 시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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