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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덕의 정보통신부 그시작과 끝<89>

[특별기획] 대통령과 정보통신부

by 문성 2011. 3. 19. 1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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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위원들은 1반과 2반. 3반 3개반으로 업무를 나눴다.
 
제1반은 PCS와 무선데이타 부문을 담당했다. 제2반은 TRS전국사업 및 단독신청을 제외한 지역사업, 수도권 무선호출 부문을 맡았다. 그리고 제3반은 국제전화, 전용회선임대, CT-2, TRS지역사업(비경합지역)을 담당했다.


심사는 각 반별로 기술반과 경영반으로 각 7명씩을 배정해 자기가 맡은 분야 사업계획서만 심사했다. 42명의 심사위원 중 절반이 경영이고 나머지 절반은 기술부분이었다.


6개반의 반장은 심사위원들이 호선(互選)했다.


그 결과 이천표 서울대교수(통신개발원장 역임. 현 서울대명예교수)와 김재균 KAIST교수(한국통신학회장 역임.현 KAIST명예교수), 박항구 한국전자통신연구소 이동통신기술연구단장, 남상우 KDI박사(현 KDI국제정책대학원장), 이태경 산업연구원 연구원, 구경헌 인천대 전자공학과 교수 등이 반장으로 뽑혔다.


평가는 기술과 .영업 부문별로 구분해 사업계획서상의 세부심사항목을 각각 1백점 만점으로 채점한 뒤 최고점과 최저점을 제외한 5명의 점수를 평균해 세부 항목별 점수를 산출했다.


정통부가 심사위원 선정을 위해 숨가쁘게 움직이고 있을 때 신규통신사업신청 법인들도 심사위원 구성을 예의주시했다.

정통부와 대학, 연구소 등을 대상으로 정보안테나를 총동원했다. 신청법인들은 심사위원들이 심사기준에 따라 객관적이고 엄정하게 평가할 것으로 기대하면서도 ‘같은 값이며 다홍치마’라는 말처럼 자신들에게 비교적 우호적인 인물이 심사위원에 포함되기를 내심 기대했다. 심사위원의 점수가 사업자 선정의 당락(當落)을 결정하는 것이어서 기업들로서는 촉각을 곧두세울 수 밖에 없었다.


A기업 홍보실에 근무했던 B씨의 말.

“기업들이라고 가만히 있지 않았어요. 사전에 심사위원들의 예상 명단을 작성했어요. 그리고 이들을 대상으로 혹시 휴강을 하거나 아니면 장기 출장을 갈 계획이 있는지를 조심스럽게 파악했습니다. PCS군에 속한 대기업들은 다 그런 식으로 심사위원 선정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장기 출장이나 휴강을 한 교수들이 우선 관찰 대상이었어요.”


하지만 기업들의 이런 노력은 별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기업들의 예상과는 달리 의외의 인물들이 심사위원으로 많이 참여했기 때문이다.

심사위원 선정을 앞두고 정통부 주변에서는 통신정책을 주로 다룬 통신개발연구원에서 대거 참여할 것이란 소문이 꽤 설득력 있게 나돌았다.

막상 심사위원 뚜껑을 열고 보니 거론됐던 인물들이 다수 빠졌다. 그대신 한국전자통신연구소의 인력이 많이 들어갔다. 대학교수, 변호사 등도 포함됐다.


정통부는 심사과정에 혹시 점수가 공개될 것에 대비해 주도면밀한 채점시스템을 준비했다.


먼저 심사위원들에게 신청업체 명칭을 공개하지 않았다. 명칭을 공개할 경우 혹시 심사위원의 개인적인 감정이 개입할 수 있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정통부는 법인명 대신 코드번호로 신청법인을 표기해 평가하도록 했다. 심사위원들이 어느 업체인지 알 수 없게 한 것이다. 그리고 채점한 점수를 다른 사람이 알 수 없게 했다. 모든 심사위원들이 자신의 점수외는 전혀 알 수는 채점시스템이었다.


박 기술반장의 기억.

“각자 자기 심사항목만 평가를 했습니다. 심사위원들이 소신에 따라 객관적으로 공정한 평가를 하도록 한 것입니다. 다른 위원은 그 분야의 점수가 어떻게 되는지를 몰랐습니다. 평가항목에 따라 점수를 매긴 후 곧장 평가위원에게 자료를 넘겼습니다.”


평가위원으로 PCS업무를 지원했던 통신개발연구원 이명호박사(현 정보통신정책연구원 통신정책연구실장)의 말.

“저는 심사는 하지 않고 이들은 지원했습니다. 심사하는데 필요한 모든 것을 행정적으로 다 뒷받침 해주었어요. 92년 제2이동통신사업자 선정에도 참여한 경험이 있었거든요. 힘들었지만 보람있는 작업이었습니다. 남의 일에 신경쓰지 않고 오직 자기 역할에만 충실했습니다.”


정통부에서는 이성해 정보통신지원국장( 정통부 기획관리실장. KT인포텍사장 역임. 현 큐앤에드 회장)과 이규태 과장 등이 심사위윈들과 같이 심사기간 동안 숙식을 같이했다. 그 무렵, 도고수련원은 한번 들어가면 족쇄가 풀리기전에는 절대 나올 수 없는 절해고도(絶海孤島)나 다름없었다.


이 과장의 말.

“심사위원들을 비롯해 이곳에 온 사람들의 전화기를 모두 회수했습니다. 내부 전화도 일체 사용하지 못하게 통제를 했습니다. 외출이나 외박은 당연히 허용이 안됐지요. 정통부 직원들이 24시간 심사위원들의 일상을 감독하고 통제했습니다. 심사위원들은 다 훌륭한 분들이었어요. 전문지식을 바탕으로 객관적으로 공정하게 심사를 했습니다. 모두 자신의 직분에 충실했습니다.”


자고 나면 심사하는 날이 하루 이틀 흘러갔다.


드디어 6월1일 서류심사 작업이 끝났다. 창살없는 감옥의 대문이 활짝 열린 것이다.

심사위원들은 10일간의 족쇄를 풀고 수련원 정문을 열고 바깥 세상으로 나왔다.

초여름의 시원한 바람이 가슴속의 체증(滯症)을 파란 하늘로 날려 보냈다.

심사시원들은 서로 악수를 나누며 ‘그동안 수고했다’고 격려했다. 그리고 아침에 같이 운동을 하며 쌓인 피로를 풀었다.


그러나 심사위원들의 홀가분한 기분과는 달리 정통부 직원들은 3차 청문심사 준비를 위해 피곤함을 뒤로 한 채 긴장의 고삐를 바짝 당겨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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