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 4월 8일 오전10시.
김영삼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 본관 집현실에서 경제장관회의를 주재했다. 각 부처 장관들은 주요현안에 대해 3분간 씩 보고했다.
이석채 장관은 김대통령에게 “정통부 내에 국가정보화 촉진계획 수립과 추진을 전담할 정보화기획실을 설치하는 방안을 추진중”이라고 보고했다. 김 대통령은 이 장관의 이런 보고에 대해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이후 박성득 기획관리실장(정통부 차관역임. 현 한국해킹보안협회장) 등은 청와대를 비롯한 총리실, 총무처 등 관계부처 실무자들을 논리적으로 설득하고 이해시키는 일에 총력을 기울였다.
박 실장의 증언.
“그 무렵, 총무처를 내집 드나들 듯이 했습니다. 1급인 내가 2급인 총무처 최 국장 방에 가서 살다시피 했어요. 정통부 기획관리실장실 아래는 국장이 없고 과장만 있었어요. 국장한테 과장을 보낼 수는 없잖아요.”
기획관리실에서는 강대영 행정관리담당관(정통부 공보관.미래정보전략본부장. 행안부 소청심사위원회 상임위원 역임. 현 청호컴넷대표이사)이 박 실장을 보좌해 이 업무를 담당했다.
최임규 총무처 조직국장의 회고.
“박 실장께서 날마다 아침 8시반 경이면 제 방으로 오셨어요. 잘 아는 선배가 날마다 제 방으로 출근을 하니 저도 중간에서 곤혹스러웠어요. ”
최 국장은 박 실장의 대학 후배였다. 더욱이 박 실장과 사무자동화를 위해 동남아를 1개월여 같이 다닌 적도 있었다. 최 국장은 행정전산화10개년 계획에도 참여했고 이석채 장관이 청와대 지역균형발전기획단 부단장시절 그 밑에서 국장급으로 근무해 이 장관과도 잘 알고 지냈다.
하지만 업무에서 (公)과 사(私)는 엄격히 구분했다.
정통부는 직제개정안에 대해 1안과 2안을 만들어 총무처와 협의를 진행했다.
총무처는 4월15일 정보화추진위원회를 열어 관계부처 이견을 사전에 조정한 후 직제개정안을 심사하자고 제안했다. 정통부는 정보화기획실 신설은 시급한 국가현안이므로 이 문제를 동시에 추진하자고 맞섰다.
4월30일.
총무처는 1급 보직인 정보화기획실을 늘릴 것이 아니라 기존 정보통신정책실을 정보화정책실로 변경해 업무를 담당하면 되지 않겠느냐는 의견을 제시했다. 정통부는 임시조직인 기획단으로 정보화추진이 어려운 점과 정통부내 2실 운영의 불기피성을 거듭 주장했다.
이석채 장관은 김 대통령과 이수성 국무총리(새마을중앙회장 역임 .현 통일을 위한 복지기금재단 이사장) 등에게 정보화기획실의 필요성을 보고해 동의를 얻었다. 청와대 박성달 행정수석(대구직할시장. 체육진흥공단 이사장 역임)과 김범일 행정비서관(산림청장 역임. 현 대구직할시장) 등에게도 직재개정안에 관한 협조를 구했다. 총무처 출신인 김 비서관은 정통부 직제개정안에 반대했다.
이 장관은 조해녕 총무처장관(내무부장관. 대구광역시장 역임. 현 대구세계육성조직위원장)과 윤웅규 차관 등에게도 협조를 요청했다.
박 실장은 정보화기획실 신설의 필요성과 초고속추진기획단 운영의 문제점 등을 소상히 분석한 자료를 토대로 국무총리실 조건호 제2조정관(과기처 차관. 전국경제인현합회 부회장 역임. 현 한화손해보험 사외이사)을 비롯해 관계부처 실무자를 만나 설득과 협상작업을 병행했다.
5월 3일.
이석채 장관은 조해녕 총무처 장관과 전화통화를 갖고 정보화기획실 신설에 대한 협조를 거듭 요청했다.
최 국장의 회고.
“이석채 장관은 특유의 직설적인 어법으로 저한테 ‘당신이 정 그런 식이면 대통령의 결재를 받아서 내려보내겠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제 입장에서는 정통부 안을 그대로 받아 들일 수가 없었습니다. 이 장관은 수시로 전화를 해 ‘윗분한테 다 보고해 동의를 구했다. 빨리 정통부 안대로 처리해 달라’고 독촉하곤 했습니다. ”.
이 장관은 일에 관한한 소신파로 업무추진력이 대단했다. 이 장관은 김대통령의 차남 현철씨의 경복고 선배라는 인연으로 ‘김현철 사단’의 핵심인물로 거론되기도 했다.
이 장관의 강공드라이브에 견디다 못한 최 국장은 국무총리실 강봉균 행정조정실장(정통부장관. 재정경제원장관 역임. 현 18대 민주당 의원)에게 도움을 요청하기도 했다.
“실장님. 이 문제에 관해 조정을 좀 해 주십시오”
그러나 강 실장은 “총무처에서 알아서 하라”며 관여하지 않았다.
총무처는 ‘이제까지 초고속기획단 같은 임시조직이 본부내 실로 확대개편한 일이 없다’며 정통부 안에 부정적인 입장을 견지했다.
박 실장은 다른 부처의 실(室)에 관한 실태를 파악해 이를 총무처에 제시하며 총무처가 정통부 안을 수용해 줄 것을 거듭 요청했다.
신설조직의 직급과 인원 등에서 조직을 확대하려는 정통부 입장과 이를 막으려는 총무처 간 이견 조율은 접점을 찾지 못한 체 여전히 평행선을 달리고 있었다. 직제개정안 조율은 난항이었다.
그러나 두 부처간 이견은 아랑곳없이 싱그러운 5월 하늘은 티없이 맑고 높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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