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눈 내린 날

전원일기

by 문성 2021. 2. 4. 20:46

본문

사방이 솜이불을 덮었다. 산과 지붕, 마당도. 내린 눈이 세상을 흰색 하나로 통일했다. 밉고 고운 색도 없다. 백의민족답게 그저 하얀색 하나다.

올해는 정초부터 유난히 눈이 자주 내렸다. 달력을 보니 1월 들어 6번이나 이곳에 눈이 왔다. 2월들어 눈 치울 일 없으려니 했더니 입춘날 밤부터 폭설이 쏠아졌다. 마음 방정을 떨어서 그런가. 경남 양산 통도사에는 홍매화가 활찍 꽃봉오리를 터트렸다는 소식인데 동장군 시샘은 여전하다.

입춘날 밤 9시경부터 눈이 왔다. 아침에 일어나니 사방이 눈에 잠겼다. 이곳은 큰 길에서 1.5km 가령 떨어져 있다. 눈이 와도 제설차가 오지 않는다. 각 자 집 앞과 길에 쌓인 눈을 치워야 한다. 눈은 내린 만큼 쌓인다. 거짓이 없다.

눈이 오면 불편한 게 하나 둘이 아니다. 도심 아파트에 살 때는 눈이 와도 눈치울 생각을 하지 않았다. 도로는 시청에서 제설차가 염화칼륨을 뿌렸다. 아파트 단지는 관리실에서 눈을 다 치웠다.

그러다가 서울근교 산아래 마을로 이사 와서 살다 보니 눈 구경은 한가한 사람들이나 하는 일이었다. 처지가 바뀌면 생각도 변한다. 경험처럼 좋은 산교육은 없다.

눈이 오면 우선 길이 미끄러워 다니기가 불편하다. 제 때 눈을 치우지 않고 눈이 꽁꽁 얼어붙으면 예삿일이 아니다. 자칫 미끄러져 넘어져 다치면 병원신세를 져야 한다. 요즘같이 코로나19상황에서는 병원 가기도 무섭다.

이곳에는 약 7cm 눈이 내렸다. 이게 별결 아닌 듯 하지만 많은 양이다.

낮에는 햇살이 비쳐 눈이 녹지만 해가 서쪽으로 지면 금세 번질번질하게 얼어붙는다.. 그 위에 눈발이라도 내리면 스케이트장 못지않다..

눈을 치우는 일도 힘이 든다. 오전에 가래로 눈을 치우고 나니 이마에 송골송골 땀방울이 맺혔다. 허리도 아프고, 어깻쭉지도 뻐근하다.

마당에 심은 소나무에는 때아닌 눈꽃이 피었다. 소나무 가지 끝에 눈이 내려앉아 하얀 목화꽃이 핀 듯하다. 소나무를 보면서 추사 김정희 선생의 세한도를 생각한다. 이 겨울을 이겨야 새 봄을 맞이할 게다.

눈이 온 날 모두 고요 속에 잠긴다. 오가는 이도 없다. 간혹 개를 데리고 산책하던 이들도 이런 날은 두문불출이다.

이런 날은 자연과 더불어 침묵 속에 빠진다. 겨울은 침묵하는 절기다.

너는 어디서 와 어디고 가는지 아는가”. 당연히 모른다.  그래도 나를 돌아보는 귀중한 시간이다. 누가 뭐래도 자연이 백설 솜이불을 덮은 날은 적막하다.

'전원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봄. 매화 가지치기  (1) 2021.03.08
정월 대보름날 추억  (0) 2021.02.26
작은 추위 ‘소한(小寒)’  (0) 2021.01.05
파란 하늘  (0) 2020.09.14
목단여정 (牧丹餘情) /박목월  (2) 2020.06.14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