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암자일기-도량석

암자일기

by 문성 2009. 11. 11. 17:37

본문

 산사의 새벽 3시.

 사방이 어둠속에 잠겨 있다. 온통 검은 색이다.
암자를 둘러싼 소나무와 바위 등도 조용하다. 정적만이 산사를 덮고 있다. 

 

이 때부터 산사는 기지개를 켜기 시작한다. 세속의 삶에 찌든 나한테 산사의 새벽은 고통이다.  어느 정도 체화하기까지는 새벽 도량석(道場釋) 치는 소리는 귀를 막고 싶을 정도였다. 도시에서 이 시간은 꿈나라를 헤메고 다닐 때다.

 

 
 그렇다고 도량석 치는 소리가 나를 피해가는 것은 아니다. 이럴 때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는 게 사책이다.

 

 “토로록 똑딱, 토로록 똑딱”

  밤새 잠을 설쳤더니 몸이 천근이나 되는 듯 무거웠다. 눈을 부비며 억지로 자리에서 일어나자 머리가 망치로 얻어맞은 듯 “띵”했다. 도량석은 산사의 기상 나팔소리나 마찬가지다.  그 누구도 이 소리를 피해 잘 수 없다.

 

  산사의 하루 첫 일과가 도량석이다 도량석은 새벽 예불에 앞서  스님이 산사 주위를 돌면서 경을 외우고 목탁을 치는 의식이다. 도량석은  스님이 시계방향으로 돌면서 천수경이나 해탈주, 화엄경 약찬계, 의상 조사 법성계 등을 염송한다.  스님이 도량석을 칠 동안 절 식구들은 세수를 하고 법당으로 올라 갈 준비를 한다.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서자 사방이 검은 옷을 입고 있었다. 손전등을 꺼내 들었다.

 세면장으로 가서 세수를 했다. 산사의 물은 청량수다. 얼음처럼 차가웠다. 바가지에 물을 퍼서 벌컥 벌컥 들여 마셨다. 양치질과 세수를 하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방에다 수건을 던져 놓고 계단을 걸어 대웅전으로 올라갔다. 볼에 스치는 새벽 공기가 차갑다. 법당의 촛불은 스님이 이미 켜 놓았다.

산사의 새벽 예불은 장엄하다.  나는 조용히 법당 한켠에 놓인 방석을 바닥에 살며시 내려놓고 예불에 참여했다.

 

예불은 오분 향례에 이어 반야심경, 천수경, 금강경과 아미타경 순으로 진행했다. 스님의 목탁소리에 맞춰 예불을 따라 했다. 들리는 것은 절하면서 스치는 옷자락과 숨소리가 전부다.

 

예불 때는 법당에 켜 놓은 촛불도 움직임을 멈춘다. 스님의 독경소리가 마치 물흐르듯 매끄럽고 청아하다.  그 소리가 대웅전을 벗어나 이내 울림이 돼 어둠속으로 퍼저 나갔다. 중생들의 해탈을 기원하는 염불이다. 스님의 목청이 구성지다.  명진 스님의 제자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절에서는 어느 것 하나 적당히 하는 것이 없다. 원칙대로 해야 한다. 성질 급한 사람은 예불이 끝날 때까지 참기가 힘들다. 앉았다 일어났다를 반복하면서 수시로 절을 해야 하고 염불도 따라 하는 일이 결코 쉽지 않다.  하지만 그런 것을 이기는 것도 수행의 한 방편이다.

 

예불 시간은 대략 1시간 반 정도다. 스님을 따라 절하고 불경을 염송 했더니 종아리와 허벅지가 저리고 목이 아팠다.  예불이 끝나자 다리가 후들거렸다. 실로 오랜만의 예불이라 힘에 부쳤다.

 

주지 스님이 내 고통을 아는지 모르는지 넌지지 물었다.

“다리 괜찮으세요”

“아, 예 견딜만 합니다” 

 대답과는 달리 다리 근육이 뭉쳐 저리고 통증이 왔다. 이마에 땀방울이 이슬처럼 맺혔다.

 

하지만 새벽 예불이 끝나자 마음이 향기롭고 편안해 졌다. '절에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암자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암자일기- 문수동자와 홍대  (0) 2009.11.14
암자일기-묘전  (0) 2009.11.12
암자일기- 산사의 첫날 밤  (0) 2009.11.09
암자일기- 길상암 추억  (0) 2009.11.04
암자일기 - 단기출가를 위해  (0) 2009.11.02

관련글 더보기