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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덕의 정보통신부 그시작과 끝<119>

[특별기획] 대통령과 정보통신부

by 문성 2011. 7. 11. 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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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無)에서 유(有)를 잉태하는 연구개발은 형극(荊棘)의 길, 바로 그것이었다.


한국전자통신연구소(ETRI)는 퀄컴과 1. 2단계를 거쳐 93년 하반기부터 시스템 구현 작업을 진행했다.
이 시기에 CDMA개발에 대한 반대여론이 거셌다. ETRI와 퀄컴측간 불협화음도 터져나왔다. 상공자원부는 체신부가 국책사업으로 추진중인 CDMA방식에 문제를 제기하며 TDMA방식으로 바꿀 것을 주장했다.
 외국 장비업체의 로비도 치열했다. 국회조차 이 문제를 쟁점화했다.


윤동윤 체신부 장관(현 한국IT리더스포럼 회장)은 정공법으로 대응했다. 상용화 성공만이 해법이었다. 그는 장관직을 걸고 CDMA개발에 전력투구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CDMA개발을 당초보다 2년 앞당겨 1995년까지 상용화하겠다고 배수진을 쳤다.

이 세상에 없는 CDMA방식의 이동통신시스템을 약속한 기간 안에 개발하는 것 이외는 달리 대안이 없었다. 기술세계는 누가 선점하느냐가 관건이다.


윤 장관은 매주 이인학 전파관리국장(데이콤 감사 역임)과 그 후임인 이성해 전파관리국장(정통부 정보화기획실장 역임. 현 큐앤에스 회장)이나 신용섭 과장(현 방송통신위원회 상임위원) 등과 함께 ETRI로 내려가 CDMA개발을 독려했다.


ETRI도 비상이 걸렸다.

양승택 소장(ICU 총장. 정통부 장관, 동명대 총장 역임. 현 KAIST 초빙 석좌교수, KMI 회장)은 업무의 우선순위를 CDMA상용화에 두었다. CDMA 연구동이 24시간 불이 꺼지지 않고 풀 가동되기 시작했다.


양 소장은 매주 월요일 CDMA 개발 진도를 직접 점검했다. 그동안 단장을 통해 보고받던 업무상황을 실무라인을 통해 직접 보고 받고 지시를 내렸다. 단장과 부장, 개발실장 등 연구진들은 밤을 새우며 시스템 개발과 시험을 하고 매주 추진 상황과 문제점 등을 보고했다. 양 소장은 연구진들의 어려움은 우선적으로 해결해 주었다.


그해 연말 무렵, 서정욱 이동통신기술개발사업관리단장(SKT사장. 부회장. 과기부장관. 초당대총장 역임)이 CDMA개발 실무책임자인 안병성 이동통신기술연구단장의 교체를 요구했다.

이를 놓고 관리단과 ETRI간 입장이 팽팽히 맞섰다. ETRI에서는 당혹하고 불쾌한 기류가 역력했다. 진통이 계속되자 윤 장관이 중재에 나서 양 소장을 설득했다.


윤 장관의 회고.

“ETRI는 많은 연구를 하는 데 그 중의 하나인 CDMA방식의 이동통신개발 책임자를 바꾸는 일에 인색할 필요가 뭐 있어요. CDMA 상용화에 차질을 빚는다면 ETRI한테 그책임이 돌아갈 수 있어요.”


그해 연말 양 소장은 안 단장을 교체했다.


양 소장의 말.

“ 안 단장은 만 60세가 돼 단장 보직을 면하고 특별규정을 만들어 개인연구실을 주고 기초 연구비를 지원하기로 했어요. 고생한 분들의 명예도 지켜주고 후진들이 승진할 수 있는 자리도 만들어 줄 수 있게 했습니다.(회고록 끝없는 일신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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