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1월.
후임 단장에 박항구 교환기술연구단장(사진. 현 소암시스텔 회장 )이 임명됐다. 박 단장은 과거 서 단장이 TDX개발단 책임을 맏고 있을 때 그와 호흡을 맞춰 교환기를 개발한 인연이 있었다.
박 단장은 그간의 문제점을 분석해 내부 조직과 이에 따른 보완책을 마련했다. ETRI는 개발단 명칭을 이동통신연구단으로 변경했다.
박 단장의 증언.
“교환단은 그동안 이동통신기술연구단에서 이동교환기업무를 하청받아 일을 했습니다. 그래서 이원화한 업무를 연구단으로 통합하고 그 업무를 당당하던 조직을 통째로 가져 오면서 명칭을 바꾼 것입니다. 양 소장에게 사전에 건의를 해 승낙을 받았습니다.”
박 단장은 먼저 TDX개발 성공체계를 참고해 CDMA개발체계를 새롭게 정비하고 부장들에 대한 인사를 단행했다.
이동통신 교환연구부장에 이충근 부장(사업), 무선기술연구부장에 이헌 부장(현 텔에이스사장), 이동통신계통연구부장에 한기철 부장(현 ETRI 책임연구원), 전파연구부장에 이혁재 부장(KAIST 전기전자공학과 교수)을 각각 임명했다. 이들은 환상의 컴비가 돼 기술개발에 가속페달을 밟았다.
이충근 이동통신교환연구부는 이동교환기스템과 이동교환 하드웨어, 고속패킷 라우터와 프로세스, 이동호출처리 소프트웨어기술, 부가서비스소프트웨어기술, 이동망운영관리기술, 가입자관리 시스템 등의 개발업무를 담당했다.
이 헌부장이 책임자인 무선기술연구부는 CDMA성능분석과 기지국 무선접속 신호처리, 기지국 망구성방식, CDMA기지국 서비스제어 , 망관리, 기지국 트래픽 분석과 관리, 기지국 망정합 등의 연구를 담당했다.
이동통신계통시스템부의 한기철 부장팀은 이동통신방식과 음성신호처리, CDMA신호처리, 시스템시험과 성능분석 , CDMA시험환경과 이동전파분석, 개발환경과 체계 등에 관한 연구를 했다.
전파연구부의 이혁재 부장팀은 이동전화 무선기술 연구사업을 진행했다. 기지국 무선기술과 이동전화 기술에 역점을 두었다.
박 단장은 시스템 구조도 재설계했다. KCS시험모델은 문제점이 발견돼 이동교환기와 기지국, 제어기와 기지국간 처리 능력을 극대화하는 구조로 설계를 진행하고 명칭도 CMC-1으로 변경했다.
박 단장은 지정개발업체들의 의견을 수렴해 업무를 세분하고 역할을 분담했다. 계획수립과 타당성조사, 개발단계, 시제품제작과 시험 및 상용시험, 양산단계 등에 이르기 까지 전 과정을 사항별로 정리했다. 그리고 데이터검색도구를 개발해 이곳에 퀄컴측에서 받은 각종 1.2.3차 기술문서와 소프트웨어목록, 연구소의 문서목록, 심지어 부품가격 등에 이르기까지 필요한 모든 자료를 저장했다. 이어 개발단계별 추진해야 할 업무와 각 단게별 작성해야 할 문서를 확정하고 사용자 요구사항 및 이동통신 시스템을 구성하는 기본 블록까지 자료로 정리했다. 이런 식으로 업무를 분담하자 그동안 비협조적이었던 개발업체들이 적극 참여하기 시작했다.
그해 1월 박 단장은 파트너인 미 퀄컴사를 방문했다. 그동안 소원해진 관계를 해소하고 기술교류와 협력을 강화하기로 합의했다. 또 매월 양측이 번갈아 설계회의를 개최하고 기술전수도 진행하기로 했다. 궐컴사 방문에는 한기철부장과 한영남 연구원 등이 동행했다.
한기철 부장의 말.
“전임 안 단장은 독자기술 의식이 강했습니다. 퀄컴과 관계가 매끄럽지 못했어요. 일본에서 교육을 받은 탓에 문화적 차이도 있었고요. 이에 비해 박 단장은 개방적인데다 대인관계가 원만해 퀄컴과 기술전수와 업무 협조가 잘 됐습니다.”
그해 2월.
ETRI와 퀄컴 간 3단계 기술개발 계약이 미 퀄컴사에서 체결됐다. 이 계약은 시스템 하위 상세 설계 및 제어장치, 이동통신 교환기 개발 등이 목적이었다. 기술료로 5백5만불이 지급됐다. 5개월간 ETRI와 공동개발업체에서 연구인력 20명을 퀄컴사에 파견키로 했다.
연구단은 CMS-1의 ETRI설계분과 업체 분담설계의 제조와 실험실(STP) 제작에 집중했고 4월에는 대형 CMS-1을 완성했다.
박 단장의 증언.
“당시 실험실(STP)이 지하에 있었는데 그 방 입구에 'CDMA WAR ROOM'(CDMA전쟁실)이라고 써 붙였습니다. 사무실에 야전침대를 갖다 놓고 모든 연구질들이 개발에 몰두 했습니다.”
그해 6월 CMS-1로 시험통화에 성공했다.
그해 여름은 유난히 무더웠다. 15년만의 폭염이 전국을 찜질방처럼 달궜다. 그러나 ETRI지하 1층 실험실은 냉기가 넘쳤다. 전쟁터에서 더위를 생각할 겨룰이 없었다. 시험시스템에 설치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성능을 시험하고 나타난 문제점을 해결하느라 무더위를 느낄 여유조차 갖지 못했다. 심지어 끼니도 연구실에서 해결하기 일쑤였다.
하반기로 접어들자 연구단의 시험팀은 24시간 3교대로 나누어 기능별 시험을 진행했다. 그러다 보니 실험실은 불이 꺼지지 않았다.
이런 가운데 미처 생각지 못한 복병이 등장하기도 했다. 장비를 24시간 가동하려면 다른 장비도 함께 가동할 인력이 필요했다. 그런데 그 인력을 퇴근시킨 것이다. 그 이후 다른 장비운용 인력도 24시간 대기했다.
동시 다발로 인한 작동 중단사태는 상황판에 시험흐름도를 가능별로 작성해 문제점을 순차로 해결했다.
연동시험과 관련해 수시회의를 열었다. 다음 회의시 앞서 한 회의내용을 놓고 간혹 마찰이 빚어졌다. 옥신각신하다 회의 시간을 넘기는 일이 빈발했다.
이를 본 A선임연구원이 아이디어를 냈다. 녹음기를 갖다 놓고 회의를 하자는 것이었다. 그후부터 회의내용에 대해 딴 소리를 하는 일이 사라졌다.
ETRI는 신세기통신에 설치하는 시스템 최적화 작업을 지원했다.
CDMA 연구개발 작업은 이후 문제점을 하나 씩 극복해 상용화를 향해 달렸다. 만에 하나 제2 이동통신사업자가 서비스를 시작하기 전에 상용화 기술을 내놓지 못하거나 시스템에 치명적인 기술결함이 인정되면 모든 연구성과가 물거품이 될 수 있었다.
ETRI는 세계 최초의 CDMA 상용화 장비인 KCS-1를 토대로 시험 제품인 KCS-2 시연에 성공했다. 93년 12월에 기본시험 시스템 개발을 완료하고 94년 말에 시범시스템 개발을 끝냈다. 95년말에는 상용, 시제품 개발을 끝냈다.
1980년대 TDX를 개발했던 경험이 CDMA 첫 상용화의 주출돌이 된 것이다. 이 과정에 수많은 연구진들의 땀과 열정이 뭉쳐 CDMA세계 첫 상용화라는 ICT거탑을 쌓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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