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이현덕의 정보통신부 그시작과 끝<121>

[특별기획] 대통령과 정보통신부

by 문성 2011. 7. 14. 11:17

본문

1993년 9월 16일.

CDMA방식의 이동통신개발사업 추진체계가 변경됐다. 한국전자통신연구소(ETRI)가 주도하던 CDMA공동개발 방식을 업체간 경쟁개발로 바꾼 것이다. 체신부 결정이었다.

체신부는 이날 오전 9시 14층 회의실에서 장관 자문기구로 국책사업인 CDMA방식의 디지털이동통신시스템 등 전파통신기술개발사업을 종합 관리할 '전파통신기술개발추진협의회를 발족했다.

협의회 의장에는 과기처 차관을 지낸 서정욱 박사가 선임됐다. 위원은 체신부 이성해전파관리국장(현 큐앤에스 회장), 김창곤 통신기술심의관(정통부 차관역임. 현 LG유플러스 고문), 한국통신 김낙성 제2부사장, 황보한 위성사업단장, 성태경 한국이동통신 전무, 양승택 ETRI소장(정통부장관 역임), 김광호 삼성전자사장(삼성전자 부회장역임), 정장호 금성정보통신사장(현 마루홀딩스 회장), 김주용 현대전자사장(고려산업개발 사장 역임, 현 한국공학한림원 회원), 윤두영 맥슨전자 사장(미국거주) 등 11명이었다.

체신부는 이어 오전11시 한국이동통신에 이동통신기술개발사업의 효율적 추진을 위한 이동통신기술개발사업관리단을 출범시켰다. 단장에는 서정욱 박사를 임명했다.


 

관리단은 서울 종로구 세종로 이마빌딩 8층에서 현판식(사진)을 갖고 본격적인 업무에 들어갔다. 관리단 설치는 윤동윤 체신부장관(현 한국IT리더스포럼 회장)의 구상이었다. 윤 장관은 CDMA방식을 국가표준으로 확정했고 상용화도 당초보다 2년 앞당겨 95년에 완성하겠다고 발표했다.


시한을 못박아 놓고보니 걱정이 많았다. ETRI의 상용화 의지는 강력했지만 진도가 더뎠다. 그는 제품 구매자인 한국이동통신에 관리단을 설치해 목표를 달성코자 했다.

윤 장관의 회고.

“고심하다가 관리단을 설치하기로 결심했어요. 서 박사에게 전화를 해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만나 점심을 하면서 관리단 구상을 밝혔어요. 서 박사는 통신분야의 전문가로 경험과 통솔력, 추진력 등에서 가장 적임자였습니다. 서 박사에게는 한국이동통신 사장과 같은 대우를 하도록 조치했어요.”

회고록에서 밝힌 서 박사의 증언.

“윤 장관의 요청을 차마 거절하지 못했습니다. 과거 TDX사업을 맡았을 때 그는 체신부 통신정책국장으로서 적극 도와주었습니다다. CDMA사업을 걱정하는 그의 의지와 충정을 외면할 수 없었습니다.”

서 박사는 1957년 서울대 전기공학를 졸업하고 공군 사관학교 교수로 재직하다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텍사스 A&M대학교에서 공학박사 학위를 취득한 후 1970년 귀국해 국방과학연구소(ADD)에서 최초의 국산 무전기인 K-PRC6를 개발했다. 박정희 대통령의 두터운 신임을 받았고 ADD소장까지 역임했다. 그후 TDX사업단장과 한국통신(현 KT)부사장을 거쳐 과학기술처 차관,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원장을 역임했다. 1995년 3월 SK텔레콤 사장으로 취임했고 부회장을 역임한 후 1999년 김대중 정부시절 과기처 장관으로 발탁됐다.

처음 관리단은 13명으로 출범했다. 한국이동통신과 체신부에서 인력을 파견했다. 기술총괄은 이성재 부장(현 알에프원도우 회장)과 이두식 부장(현 SKT 전무). 기획팀은 조민래 부장(현 대한도시가스대표 ). 행정총괄은 체신부 서석진 사무관( 현 부산지방우정청장)이 담당했다. 이외에 권우성. 서창원, 문규란. 여준구 씨 등이 일했다.

윤 장관은 원활한 사업추진을 위해 장관실에서 매주 경상현 차관(정통부장관 역임)과 서정욱 단장, 양승택 ETRI소장(정통부 장관, 동명대 총장 역임. KMI 회장)등이 참석하는 회의를 열어 추진상황과 문제점, 보완책 등을 점검했다. 이 자리에는 체신부 신용섭 연구개발과장(현 방송통신위원회 상임위원)이 배석해 회의 내용을 기록했다.

서 사무관의 말.

“ 저는 관리단에서 체신부와 관리단간의 업무조율을 담당했습니다. 정책적인 문제도 해결했습니다. 매주 장관실 회의를 준비하고 회의에서 논의된 점을 처리하는 일이었습니다. ”

서 단장은 취임후 ETRI와 업체간 CDMA공동개발 방식을 업체간 경쟁개발로 변경했다.

서 단장의 회고.

“공동개발을 경쟁개발로 전환해 업체들을 경쟁시키기로 했습니다. 공동개발을 하다 공멸하느냐, 경쟁개발로 1개 업체라도 살아남느냐의 선택이었습니다. ”

그의 리더십은 과격하지만 목표가 분명했다. 공사와 ADD에 몸담아 상명하복의 군 리더십을 연상하게 했지만 치밀함과 강한 추진력을 바탕으로 CDMA상용화에 가속도를 내게 했다.

서 단장은 “CDMA개발은 95년말까지 끝내야 한다. CDMA개발은 시간과의 싸움이다 ”라며밤낮가리지 않고 개발팀을 독촉했다. ETRI와 개발업체 연구진들도 그의 극성에 시달려야 했다. 간혹 큰 소리가 나기도 했다.

제품의 사양기준과 기술관리. 규격 등을 총괄한 이성재 부장의 말.

“구매자 입장에서는 경쟁개발로 어느 업체건 제품만 개발하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한국이동통신 요구사항에 맞는 제품을 만들면 구매해 준다는 것이었지요.”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