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는 '모범의 창'이다.
종교인은 가장 도덕적이고 솔선수범해야 한다. 사회 법이 있지만 종교인은 가슴속에 새긴 계율이라는 법을 엄수해야 한다. 대한불교 조계종도 마찬가지다. 출가한 스님이 계율에 어긋난 언행을 했다면 그는 자격상실이다. 부처님을 욕보인 행위다. 민초들 삶 잣대에 못 미치면 그건 종교가 아니다.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 설정 스님(사진. 조계종)이 13일 “종단 개혁의 초석을 마련하고 오는 12월 31일 총무원장직에서 물러나겠다”고 밝혔다.
설정 스님은 그동안 학력 위조와 사유재산 은닉, 은처자(숨겨놓은 아내와 자녀) 의혹 등 각종 의혹으로 퇴진 요구를 받았다.
설정 스님은 이런 의혹에 대해 "전혀 근거가 없고 알려진 내용 등 역시 악의적으로 조작된 것"이라고 밝혔다.
설정스님에 대한 의혹은 내게 불편한 진실이다. 양측 어느 측이 거짓이건 결국 조계종의 치욕이다. 부처님을 욕보인 행위다. 승가에 대한 신도들의 불신은 치명타다. 누가 존경하지 않는 스님에게 삼배를 할 까.
이는 무한신뢰의 추락이다. 불교계 위기다. 조계종단은 지금 위기의 갈림길에 서 있다.
나는 설정스님과 조계종단이 원장 의혹을 왜 아직까지 명확히 규명하지 못했을까하는 생각을 한다. 의혹이란 날이 갈수록 커진다.
이번 의혹의 가장 큰 책임은 설정 스님에게 있다. 의혹을 사게 한 것부터 스님 책임이다. 선승으로 추앙받던 스님 지난날에 그런 의혹이 도사리고 있었다니 허탈하다. 그는 자신의 의혹을 해결할 의무가 있는 조계총 총무원장이다. 자신을 향한 의혹의 돌직구가 무수히 날아 오는데도 왜 미적거렸는지 납득할 수 없다. 그런 사이 조계종에 대한 신뢰는 추락했다. 종단 내부 혼란은 가중했다.
가령 은처자가 없는데도 설정 스님에게 그런 덤터기를 씌웠다면 그건 수행자 이전에 한 인간으로서도 할 일이 아니다. 그건 범죄다.
설정 스님은 이런 의혹이 악의적인 조작이라면 단호하게 대응해 진실을 밝히는 게 우선할 일이다. 자체 조사나 아니면 검.경에 수사를 의뢰해 명명백백하게 진실을 규명하는 게 순리다.
설정스님은 은처자를 밝히기 위해 최근 유전자 검사를 했다. 이왕 할 유전자 검사라면 더 일찍 해 진실을 가렸다면 내부 갈등도 없고 대중의 따가운 눈초리를 받을 이유가 없다.
설정 스님은 지난달 27일 기자회견을 열고 “조속한 시일 내에 종단의 안정과 화합을 위한 길을 진중히 모색해 진퇴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1일에는 교구본사주지협의회장인 성우 스님을 만나 “16일 이전에 용퇴하겠다”고 말한 바 있다. 수행자로서 한 점 부끄러움이 없다면 굳이 사퇴를 언급할 이유가 있나. 엊그제 올해 12월 31일 사퇴하겠다고 말을 바꾼 건 바람직하지 않다.
조계종단 소임을 맡아 원장을 보좌한 스님들도 일단의 책임이 있다. 조계종은 설정 스님을 위한 종단이 아니다. 의혹의 중심에 총무원장인 설정 스님이 있다면 해법을 제시하고 이를 관철해야 한다.
그건 조계종과 불교 신자를 위한 일이다. 만약 지방 사찰의 한 스님이 이런 의혹 당사자라면 조계종단이 가만히 있었겠나.
불교계의 원로 스님들도 이번 사태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 한 집안에 문제가 생겼다면 어른이 나서 시시비비를 가려 문제를 해결한다. 그런데 큰 스님들 중 일부 스님을 제외하고는 이번 설정 스님 사태를 흘러가는 구름보듯 한다.
법회 때 법상에 앉아 불자들을 향해 주장자를 들고 사자후를 토하던 그 많던 원로 스님들은 다 어디가셨나. 역대 총무원장 스님과 큰 절 방장 스님들은 무엇을 하고 계신지 궁금하다.
설정 스님 의혹 건은 승가의 치욕이다.
설정스님의 지난 날 언행이 계율에 어긋났다면 즉시 참회하고 물러나야 한다. 총무원장직을 맡은 일부터 잘못이다. 수행자로서 흠결이 있다면 나서지 않아야 한다. 반대로 사실이 아닌데 악의적인 의혹 조작을 한 세력이나 이에 동조하는 일부 스님이 있다면 이 역시 수행자 본분을 벗어났다. 당연히 그에 합당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래서 이번 의혹건은 명명백백하게 밝혀야 한다.
이번 기회에 은처자, 도박 등 수행자 본분을 벗어난 일들로 지탄받는 일부 스님들도 모든 걸 밝혀 일벌백계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 조계종의 청정가풍이 면도날 처럼 시퍼렇게 살아난다.
스님 벼슬은 닭벼슬보다도 못하다고 한다. 부모형제도 다 버리고 오직 상구보리(上求菩提). 하화중생(下化衆生)하고자 출가한 스님들이 벼슬에 무심하다는 의미다. 하지만 종단 실상은 그렇지 않은 듯 하니 기각 막힐 일이다.
부처님은 자등명 법등명, 즉 자신을 등불 삼고 법을 등불 삼으라고 말씀하셨다.
스님들이 신도들에게 존경받는 이유는 세속에 물들지 않은 청정함과 자신에 대한 엄격함이다.
나는 과거 여름 한철을 해인사 길상암에서 지낸 적이 있다.
그 당시 해인사 주지를 지낸 명진스님의 솔선수범과 계율에 엄격함을 보면서 존경심을 가졌다. 새벽 예불부터 하루 3번 예불을 직접 하셨다. 어디 갈 때는 김밥을 싸서 갔다. 구멍난 속옷을 입고 말 대신 행동으로 모범을 보이셨다. 고아들을 데려다 키웠다. 신도들에게는 봄햇살 같이 따스했지만 자신에게는 추상 같았다.
이후 나는 스님들을 높이 평가한다. 토굴에서 끼니를 혼자 해결하며 수행하는 일이 어디 쉬운 일인가. 스님들의 도덕심과 청정함이 존경 스럽다.
출가자에게 가장 큰 영예는 종단의 감투나 '큰스님'이 아니라 '참스님'이란 칭호다. 스님에게 '참스님'이란 호칭 이상의 극찬이 어디있나. 불교계에 올곧게 수행하는 '참스님'이 많아야 한다.
조주스님이 장례 행렬을 보고 이런 말씀을 했다고 전한다.
“죽어도 산 사람이 있고, 살아도 죽은 사람이 있다. 항상 깨어 있어 자신이 하는 일을 살핀다면 그는 산 사람이다. 살아서 산 사람답게 살려면 지금 당장 눈앞의 일에 충실해야 한다.”
조계종단의 현실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진실한 참 스님은 어디에 계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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