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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월 대보름날 추억

전원일기

by 문성 2021. 2. 26.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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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월 대보름은 음력 115일이다. 그해 첫 번째 보름달이 뜨는 날이다.

대보름날에는 재미있는 풍습이 많다. 시골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낸 나는 대보름날 추억이 한아름이다. 도시생활에는 추억이란 게 별로 없다. 챗바퀴 돌아가듯 틀에 묶여 살다보니 추억이라고 내 세월만한 게 없다.

어린 시절 정월 대보름날은 마을 축제였다. 해학과 인정이 넘치는 화합과 소통의 날이었다. 부럼을 깨물고 저녁에는 보름달을 보며 소원을 빌었다. 어릴적 소원이란게 별 게 아니었다. 가난하고 배고픈 시절이다 보니 어린 마음에도 풍년을 기원했다. 늘 배고파하며 살아도 마음만은 티없이 맑았다. 정월대보름날이 좋은 건 먹을 게 많고 하루를 재미있게 놀 수 있어서다.

대표적인 게 부럼깨물기(사진)와 더위를 파는 일이었다. 그해 액운을 쫒는다며 붉은 팥을 몇 알 삼키기도 했다. 부럼은 호두나 땅콩, 잣 등인데 시골에서는 호두나 땅콩이 단골이었다. 그 당시만 해도 시골 아이들에게는 영양부족으로 피부병이 많았다. 어른들은 대보름날 아침에 아이들에게 호두나 땅콩, 잣을 깨물게 했다. 어른들의 지혜를 엿볼 수 있다.

그 다음에 하는 일이 더위팔기. 옆집 친구집에 가서 친구야하고 외친다. 친구가 나오면 재빨리 내 더위 사 가라고 소리쳤다. 간혹 그 친구가 나보다 빨리 내 더위 사 가라고 소리친 적도 있다. 되치기 당한 것이다. 그렇다고 얼굴 붉히지도 않는다. 그냥 해맑게 웃고 넘어간다. 이날은 친구들끼리 만나면 서로 내 더위 사 가라를 외쳤다.

해가 서산을 넘어가면 모두 달맞이를 했다. 대보름달을 보면서 소원을 빌었다. 미리 마을 앞 논이나 공터에 만들어 놓은 답집을 태웠다. 달집 불이 잘 타면 그해 풍년이 들고 모든 일이 잘 풀린다고 믿었다. 눈둑과 밭둑을 태위는 쥐불놀이와 횃불놀이도 했다. 또 집집마다 돌며 지신밟기도 했다. 지금은 이런 풍습을 보기 어렵다. 자칫 잘못하면 대형 산불로 번질 수 있다.

대보름에는 다섯가지 종류의 곡식으로 밥을 한 오곡밥을 해 먹었다. 반찬으로 고사리와 버벗, 호박, 시래기 등 아홉 가지 나물을 먹었다. 시골이니 고기는 구경도 못했다. 온통 풀 밥상이었다. 그래도 배불러 먹을 수 있어 행복했던 시절이다. 대보름날은 어린이들도 술을 조금 씩 마셨다. 귀밝이 술이다. 이 술을 마시면 한 해 동안 귀가 밝아지고 좋은 소식을 들 수 있다고 믿었다.

하나같이 소중한 추억이다. 지금 고향에 가도 이런 풍습은 거의 사라졌다. 달집 짓고 지신밝기 할 사람도 없다.

대보름이라고 아내가 오곡밥을 했다. 나물도 삶아 반찬을 만들었다. 오곡밥을 먹으며 마음은 세월너머를 달린다. 어릴 적 추억이 봄날 새싹 돋듯 되살아 난다. 이제는 갈 수 없는 그 시절, 소중한 추억여행을 정월 대보름날 아침이면 어김없이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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